훔쳐보기와 스토킹이 초래한 위기 [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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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본질적으로 훔쳐보는 행위를 즐긴다.
영화를 보는 것 또한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고 영화 속 인물을 지켜보는 행위다.
나쁜 짓은 안 하고 보기만 한다는 정태에게 찾아온 위기를 통해 영화는 스토킹과 관음증에 몰두하는 현대인에게 경고를 날리고 있다.
영화 '그녀가 죽었다'는 노출증에 빠진 소라와 스토킹과 훔쳐보기에 중독된 정태를 통해 SNS 시대가 초래한 심각한 부작용을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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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본질적으로 훔쳐보는 행위를 즐긴다. 훔쳐보기인 피핑 톰(Peeping Tom)은 영국 코번트리지역 영주 레오프릭의 아내 고다이바 부인에게서 유래한다. 영주의 높은 세금부과로 백성들이 힘들어하자, 부인은 남편에게 세금 감면을 호소한다. 영주는 백성을 사랑한다면 알몸으로 마을을 돌라고 말하고 마을 사람들은 고마움에 창문을 닫고 그녀를 보지 않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양복 재단사 톰은 성적 호기심으로 영부인을 훔쳐보게 되고 결국 신의 벌을 받아 장님이 되면서 톰의 이야기는 훔쳐보기의 대명사가 됐다. 영화를 보는 것 또한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고 영화 속 인물을 지켜보는 행위다. 관객들은 영화 속 남의 삶을 보면서 시각적 쾌락을 느끼는 것이다. 훔쳐보기는 SNS 시대가 되면서 더욱 만연하게 되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그녀가 죽었다’는 훔쳐보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부동산 카페에서 유명한 공인중개사 구정태(변요한 분)에게는 변태적인 악취미가 있다. 고객이 맡긴 열쇠로 집에 몰래 들어가 구석구석을 훔쳐보는 것이다. 그런데 정태의 레이더망에 이웃 주민 한소라(신혜선 분)가 포착된다. 편의점에서 소시지를 먹으면서 SNS에는 채식 식단 사진을 올리는 소라의 이중적인 모습을 훔쳐보게 된 것이다. SNS 인플루언서인 소라에게 흥미가 생긴 정태는 소라를 스토킹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소라의 집을 마음껏 드나들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피투성이가 된 소라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정태는 범인으로 몰릴 수 있는 위기 상황에 빠지게 된다.
영화는 훔쳐보기에 집착하는 현대인의 민낯을 보여준다. 관음증은 인간의 오래된 욕망이다. SNS 시대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삶을 스스로 드러내면서 우리는 남의 삶을 훨씬 더 쉽게 훔쳐볼 수 있게 됐다. 공인중개사인 정태는 빈집에 들어가 수리해 주는 서비스 정신까지 발휘하면서 훔쳐보기를 좋아하다가 결국 자신도 훔쳐보는 관찰자의 대상이 됐음을 느끼며 공포를 느낀다. 나쁜 짓은 안 하고 보기만 한다는 정태에게 찾아온 위기를 통해 영화는 스토킹과 관음증에 몰두하는 현대인에게 경고를 날리고 있다.
SNS 시대 관종의 삶을 사는 우리 모습도 지적한다. SNS에서는 ‘좋아요’와 ‘댓글’이 중요하다. 한소라는 유기견과 유기묘를 챙겨주는 콘텐츠로 자신의 평판을 높인다. 명품 가방을 쇼핑하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화려한 삶을 과시한다. 영화는 뭐든 보여주려는 여자가 소셜 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준다. 자기 연민과 과시에 빠져 위선적인 삶을 사는 소라의 모습은 SNS 시대 우리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스릴러 장르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연출을 맡은 김세휘 감독은 영화 ‘인천상륙작전’ ‘치외법권’ ‘덕구’ 등에서 각색과 스크립터를 맡으며 실력을 자랑했다. 이번 작품에서도 현대인들의 삶에서 뗄 수 없는 소재인 SNS를 스크린으로 끌고 들어와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스릴러로 변모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스릴러물을 통해 긴장감을 선사한다. 특히 배우 변요한 보여준 경쾌한 캐릭터와 신혜선이 보여준 극단적이고 이중적인 캐릭터는 일반 스릴러와 차별화된다.
SNS 시대에는 남에게 알려지는 것이 중요하다. 구독자가 많은 유튜버나 인플루언서가 되면 연예인과 같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보여주려 한다.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과거와는 정반대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스토킹을 통한 심각한 범죄를 발생시킬 수 있다. 영화 ‘그녀가 죽었다’는 노출증에 빠진 소라와 스토킹과 훔쳐보기에 중독된 정태를 통해 SNS 시대가 초래한 심각한 부작용을 경고하고 있다.
양경미 / 전)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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