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사위보다 깐깐하게” 후계 찾아 중소 살리는 기업銀 [인터뷰]

정진용 2024. 5. 17.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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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자 어디 없나요…문 닫는 중소기업들
성공보수 적고, 제조업 비선호에 ’이중고’
기업발굴부터 거래 성사까지…전 과정 책임지는 기업銀 M&A 중개주선팀
“건전한 M&A, 중소 성장에 꼭 필요”
IBK기업은행의 M&A 중개주선 사업팀 김진형 팀장이 지난 8일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사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정진용 기자

“사장님에게 기업은 본인 인생 그 자체입니다. 매수 희망자와 마주 앉으면 예비 사위보다 까다롭게 보세요. M&A(인수합병) 성사 후에는 이취임식 가서 꽃다발 드리고 안아드려요. 인생 2막을 응원하는 기쁜 자리인데 막 우세요. M&A 후 기업이 더 성장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뿌듯한지 모릅니다”

‘제조업 강국’에 고령화 그늘이 드리우고 있다. 중소기업 경영인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업력 30년 이상 기업의 대표자 연령 구성은 60세 이상이 80.9%에 달한다. 가업승계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 52.6%가 이미 폐업 또는 매각했거나, 고려하고 있다.

국내 제조업을 떠받치는 중소기업 소멸은 기술 사장으로 이어진다. 국가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M&A를 통해 이를 해결해 보려 나선 이들이 있다. IBK기업은행의 M&A 중개주선 사업팀이다. 기업은행의 M&A 중개 주선 사업은 2022년 9월부터 시작했다. 300억원 미만의 중소형 M&A가 주요 지원 대상이다. 기업은행은 기업 발굴부터, 협상 조율, 계약 체결, 대금 납부까지 전 과정을 지원한다. 장기간 기업은행이 축적한 200만개 이상의 중소기업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성사율을 높인다. 김진형 기업은행 M&A 중개주선 사업팀 팀장을 지난 8일 서울 중구 본사에서 만났다.

중소 제조기업은 M&A에서 이중고를 겪는다. 중소기업은 매각 소문이 퍼지는 것 자체로 타격을 입는다. 직원이 동요하고 경쟁 업체는 우수한 인력을 데려간다. 거래처를 뺏기는 일도 빈번하기에 보안이 중요하다. 내부 전문 인력이 없고 경험도 적다 보니 외부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M&A 시장에서 중소기업은 찬밥 신세다. 품은 품대로 드는데, 성공보수가 적어서다. 사회적 책임감으로 M&A 중개주선에 발 벗고 나선 기업은행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제조업 선호도가 갈수록 떨어지는 영향도 있다. 김 팀장은 “경영인을 직접 만나보면 10명 중 9명이 ‘후계자가 없다’고 한탄하신다”며 “‘자식이 없다’는 게 아니다. 자녀는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등의 이유로 가업 잇기를 원치 않는다. 전통 제조업에 대한 젊은층 관심이 적은 것도 한몫 한다”고 설명했다.

중개주선은 컴퓨터 앞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팀원들이 직접 발로 뛰며 추진한다. 일단 신청이 들어오면 현장 방문이 필수다. 팀원들의 단골 경유지는 울산(통도사) KTX 역. 수도권과 충청권은 기본이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경남 양산·김해, 울산 등지로 출장 일정이 잡혀있다. 기업은행 이름을 걸고 하는 사업이다 보니 실제 공장이 돌아가는지, 기업을 내놓는 진짜 이유가 뭔지 여러 번 점검한다. 검증 통과 후에야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짧게는 3, 4개월부터 길게는 3년까지. M&A 성사에 걸리는 시간은 천차만별이다. 김 팀장은 “100개가 넘는 기업을 소개하는 등 ‘짝꿍’을 찾기까지 오래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딜(거래) 성사에 있어서 중개주선팀과 경영인 간 인간적 신뢰도 중요하다. 이취임식 참석은 물론이고 인연은 그 뒤에도 끈끈하게 이어진다. 기업은행 중개로 2022년 제빙기 기업을 인수한 한 중소기업은 눈에 띄게 성장하더니 지난해 ‘200만불 수출의 탑’ 상을 받았다. 김 팀장은 “딜 성사 후 공장을 다시 가봤더니 직원 식당, 기숙사부터 새로 지으셨더라. 젊은 경영인이 열의를 갖고 회사를 키우는 게 눈에 보였다”며 “상을 받았다고 팀에 기념 수건도 돌리셨다”고 말했다. 또 한 팀원은 30년 전 기업은행 대출로 부지를 사고 공장을 지어 사업을 일군 경영인의 M&A를 완료한 뒤 “내 인생, 사업의 시작과 끝은 다 기업은행”이라는 감사의 말을 듣기도 했다.

아직도 ‘좋은 기업 싸게 나오는 것 없나요’라는 문의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 M&A를 횡재하는 수단, 혹은 경영권 뺏기로 보는 부정적 인식 때문이다. 김 팀장은 “경영인이 아름답게 은퇴한 뒤에도 기업은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중소기업 M&A가 한국 경제에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팀원 모두 절실히 느낀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더 좋아하게 되고 더 감사하게 된다”며 “건전한 M&A가 중소기업 생태계에 꼭 필요하다는 인식이 더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미소 지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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