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5개월 만에 돌연사 한 19세 노동자... 법원 "산재 인정"

손가영 2024. 5. 17. 13:4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산고법 "첫 사회생활에 과중한 업무, 높은 압박감"... 특성화고 졸업생 노동 착취 단면 드러내

[손가영 기자]

[기사 수정 : 18일 오전 10시 37분]

고교 졸업 직후 취업한 회사에서 입사 5개월 만에 숨진 채로 발견된 특성화고 졸업생 노동자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1심 법원은 업무강도가 돌연사를 일으킬 만큼 과하지 않다고 판단했으나, 2심 법원은 과중한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 외의 다른 사인은 찾아볼 수 없다며 1심을 뒤집었다.

부산고법 울산재판부 행정1부(부장판사 반병동)는 지난 9일 사망자 김아무개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소송 2심에서 유족 측 승소 판결을 했다. 2019년 7월 1일 김씨가 사망한 지 5년 만이다.

김씨는 그날 오전 7시경 회사 기숙사 침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직장 동료가 그를 깨우러 갔다가 입술이 하얗게 변한 채 숨을 쉬지 않는 그를 발견했다. 김씨는 인근 대학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으나 오전 8시경 사망 선고를 받았다.

김씨는 키 177cm, 몸무게 83kg의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었다. 기초질환과 가족력도 없었다. 무엇보다 김씨 나이는 19세에 불과했다. 2000년 5월 태생의 김씨는 2019년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 회사의 생산직으로 취업해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입사한 지 5개월도 지나지 않은 때 사망한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사망 전날도 응급실행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부산지방법원 자료사진.
ⓒ 김보성
   
"가슴이 너무 아프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김씨)

사망 전날에도 김씨는 응급실에 갔다. 일요일이었던 이날 오후, 김씨는 직장 동료 B 씨와 기숙사 인근 운동장에서 운동을 했다. 김씨는 운동장 한 바퀴를 뛰고 B씨와 씨름을 한판 했는데, 5분 정도 서로 겨루기만 하다가 그만두고 쉬었다. 그러다 갑자기 김씨가 가슴이 아프다며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B씨는 2심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B씨는 김씨의 서부산공고 동창이기도 했다.

"응급실에서 링거를 3시간 정도 맞았다. 우리는 회사에 들어온 지도 얼마 안 됐고 모아둔 돈도 없어서 병원비가 많이 걱정됐다. 그래도 걱정되니까 '병원에 더 있어라'고 했는데 (김씨는) '어차피 돈만 더 나온다'면서 계속 괜찮다며 '어차피 오늘 일요일이니 내일 연차 쓰고 일주일 동안 부산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병원에서 나와 기숙사로 갔다."

그러나 김씨는 연차휴가를 쓰지 못하고 12시간 후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주 6일 교대제, 근무 중 앉지도 못해... 화장실도 허락 구해야
 
 나사 가공 자료 사진.(기사 내용과는 무관.)
ⓒ pixabay
  
김씨는 충북 충주 소재의 한 절삭공구기업 A 공장의 생산직이었다. 맡은 업무는 나사 연삭(깎기) 보조였다. 나사의 산과 골을 만드는 연삭기에 가공 전 나사를 넣고, 가공 후에 나사를 설비에서 빼는 일이었다. 맡은 설비는 8~10대 정도였다. 여기에 바닥청소와 나사 운반을 같이 맡았다. 바닥이 연삭기에 쓰이는 기름(절삭유)으로 금세 뒤덮였기에 이를 치우는 일과 적게는 5kg, 많게는 25kg 중량의 나사를 옮기는 일이었다.

A 공장은 설비를 24시간 가동했다. 김씨의 일도 주·야 2교대로 돌아갔다. 주간은 아침 8시 출근해 오후 5시 퇴근이었으나, 거의 매일 두어 시간의 잔업을 해 저녁 7시 50분에 일이 마쳤다. 그럼 저녁 8시부터 야간 조가 일을 시작해 다음 날 아침 7시 30분까지 일했다. 실상 12시간 교대제였고, 주·야간 조는 1주일을 주기로 바뀌었다.

김씨는 매일 10시간 가까이 서서 일했다. 작업장에 의자는 없었고, 앉아 쉬는 문화도 없었다. 바닥은 흘러내린 절삭유로 항상 흥건해 잠깐 앉을 여유도 없었다. 작업장은 항상 유증기로 가득 차 건강을 걱정하는 직원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휴게시간은 오전에 10분, 오후에 10분, 매일 두 번만 주어졌다.

