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새 늘어난 음란·침입·추행... 위기신호가 감지된다

엄규숙 2024. 5. 17.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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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포럼 사의재 2024 공동기획⑧-성평등 퇴행] 무너진 성차별 제어 장치... 불평등 고착

<오마이뉴스>는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참여자들의 모임인 <포럼 사의재>와 함께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윤석열 정부 2년을 집중 진단합니다. 윤정부 2년의 역사적 퇴행을 바로잡고 정책을 복원하며,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자 공동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총 열 편의 글을 게재할 예정이며, 이 글은 그 여덟 번째로 '성평등 퇴행'입니다. <편집자말>

[엄규숙]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내 여성가족부.
ⓒ 권우성
 
스웨덴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지난 3월 발표한 연례보고에 따르면, 한국은 독재화가 진행되는 나라로 최근 분류되었다. 위 연구소가 민주주의 후퇴의 양대 지표중 하나로 성평등의 후퇴를 언급했음에도 단편적으로 기사화되었을 뿐 성평등의 후퇴가 왜 민주주의의 위기와 연결되는지는 정치권이나 언론 등에서 상대적으로 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국제 앰네스티의 2024년 연례보고서도 표현의 자유, 노동권 등 영역에서 인권의 후퇴와 더불어 성평등정책, 젠더폭력에 대한 예방과 지원, 여성의 재생산건강, 성소수자 보호 등 여러 분야의 퇴행을 조목조목 짚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으로 성평등정책 추진 담당부처가 위축되고 있으며,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 삭감조치가 이루어졌다. 헌법재판소의 2019년 낙태죄 위헌 판결 이후 5년이 지나도록 법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UN 인권위원회가 2023년 11월 적절한 법개정 조치를 하라고 권고했으며, 비동의 간음죄 관련된 현행 법령이 강간죄에 대한 국제적 기준에 미달하고 있음에도 법무부가 법개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정부 아래서 성평등정책의 퇴조

1995년 '여성발전기본법'이 제정되고 김대중 대통령이 성평등 정책의 국제적 추세를 수용하고 여성운동의 요구를 담아 여성부를 설치한 이후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많은 변화를 경험해왔다. 속도는 느리지만 꾸준하게 성평등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보수정당의 정치인들이 일부 극우 커뮤니티의 정서에 기대어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여성과 남성 사이의 격차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는 이르지도 못했을뿐더러 앞으로 격차를 줄이기 위해 가야 할 길도 요원하다.

세계경제포럼이 매년 발표하는 글로벌젠더격차지수에서 우리나라는 몇 년째 100위 언저리를 맴도는데, 2023년에는 146개국 중 105위를 기록했다. 경제활동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 사이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는 OECD 국가 중 26년째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큰 국가이고, 이코노미스트지가 매년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에서도 가장 순위가 낮은 국가라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격차를 줄이기 위해 근래 시행된 정책 중 하나로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여성관리자 임용계획'과 기업의 성평등 공시제를 통한 여성대표성 확대 노력을 들 수 있다. 현재 여성가족부의 대표성 확대 관련 홈페이지의 공시 내용은 문재인정부 시절의 실적에서 멈춰있다. 그나마 공공부문의 연도별 달성성과를 2021년까지 자료로 보여주고, 민간부문 기업의 '성별 임원 수 현황'에 대한 자료 공개 내용은 아예 사라져버렸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언한 대통령 아래에서 부처의 법정업무인 기본적인 지표 관리조차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여성가족부 폐지안 규탄 전국 집중집회가 2022년 10월 15일 오후 서울 종로 종각역 네거리에서 전국195개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대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려면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할 터인데,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상적인 절차로 진행하기 어려우니, 정부가 부처 업무를 해태하거나, 법정 업무 수행 불가능 상태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여성가족부는 몇 달째 장관 부재, 차관 대행체제로 운영 중이다.

대통령이 힘을 싣고 장관이 많은 노력을 쏟아도 성평등정책 추진은 늘 많은 난관에 부딪혀왔다. 정책 영역이 여성가족부뿐 아니라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여러 부처에 걸쳐 있어 부처 사이의 협업과 조율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성평등기본법은 여성가족부에 양성평등기본계획 수립과 시행을 위해 타 부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에 협조를 구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일을 책임질 장관을 임명하지도, 중요성에 대해 인정하지도 않는 것이 윤석열 정부이다.

예산 삭감과 그 피해

윤석열 정부 들어 전임 정부 동일 기간 대비 통신매체 이용 음란(39.4%), 공중밀집장소 추행(24.8%), 성적목적 장소침입(23.1%), 강제추행(12.2%) 등 각종 성범죄가 증가하였다. 기억에 각인된 신림동 칼부림 사건, 분당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강남역 인근 옥상의 교제살인 사건 같은 끔찍한 사건을 접하고도 정부가 대책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거나 앞으로 어떤 종류의 대책이라도 내놓겠다는 소식을 접하기 어렵다. 오히려 재정건전성, 중복 사업 정리를 통한 효율적 예산운영 등을 이유로 들어 윤석열 정부는 그나마 소규모인 피해자, 약자 지원 예산을 '박절'하게 삭감하였다.

