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 집에서 나오는 남자를 미행하게 된 이유
[조영준 기자]
▲ 영화 <비행사의 아내> 스틸컷 |
ⓒ IMDB |
01.
영화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관객이라면 어떤 형식으로든 에릭 로메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누벨바그라는 단어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는 감독으로도 평론가로도 위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유난스럽게도 '연작'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소개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이야기를 각각 다음 '사계절 이야기' 연작이 대표적이고, 이 영화 <비행사의 아내> 역시 '희극과 격언'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여섯 편의 서로 다른 이야기의 첫 번째 작품에 속한다.
에릭 로메르 감독의 연작에는 공통된 주제가 각각의 작품을 관통하고 있다. 가령 그의 또 다른 연작인 '여섯 개의 도덕' 안에는 개인의 욕망과 외부의 유혹 속에서 도덕적 선택을 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남자가 중심이 되는 식이다. 해당 연작에 속하는 <수집가>(1967),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1969) 등의 여섯 작품에는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그려진다. 동일한 형식으로 '희극과 격언' 연작 속에는 어떤 우려스러운 상황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여성과 그로 인해 함께 혼란에 휩싸이게 되는 주변 인물이 등장한다.
▲ 영화 <비행사의 아내> 스틸컷 |
ⓒ IMDB |
"넌 불평만 하면서 누구와도 함께 살지 않잖아."
앞서 프랑수아가 이 극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라고 했지만, 조금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극을 움직이는 인물에 가깝다. 의미적으로는 안느가 극의 중심에 더 가까운데, 그녀가 극을 추동하게 하는 프랑수아의 동력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동력이 긍정적인 형태로 발현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은 영화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가 어떤 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근원이자 영화가 멈추지 않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정확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는 안느의 행동 하나는 그녀를 사랑하는 프랑수아에게 세 가지 장치가 되어 전달된다. 크리스티앙을 두 사람 사이에 놓기 이전에, 안느가 가진 사랑에 대한 입장과 해석이 그 첫 번째다. 사랑하는 사람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그와 달리, 그녀는 자신이 정해놓은 방식과 경계 이상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랑이 함께 사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속에 담긴 의미다. 그녀가 일하는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서는 안 되고, 연락을 하기 위해서는 직접 집 앞으로 찾아가 메모를 남겨야 한다는 안느의 규칙은 그런 바탕 위에 놓여 있다.
그런 태도를 보이면서 정작 자신은 한 남자가 아닌 여러 사람과 자유롭게 연애하고 싶어 하는 모습은 두 번째 장치가 된다. 실제로 안느는 프랑수아를 만나는 동안에도 몇 명의 남자와 만난다. 이쯤 되면 이른 아침 크리스티앙과 함께 집을 나서는 그녀의 모습을 마주한 프랑수아가 의심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언제나 나중에 모두 설명해 주겠다며, 관계에 대한 의심을 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살라는 여자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쉽게 믿을 수 없게 된다.
03.
"안느가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을까요?"
마지막 장치는 안느의 전 남자친구인 크리스티앙에게 있다. 이전의 두 가지 장치 위에서 작동하는 크리스티앙에 대한 프랑수아의 질투와 의심은 극이 세 사람의 관계에서 벗어나 루시(안느 로르 메리 분)를 개입시킬 수 있게 만들며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현상이 과연 문자 그대로의 진실에 해당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가능하도록 한다. 여기에는 남자의 미행 대상이 되는 크리스티앙과 한 여자에 대한 진실과 프랑수아와 루시 사이에서 엿보이는 감정의 형태에 대한 진실 역시 모두 포함된다.
루시의 등장과 함께 이어지는 공원 안에서의 미행 장면은 프랑수아와 안느의 하루 속에 포함된 일부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병렬된 형태로도 볼 수 있다. 자신을 따라 버스를 내리는 프랑수아에 대해 의심하는 루시의 모습과 (실제로 그는 두 남녀를 미행하기 위해 내렸다.) 안느의 집에서 아침 일찍 걸어 나오는 크리스티앙을 의심하는 프랑수아의 모습으로 인해서다. 장면이 가진 무게는 서로 다르지만 '오해'라는 측면에서 같은 맥락을 가지며 오버랩된다.
▲ 영화 <비행사의 아내>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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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복잡한 상황이 안느의 정확하지 못한 태도로부터 시작된 것은 사실이다. 비행사로 일하는 멋진 크리스티앙이 백마 탄 왕자처럼 자신을 데려갈 것이라 생각했기에 우체국 야간 근무 일을 하는 프랑수아에게 감췄던 부분이 있었다. 그렇게 이른 아침에라도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남자가 찾아오자 버선발로 뛰어나가는 것을 보면 그에게 요구했던 엄격한 요구 또한 부자연스러운 것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거짓이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루시에 대한 마음 하나와 자신이 미행했던 두 남녀의 관계에 대한 진실, 프랑수아가 그렇게 믿고 있었던 추측이 아닌 실제가 놓이며 극 전체의 의미를 다시 한번 강하게 드러낸다. 우리의 의식과 믿음이라는 것이 단순히 외부의 영향이나 타인의 태도에 의해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우리의 삶은 종종 그런 추측과 상상, 의심과 같은 것들로 완성된다는 사실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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