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라드 칼럼] 국제사회에서 폐쇄성 더 강화된 북한 체제

2024. 5. 17.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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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북한은 이미 오랜 세월 외부 시선을 거부하는 폐쇄된 국가였다. 하지만 최근 몇 주간 발생한 두 가지 사건으로 그 폐쇄성이 더 짙어졌다. 먼저 지난 2009년 대북제재 이행 모니터링을 위해 설립된 유엔 안보리 전문가 패널의 활동이 지난 3월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임기 연장이 무산됐고, 지난 4월 30일 종료됐다. 전문가 패널은 지난 15년간 북한의 제재 회피 행위에 대한 훌륭한 보고서를 발간해왔다. 북한 상황을 지켜보는 많은 이들에게 중요한 데이터 원천으로 작용했는데 그게 끊어지게 됐다. 전문가 패널은 대북제재 이행 실행 방안에 대한 자문도 유엔 회원국에 제공했다.

「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 활동 중단
북한 상황 파악할 데이터 끊겨
유럽 국가들 공관 재개도 무산

에버라드 칼럼

많은 정부가 유엔 안보리의 제재 실행에 혼란을 겪었기 때문에 전문가 패널이 중간에서 기대치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기술적 지원도 제공했는데, 세관 인력의 금지 품목 파악이 좋은 사례다. 전문가 패널을 대신할 그 어떤 조직도 유엔의 공식 절차를 통해 임무를 부여받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업무 수행이 어려울 것이다. 안보리 표결 작업으로는 불가능해 보이기에 유엔 총회에 직접 보고하는 조직을 신설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2016년 시리아 전쟁 범죄 조사를 위해 유엔 총회가 설립한 ‘국제중립독립기구(IIIM)’와 유사하게 말이다.

총회에 직접 보고하는 기구는 장점이 있다. 이번에 종료된 전문가 패널은 국적 기반으로 선정됐지만, IIIM은 실질적 역량 기반이었다. 중국과 러시아 국적 위원들의 방해로 어려움을 겪은 전문가 패널과 달리 IIIM은 내부 방해 작전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이번 패널의 종료는 북·러의 새로운 밀착 관계를 보여준다. 러시아의 거부권은 북한에 대한 석유와 곡물 지원, 그에 대한 대가로 엄청난 양의 탄약을 받는 관계에서 비롯됐다. 우크라이나 공격에 사용된 미사일 잔해를 분석해, 북한이 부인했음에도 러시아 군이 북한 미사일을 사용했음을 밝힌 것도 전문가 패널의 보고서였다.

이번 전문가 패널 해산은 매우 우려스럽다. 국제안보 유지를 가능하게 했던 시스템과 이것을 뒷받침해온 공감대가 무너졌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유엔 체제가 미국의 지배를 받고 있어서 러시아가 유엔 규칙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만큼 국제 규범을 위반하는 국가를 찾기도 어려운데 유엔 안보리가 그런 북한에 적절한 조처를 못 하는 사실 자체가 국제 체제의 실패를 여실히 보여준다.

유럽 여러 나라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장기간 비워뒀던 평양 주재 대사관에 당분간 외교관을 파견하기 어렵다는 점도 폐쇄적인 북한의 상황 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 2월 말 독일 대표단과 스웨덴 대사 지명자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낙관론이 고개를 들었다. 그 후 영국·폴란드도 추가 방북이 계획됐었다.

그러나 지난 3월 정국이 다시 급랭했다. 북한이 대표단의 방문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독일과 스웨덴은 평양 방문 이후에도 자국 대사관 외교관 임명 절차에 진전이 없다고 했다.

북한 주재 외국 공관이 다시 문을 열면 유럽과 북한의 직접적 접촉이 가능해질 뿐 아니라 북한 내부 사정을 직접 볼 기회를 갖게 된다. 북한 주재 외국 공관 폐쇄는 이러한 기회 자체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북한에 남아 있는 외교관은 러시아나 중국밖에 없는데, 이들은 한국과 서방 세계에 북한 정보를 공유할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외국 공관 재개는 왜 중단됐을까. 확실히 알 길은 없지만, 지난 3월 관련 절차에 대한 통제권이 북한 외무성에서 다른 보안 기관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외무성은 서방 외교관의 북한 재입성을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 보안 당국은 북한 주재 외국 외교관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다. 이들은 심각한 외국인 혐오증을 갖고 있으며 평양 주재 외교관들을 스파이로 여긴다.

이제 북한의 새로운 대외 관계는 김정은-푸틴의 직접 접촉, 대폭 축소된 서방 세계와의 관계로 표현될 수 있다. 따라서 외무성의 영향력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보안 당국의 영향력은 커졌는데 북한 당국이 외국의 영향력에 대해 더 큰 우려를 갖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안 그래도 어려운 북한과의 대화는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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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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