2023년 여성가족부의 5대 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 축소에 이어 2024년도 예산안에서 정부는 가정폭력, 성폭력 재발 방지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아울러 초중고 학생의 성인권교육 예산, 고용평등상담실, 외국인노동자상담센터 등의 예산도 삭감되었다.

2024년 여성가족부가 전국적으로 가정폭력상담소를 통합상담소로 개편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통합상담소로 지정되지 않은 가정폭력상담소의 경우 상담인원수를 5명에서 4명으로 줄이고, 여기서 줄인 예산을 통합상담소에 배정했다. 지역에 따라 복합적인 상담을 진행해왔던 상담소에 갑자기 인원이 줄어들어 업무부담이 늘거나, 어느 지역에서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 상담소가 문을 닫는 과정에 피해자들이 다른 지원기관으로 이전되면서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예산삭감으로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상담도 어려워졌다. 고용노동부는 상담에서 권리구제까지 창구 단일화로 실효성을 높여나가겠다며 민간에 지원되는 예산을 삭감해버렸다. 19개 고용평등상담실의 예산은 삭감하고 대신 산하 8개 지청에 1명씩 전담 상담원을 고용해서 상담과 권리구제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 가장 어려운 조건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접근가능한 상담실이 줄어들고 있다.

민주화 이후 어렵게 성장해 온 민간 상담소들이 위축되는 데다 행여 오랜 상담 경험을 축적한 인력들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도 우려된다.

지방정부의 성평등정책도 역행 중
 
▲ 취임 2주년 기자회견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지방자치단체의 성평등정책 역행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지방자치단체 성평등정책 추진체계에서도 걱정스러운 변화가 발견되고 있다.

강원도는 보건복지여성국을 복지국으로 통합하면서 '국' 명칭에서 '여성'을 삭제하였다. 경상북도는 아이여성행복국을 폐지하고 여성아동정책관으로 위상을 격하시켰다. 국∙실 단위의 변화가 없어도 과∙팀 단위에서 여성, 성평등을 삭제한 경우도 있다.

지방자치단체 산하의 성평등정책 연구기능도 효율성과 예산 절감을 이유로 축소되거나 약화된 경우가 발견되었다. 성평등정책 연구기능을 갖는 대구여성가족재단은 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사회서비스실 내 여성가족사업팀으로 편재되었다.

울산시도 울산여성가족개발원과 울산사회서비스원을 통폐합해서 울산복지가족진흥사회서비스원으로 개편하였다. 서울시 성평등기본조례에 따라 설치되고 6년간 운영되어 온 서울특별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도 폐지 예정이고, 센터는 5월 30일 센터 폐지 이후를 모색하는 공론장을 연다.

평등하고 안전한 사회로 가는 조타수

지난 2년간 사회 전 영역에서 진행된 퇴행을 보며 많은 이들이 '눈 떠보니 후진국'이 되고 있다고 한탄을 한다. 퇴행의 깊이와 파장을 세세히 살펴보고 좀 더 평등하고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짚어볼 때다. 선거국면에서 민주진영에서조차 젠더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 또 다시 젠더갈등을 먹이 삼는 여당의 프레임에 말려들까 걱정하는 소리를 여러 군데서 들은 적이 있다.

민주화와 함께 진전해 온 성평등이 단기간에 이토록 퇴행해도 갈등에 말려들까 싶어 제대로 된 진단을 피해가야 한다면 그것이 더 심각한 민주주의 기초의 위기신호이다.

한국리서치의 한 정기조사는 우리 사회에서 개인과 가정이 양성평등 실현을 위해 하는 노력에 비해 정부, 국회, 법원, 지방자치단체 등 제도적 리더십은 약하다는 인식을 보고하고 있다. 시민들이 사적인 노력에 비해 제도적 노력이 미흡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무렵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UN CEDAW)의 제 9차 한국 정부 본심의가 진행되었다. 이 위원회는 한국 정부 대표단에게 여성가족부 폐지를 비롯한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 퇴행과 한국 사회의 성평등민주주의 퇴조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윤석열 정부 2년을 지내며 도처에서 성차별에 대한 제어장치가 무너지면서 성별 불평등은 강화되고 고착된다는 아우성소리가 들린다. 짧은 지면에 감히 담기 어려운 정도이다.

정부가 성평등 민주주의를 퇴보시키는 국면에서 평등하고 안전한 사회를 향해 가는 조타수 역할이 필요하다. 야당과 여성운동을 비롯한 시민사회가 더 깊은 민주주의, 포용적 민주주의를 위한 조타수 역할을 할 때다. 공론장에 나서는 모든 주체들이 같은 생각이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성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 크고 작은 대화의 장이 열리고, 불편한 주제라도 서로 신뢰하며 의견과 경험의 간극을 좁히는 소통의 노력이 이루어지는 다양성과 관용의 공론장이 형성되길 기대한다. 성평등이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엄규숙은 경희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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