더욱이 신입직원은 조장 허락을 받고 화장실을 가야 할 정도로 공장 분위기는 수직적이었다. 관리자가 일이 미숙한 직원에게 욕설을 뱉거나 그를 하대하는 일도 빈번했다. 김씨도 이를 힘겨워한 사람 중 하나였다. 직원들은 대개 식사시간에도 교대로 밥을 먹었다. A 공장의 목표 생산량이 원체 높아 잔업을 해도 달성하기 어려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렇게 주 6일씩 5개월을 일했다. 이런 환경이 이제 막 고교를 졸업한 젊은 노동자에겐 어떤 공간이었을까. 김씨는 미성년자로 회사에 입사해 불과 사망 2개월 전에야 생일을 맞은 만 19세 노동자였다.

"우리는 '18세, 19세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있는가"
 
 지난 2021년 10월 6일 전남 여수시 한 요트 정박장에서 잠수작업 실습중이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같은 달 7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회원들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 권우성
  
김씨의 사망 전 12주 동안의 평균 한 주 노동시간은 55시간 43분이었다. 이 조건만으로도 김씨의 돌연사와 업무 간 관련성은 높다고 인정될 가능성이 컸다. 뇌혈관·심장 등 질병의 산재 인정 여부를 결정하는 고용노동부 고시에 따르면, 교대제나 휴일이 부족한 업무를 할 경우엔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면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족의 산재(유족급여) 신청을 받은 근로복지공단과 1심 법원 모두 업무 관련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1심 법원은 김씨의 노동시간이 고시상의 기준을 만족하긴 하나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고 작업 강도는 '낮음'과 '중증도'의 중간 정도였다"며 "사망자가 당시 미성년자였다는 점을 감안해도, 만성적 과로에 노출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2심 법원은 "김씨의 노동 강도는 중간 정도를 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김씨는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이 외에 다른 사인은 찾아볼 수 없다"고 업무 관련성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나아가 "김씨는 고교 졸업 때까지 부산에서 살다가 A 공장에 입사하면서 처음으로 연고가 없는 타지에서 생활하며 생산직 노동을 하게 됐다"며 "나이, 경험, 업무강도 등을 고려할 때 김씨는 사망 당시에도 여전히 급격하게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여러 스트레스에 노출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수직적 문화, 높은 목표 생산량 등을 고려하면 "처음 사회생활을 경험하는 김씨가 작업·식사·휴게 시간을 불문하고 지속적으로 높은 긴장감과 심리적 압박감 느낄 업무상 환경이었다"고도 판단했다. 재판부는 식사시간과 겹치는 잔업 근무 시 컵라면, 빵 같은 간식만 주어진 것에 대해서도 "적정한 휴식이나 영양 섭취도 하지 못했던 걸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사건을 대리한 조애진 변호사(법무법인 시대로)는 지난 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교대제 노동자가 주 52시간 넘게 일을 해 노동부가 고시한 과로 인정 기준을 명백히 충족했는데도, 근로복지공단과 1심 법원은 이를 모두 간과한 문제가 있었다"며 "무엇보다 상식적으로 19세의 어린 노동자가 돌연사하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데, 공단과 1심 모두 피해자의 나이와 처지, 성인 노동자에 비해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상황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2심은 이런 부분과 조직문화 등이 구체적으로 고려된 결과"라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사건을 대리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건 우리 사회가 '어린 노동자'에게 정말 가혹한 사회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동, 청소년을 보호하는 법률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노동하는 18세'는 보호 대상이 아닌가?"라며 "과로나 스트레스 평가에 있어, 특성화고 졸업생처럼 막 고등학교를 졸업해 바로 일을 시작하는 이들을 성인과 동일한 기준과 잣대로 대하는 게 합리적인가?"라 물었다.

조 변호사는 "조사를 하면서 한 특성화고 관계자로부터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현장에서) 제일 바닥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외국인 노동자보다 더 아래'라면서, 가장 하대받고 무시받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라며 "한국은 11월만 되면 수능 수험생들을 격려한다고 전국이 들썩이는데, 대학을 가지 않고 바로 취업하는 이들 또한 많다. 고교를 갓 졸업한 노동자들을 우리가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