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트럼프 6월27일 TV토론…확 당겨진 '美대선시계', 왜?
“트럼프는 2020년 두 번의 TV토론에서 저에게 진 뒤 TV토론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젠 다시 붙고 싶은 모양이네요.”(조 바이든)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인 비뚤어진 조 바이든과의 TV토론을 수락하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선에서 맞붙는 조 바이든 대통령 측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6월 27일 첫 TV토론을 열기로 15일(현지시간) 합의한 뒤 두 당사자가 각각 소셜미디어에 올린 '기선제압용' 메시지다. 이날 양측 캠프는 양자 TV토론을 6월 27일(1차ㆍCNN 진행), 9월 10일(2차ㆍABC 진행) 두 차례 갖기로 합의했다. 통상 11월 투표일을 한두 달 앞둔 9~10월에 진행되던 TV토론이 서너 개월 확 당겨졌다.
대선후보 지명 전대 전 TV토론부터
1차 TV토론일인 6월 27일은 공화ㆍ민주 양당의 대선 후보 공식 지명 절차인 전당대회(공화당 7월 15~18일, 민주당 8월 19~22일)가 열리기 전이다. 양당 대선 후보가 경선이 정점이던 지난 3월 5일 ‘슈퍼 화요일’에 일찌감치 사실상 결정된 이후 미국의 대선 시계가 역대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TV토론 조기 개최는 반전의 모멘텀이 필요한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적 도박이라는 평이 나온다. 전국 단위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 꾸준히 뒤처졌던 바이든 대통령은 3월 국정연설에서 활기찬 모습을 보여준 뒤 격차를 좁혔고 일부 조사에선 뒤집는 결과를 보이고 있다. 15일 기준 정치전문매체 더힐이 698개 여론조사를 총합해 낸 평균치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44.7%로 트럼프 전 대통령(44.3%)을 0.3%포인트 앞섰다.
하지만 대선 승패를 가를 핵심 승부처인 스윙스테이트(경합주)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여전히 고전하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지난 13일 공개한 스윙스테이트 6개 주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위스콘신을 뺀 나머지 5개 주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전 모멘텀 원한 바이든의 도박
'고령리스크'가 약점으로 꼽히는 바이든 대통령은 그간 돌발적인 넘어짐 등 실수를 막기 위해 기자회견과 같은 외부 노출을 최소화해 왔다. 하지만 유권자의 관심이 집중되는 TV토론에서 트럼프에 일격을 가해 판을 바꾸겠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수석보좌관이었던 정치 전략가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건강ㆍ능력 등에 대한 의구심이 있는 상황에서 바이든이 많은 것을 걸었다”며 “이겨낸다면 대선 판도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에 말했다.
TV토론을 일찍 하면 혹 실수가 있더라도 이후 만회할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역사상 가장 빠른 TV토론이 성사됐다”며 “투표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시점에 토론 일정을 잡아 두 후보 모두 실수를 하더라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TV토론 스케줄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소셜미디어에 올린 동영상을 통해 “수요일은 한가하다고 들었다”고 트럼프에 한 방 날렸다. ‘성추문 입막음’ 사건 형사재판으로 매주 수요일을 제외하고는 법원에 출석해야 하는 트럼프 처지를 비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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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수렁’ 탈출 원한 트럼프도 “OK”
트럼프 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글을 통해 곧바로 응수했다. 그는 “비뚤어진 조(바이든)와 기꺼이 토론할 의향이 있다”며 “두 차례 이상의 토론과 흥행을 위한 매우 큰 장소를 원하지만 바이든은 군중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맞받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의 공개 토론을 제안해오긴 했지만 이번에 뜻밖에 신속하게 응한 것은 주 4회 출석해야 하는 형사재판으로 선거 유세 등에서 발목이 잡힌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카드가 필요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성추문 입막음 사건 재판 과정에서 불리한 증언이 쏟아져 나오는 등 수세에 몰린 분위기를 돌리고 대중 앞에서 ‘정적 탄압론’을 펴기 위해 TV토론이란 무대가 필요했을 거라는 얘기다.
“제3후보 배제 바이든·트럼프 이해 일치”
특히 양 후보 측은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를 포함한 제3 후보는 조건 미달을 이유로 TV토론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추진했다고 한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는 “그들이 담합하고 있다. 내가 이길까봐 두려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송원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사무총장은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가 ‘리스크 팩터’(위험 인자)로서 바이든 표를 가져갈 가능성과 트럼프 표를 잠식할 가능성이 혼재돼 있는 만큼 그를 배제하고 1대1 토론으로 구도를 단순화하는 데 바이든과 트럼프 측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정치에서 대선 후보 TV토론은 특별한 정치 이벤트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맞붙은 2020년 대선 당시 TV토론에는 7300만 명 이상이 시청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겨룬 2016년 대선 TV토론에는 8400만 명이 시청했다.
통상 미 대선을 앞두고는 공화ㆍ민주 양당 후보가 비영리 단체인 초당파적 ‘대통령토론위원회’ 주관으로 세 차례 TV토론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도 세 차례 토론이 추진됐다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코로나19에 확진되면서 한 차례는 취소됐고 두 번(9월 29일, 10월 22일)의 토론이 열렸다. 당시 두 번의 TV토론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 발언 도중 번번이 말을 끊고 끼어들고 막말과 인신 비방이 오가는 등 혼란과 무질서 속에 진행돼 전체적으로 실망스러웠다는 평가가 많았다.
대통령토론위는 15일 성명을 내고 바이든ㆍ트럼프 측 합의와 무관하게 대선 후보 토론회 세 번, 부통령 후보 토론회 한 번 등 총 네 차례의 토론회를 계속 계획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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