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중순에 패딩을 꺼낸 이유

강홍구 2024. 5. 1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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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금강 세종보 농성장의 열여섯번째 밤

[강홍구 기자]

 15일 금강 세종보 농성장을 찾았다. 지난 4월 30일 이들이 행동에 나서게 된 이유는 환경부의 '보 정상화 정책' 때문이다.
ⓒ 강홍구
 
15일은 부처님 오신 날, 스승의 날이 겹친 날이었다. 이런 경건한 날, 세종보 농성장이 16일째를 맞았다. 그렇게 좋은 연휴에 농성장을 찾았다. 그런데 때아닌 돌풍과 장대비가 몰아쳤다. 드라이 맡기고 옷장 한구석에 넣어둔 패딩을 급히 찾아냈다. 5월 중순에 패딩을 입게 될 줄이야. 강원도는 눈이 왔다는데 하고 위안 삼았다.
서울역에서 오송역까지 기차로 온 뒤 차로 30분을 달렸다. 세종시에 도착했다. 금강스포츠공원 주차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 광활했던 게이트볼장을 건너니 작은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물떼새 산란중 조심하세요.' 아 여기구나. 그리고 살짝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니 1분 거리에 천막과 현수막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이 바로 농성장이었다. 
 
 15일 금강 세종보 농성장
ⓒ 강홍구
농성
1. 적에게 둘러싸여 성문을 굳게 닫고 성을 지킴.
2.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한자리를 떠나지 않고 시위함. (네이버 국어사전)

익숙할 때도 됐지만 여전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단어다. 어쩌면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군사용어 아닌가. 요즘에는 첫째 의미보다 둘째 의미로 뉴스에 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1번의 의미가 와닿았다. 금강을 둘러싸고 있는 인공 구조물들, 아파트와 교량, 그 위를 지나다니는 차들 그리고 문제의 세종보까지. 주변을 켜켜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 때문일까. 텐트 한 동이 전부인 빈약한 그곳이 하나의 작은 성체처럼 보였다.

이 단어에는 한이 서려 있는 것 같다. 두 가지 뜻 모두를 관통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절박함이다. 외적의 침입을 받아 적에게 둘러싸여 목숨을 걸고 삶의 터전을 지켰던 과거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떠나지 않고 시위를 한다는 현재나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고 싶은 강렬한 마음을 담고 있다.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농성을 시작한 이유도 다르지 않다. 

지난 4월 30일 이들이 행동에 나서게 된 이유는 환경부의 '보 정상화 정책' 때문이다. 4대강사업으로 훼손된 자연을 재자연화하는 것이 정상화 아니냐는 생각이 들겠지만, 환경부의 문제 의식은 달랐다. 오히려 보를 운영하지 않았다에 맞춰져 있었다. '가뭄·녹조·홍수에 대비하고 경관을 개선해 주요 행사장으로 활용하겠다.' 여기에 2026 국제정원도시박람회도 따라 나왔다.

결국 보를 가동해야 하는 이유는 돌고 돌아 지역 발전이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침을 받아 이행하기 바빴다. 이대로라면 인근 지역의 풀숲은 수몰될 예정이다.
 
 15일 찾은 금강 세종보
ⓒ 강홍구
산업화는 이제는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목표가 아니다. 그 시대를 넘어선 지도 근 30년이 되어간다. '개발예비군'이라는 유령이 여전히 남아 떠돌고 있기라도 한 것일까. 멀쩡한 강을 뒤집어 놓았던 4대강 사업의 흑역사를 잊은 것일까. 4대강의 후예들은 여전히 자연에 깊은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기어이 보를 가동해야만 할까.

금강처럼 보전과 공존의 지혜가 필요한 곳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는 없는 걸까. 말로는 기후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외치지만 여전히 개발이 우선이라는 담론은 바뀌지 않았다. 성장 동력에 방점을 찍는 듯한 환경부 홈페이지 문구를 보며 다시 한번 한숨이 나왔다. 

세종보와 공주보 재가동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수문이 닫히면 모래와 자갈은 다시 수장된다. 강의 자연성 회복은 안중에도 없다. 보 처리 방안을 졸속으로 취소했고, 지난해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을 엉망으로 변경하는 것을 넘어 물환경 정책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고 한다. 댐을 더 건설하고, 하천 준설을 대대적으로 해볼 심산이다. 
 
 지난 4월 30일 이들이 행동에 나서게 된 이유는 환경부의 '보 정상화 정책' 때문이다. 4대강사업으로 훼손된 자연을 재자연화 하는 것이 정상화 아니냐는 생각이 들겠지만, 환경부의 문제의식은 달랐다. 오히려 보를 운영하지 않았다에 맞춰져 있었다.
ⓒ 강홍구
 
금강은 세종보와 공주보를 5년 이상 개방하면서 자연성 회복상을 뚜렷이 확인 할 수 있는 4대강의 교두보이다. 이번에 세종보와 공주보 수문이 다시 닫히게 되면, 언제 다시 수문을 열 수 있을까. 게다가 낙동강의 보 개방, 보 처리방안 마련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강은 흘러야 한다는 상식은 언제쯤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정상화 같은 단어가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되는 이 현실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기약 없는 이 농성은 언제 마무리 될 수 있을까. 활동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생을 나누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역시나 농성은 쉽지 않았다.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거나 정신 승리다. 날씨도 야속했다. 그칠 듯하면서 비는 끊임없이 내렸다. 바람도 쉴새없이 몰아쳤다. 교량을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소리는 새벽에도 끊이지 않았다. 잠자리 역시 편할 리가 없다.

혹여라도 비에 강물이 불어나 텐트가 떠내려가면 어쩌나 밤을 지새웠다. 다행히 비는 잦아들었다. 새벽 3시까지 지켜보다 쪽잠을 청했다. 그렇게 또 하루 농성의 밤이 지나갔다. 오늘도 금강은 유유히 흘렀다.

덧붙이는 글 | 강홍구 기자는 환경운동연합 중앙사무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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