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의 시선] 일본 ‘100년 안심 연금’ 우린 왜 못 하나

주정완 2024. 5. 1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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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완 논설위원

한국은 30년밖에 못 버티는데 일본은 90년이 지나도 끄떡없다. 한국 국민연금과 일본 후생연금의 엇갈린 미래 전망이다. 일본의 미래 세대는 최소한 2115년까지 후생연금에 쌓인 돈이 바닥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막대한 연금 부채를 떠안을 수밖에 없는 한국의 미래 세대와 대조적이다. 일본에도 다양한 문제는 있지만, 적어도 연금 재정의 안정성이란 측면에선 한국의 완패다.

현재대로 가면 한국 국민연금은 파탄을 피할 수 없다. 지난해 3월 정부는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를 발표했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한 번씩 하는 계산이다. 이걸 보면 국민연금 기금은 2041년 적자로 돌아서고 2055년 완전히 바닥이 난다. 2018년 발표한 제4차 재정계산과 비교하면 기금 고갈 시점은 2년이 빨라졌다. 출산율이 예상보다 더 낮아지거나 경제성장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2055년까지도 못 버틸지 모른다. 그 이후에는 천문학적인 국가 부채를 일으키거나 막대한 세금을 걷는 것 외에 뾰족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 한국은 2055년 연금 완전 고갈
일본은 2115년까지도 끄떡없어
연금 재정 안정성, 한국이 완패

일본도 5년마다 연금 재정계산 결과를 공개한다. 2019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2115년까지도 후생연금 적립금은 바닥나지 않는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100년의 재정균형 기간을 설정해 연금을 관리하고 있다. 향후 100년간 연금 지급은 문제없으니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보내는 셈이다. 공적연금의 안정적 관리로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건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오는 8월에는 새로운 연금 재정계산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일본의 연금 재정이 한국보다 훨씬 안정적인 이유는 단순하다. 한마디로 일본 사람들은 한국보다 ‘훨씬 더 내고 훨씬 덜 받기’ 때문이다.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에 사회적 합의로 이뤄낸 연금개혁이 바탕이 됐다.

일본의 공적연금은 2층 구조로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세부적인 부분은 다르다. 1층은 국민연금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으로 치면 기초연금에 해당한다. 다만 누구 돈으로 연금을 주느냐를 보면 결정적 차이가 있다. 한국 기초연금은 전액 국가 예산으로 충당하지만, 일본은 가입자와 국가가 함께 부담한다. 2층의 후생연금은 한국의 국민연금에 해당한다. 한국과 달리 자영업자를 제외한 급여생활자만 가입 대상이다.

20년 전에는 일본도 후생연금이 골칫덩어리였다. 저출산·고령화와 경제성장률 둔화로 막대한 적자가 예상됐다. 대수술이 시급했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 소속의 사카구치 치카라 후생노동상(한국의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 장관)이 나섰다. 그는 ‘연금 100년 안심 플랜’을 제시하며 연금개혁 논의를 이끌었다. 개혁의 핵심은 ▶연금 보험료율의 단계적 인상 ▶경제 상황에 따라 실질 연금지급액을 삭감하는 자동안정장치 도입이었다.

물론 진통이 없진 않았다. 정부 안에서도 후생노동성과 재무성의 입장이 달랐고, 여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결국 고이즈미 총리는 2004년 2월 각의(국무회의)에서 연금개혁안을 확정해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일본 국민은 적어도 100년간 연금 재정의 고갈을 걱정하지 않게 됐다. 현재 일본 후생연금의 보험료율은 18.3%다. 일본 직장인들은 한국 국민연금 가입자(9%)보다 배 이상 많은 연금 보험료를 낸다는 얘기다.

은퇴 후에도 일본 사람들은 한국보다 연금을 적게 받는다. 일단 일본 정부가 발표한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은 2019년 기준 61.7%다. 앞으로 경제 사정이 나빠져도 50% 이상은 보장한다는 계획이다. 얼핏 한국 국민연금(소득대체율 40%)보다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아니다. 일본의 소득대체율 61.7%는 1층(부부 기준)과 2층(외벌이 직장인 기준)의 연금을 합친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노인 부부의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합쳐서 계산했다. 2층에 해당하는 후생연금만 따지면 소득대체율은 25% 수준에 그친다.

만일 일본처럼 100년 뒤에도 연금으로 줄 돈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우리도 소득대체율을 얼마든지 올려도 좋다. 하지만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처럼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재정안정을 중시하는 전문가 모임인 연금연구회는 “현 상황에서 소득대체율을 올리게 되면 우리 자녀, 또 그들의 자녀 세대의 희생이 불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당장은 1~2%포인트의 차이가 작아 보여도 그게 수십년간 누적되면 엄청난 적자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재원 마련 대책도 없으면서 섣불리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건 미래 세대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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