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수출, 절반이 미국행인데…韓 적자탈출 타깃될까

최대열 2024. 5. 1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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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 못하는 車업계
4월까지 대미수출 비중 50%↑
美대선 코앞, 보호무역 강화 우려

올해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기준으로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현 상황으론 하반기에도 대미 수출 강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현지의 한국산 완성차 수요가 늘어난 데다 원화 가치가 낮아져 수익성이 커진 것으로 분석되는데, 올 하반기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악재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내 보호무역 기조가 확산하면서 화살을 외국으로 돌릴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대선 결과에 따라 무역 불균형을 바로 잡자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개정을 요구할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현대차 수출선적부두와 울산항[사진출처:연합뉴스]

자동차 對美 수출액, 처음으로 절반 넘겨

17일 한국무역협회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4월까지 미국에 수출한 자동차는 123억4500만달러어치로 집계됐다. 우리나라 전체 자동차 수출액이 243억2100만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50.8%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전체 자동차 수출액에서 미국이 차지한 비중이 절반을 넘긴 건 우리나라가 자동차를 본격적으로 수출한 1990년대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은 FTA를 맺기 전부터 국내 기업의 주요 자동차 수출시장으로 꼽혔다. 전체 자동차 수출에서 미국향 수출의 비중은 한미 FTA 발효 직전인 2011년 10%대에서 이후 꾸준히 늘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취임 전해인 2016년 39%를 기록했다. 이후 코로나19로 주요 완성차 메이커가 생산 차질을 빚었던 2020년 처음 40%를, 지난해에는 45%를 넘어섰다.

자동차의 대미수출이 늘어난 건 현지에서 한국산 수요가 커진 영향이 크다. 고유가 등으로 미국 소비자 사이에서도 상대적으로 연료 효율성이 높은 차를 선호하는 기류가 뚜렷해졌다.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엔진·모터를 같이 쓰는 하이브리드를 찾는 수요가 미국에서도 많이 늘었다. 현대차·기아는 물론 한국GM이 생산해 상당 부분을 수출하는 차종 역시 소형 SUV(트랙스 크로스오버·트레일블레이저)이다. 두 모델은 올해 1~4월 국산차 수출 순위에서 1, 4위에 올라 있다. 미국 현지에서도 같은 차급에서 베스트셀링모델로 꼽힌다.

달러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진 점도 미국 수출을 부추겼다. 같은 차를 팔아도 원·달러 환율이 1원 오를 경우 수출에선 100억원의 추가 매출이 발생한다. 완성차 업체로선 미국으로 수출하는 게 수익성 측면에서 유리해진 것이다.

수출 확대 기조는 올 연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지 신차 수요가 견조한 가운데 도요타·혼다 등 일본 메이커가 최근 현지 판매를 늘리면서 한일 완성차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현지에 짓고 있는 신규 전기차 공장은 올 연말께야 준공될 예정이다. 그에 앞서 점유율 수성을 위해서는 국내 공장 생산분 수출을 늘릴 수밖에 없다.

美 FTA 재개정 명분될 수도

하지만 이런 수출 호조세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는 게 통상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미국과의 교역에서 400억달러 이상 흑자를 기록했는데, 자동차·부품(366억달러 흑자)이 크게 기여했다. 이는 미국 입장에선 무역적자다. 미국이 무역 거래를 하면서 적자를 본 나라 가운데 우리나라는 코로나19가 불거지기 전인 2019년까지만 해도 10위권 밖이었는데 지난해 8위로 올라섰다. 이 과정에서 자동차·부품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특히 올해 미국에선 대선 이슈가 있다. 양당 주자들이 모두 자국산업 보호 기조를 확연히 드러낸 가운데 자동차 산업도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다. 최근 미국 정부가 중국산 전기차에 관세를 100%로 네 배 올린 것도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걸었다. 내연기관 퇴출을 위한 배출가스 규제 기준을 완화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미자동차노동조합(UAW) 등 자동차 업계 표심을 의식한 행보다. 한국산 자동차의 대미 수출이 늘어날 경우 오히려 철퇴를 맞을 수도 있다.

수출선박에 선적 중인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사진제공:한국GM]

앞서 자동차는 양국 FTA 개정 대상으로 오른 바 있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대미 무역적자를 이유로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걸었던 한미 FTA 개정협상을 추진했다. 2012년 한미 FTA 발효 후 미국산 자동차의 수입이 늘긴 했으나 우리나라가 수출한 물량이 훨씬 더 많았다. 2018년 타결한 협상에서 미국은 우리나라의 화물차 관세 철폐 시기를 20년 늦추는 한편 안전·환경 기준을 한층 유연하게 적용하도록 수정했다.

이번 대선 결과에 따라 재개정 협상 압력은 커질 전망이다. 2017년 FTA 개정협상이 시작할 당시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흑자 규모는 179억달러로, 지난해 444억달러의 절반도 못 미쳤다. 개정 이후 대미 수출 규모가 오히려 커진 점을 감안하면 미국 입장에선 무역적자를 바로잡자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연말까지 남은 선거 기간 충분히 떠오를 만한 이슈라고 평가한다. 통상전문가인 표인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미국 정부 입장에서 무역환경이 공정치 못하다고 판단한다면 언제든 FTA를 개정하자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중 간 무역분쟁에서 전기차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한미 FTA 원산지 규정을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미 FTA에서 원산지 인정 기준은 35% 수준으로 미국이 체결한 다른 FTA에 비해 느슨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국내 완성차 기업이 전기차를 포함한 완성차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중국산 부품을 상당 부분 수입해 쓰고 있는데 이를 문제 삼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익명을 원한 통상분야 전문가는 "한미 FTA 자동차 분야 원산지 규정은 과거 개정 협상 전에도 우리 내부적으로 우려가 컸던 부분"이라며 "다시 개정 협상을 한다면 흑자 폭을 늘리고 있는 우리가 수비해야 하는 입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출처:연합뉴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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