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양육시설 없애기에 진심... 속상합니다"
[메밀]
삶터이자 일터인 곳, 아동양육시설에서 일하는 생활지도원 A님과 이야기 나눠보았다. 공공양육 기관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동시에 돌봄의 세계에서 거래와 교환의 셈법이 얼마나 빛 바래는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24시간 3교대 생활시설 안에 쌓인 수많은 고민 중 일부를 정리해본다.
- 반갑습니다. 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아동양육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사회복지사고요. 아동복지 분야에서 10년째 일하고 있어요. 예전에 고아원이나 보육원으로 부르던 곳을 생각하시면 되고, 이제는 아동양육시설이라고 불러주시면 좋겠습니다."
- 네, 고맙습니다. 기억해둘게요. 아동양육시설에서는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나요?
"그야말로 아이들 키우는 곳이에요. 아이 재우고 깨우고, 때맞춰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계절 바뀌고 몸 커가면서 옷이랑 신발 사고, 계절 맞춰 이불 갈고, 이 닦는 법이랑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표현하는 방법 등 삶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가르치고, 싸우고 떼쓰고 거짓말하는 것 훈육하고, 아프면 병원 데려가고, 약 챙겨 먹이고, 숙제 챙기고 하는 양육의 범주에 들어가는 모든 노동을 하죠. 그리고 당연히 그에 따르는 청소와 빨래, 요리 같은 생활노동과 학교 방문, 병원 동행, 물품 구입 등의 일도 해야 하고, 갑자기 아픈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간다거나 경찰 조사 동행을 하는 등 사람을 키우면서 일어나는 예상할 수 없는 많은 일들도 대응하고 대처해야 합니다. 일반가정이 아니라 시설이니 프로그램 진행도 하고요, 보육일지와 상담일지 등 다양한 행정업무도 있어요.
▲ 아동의 마음을 미처 몰라준 것 같아 미안하다고 쪽지를 남기고 퇴근했는데, 책상 위에 답장이 와있었다. |
ⓒ A씨 |
- 노동 강도가 상당하겠어요.
"온 몸을 쓰는 일이니 골병이 들죠. 저와 제 동료들은 20대부터 50대까지 대부분 허리 디스크 문제를 가지고 있어요. 최대한 관리 하면서 일하는 거고, 그러다 아예 찢어지거나 터지기도 해요. 다들 손목보호대 차고 일하고요. 산재로 처리한 경우는 없고 치료비도 개인 부담이에요. 저희 포함 어떤 시설에서도 그런 사유로 산재 처리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어요. 큰 부상이나 질병으로 아플 땐 유급휴가를 주는데, 운영 예산이 딱 맞춰져있다 보니 단기인력을 고용할 수가 없어요. 그나마 코로나 때 대체인력지원센터가 생겨서 이런 경우에 공백을 메울 수가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그만두는 주된 사유에는 건강 문제보다 정서적 탈진 이슈가 더 많아요. 아이들 훈육 과정에서 아동에게 쌍욕이나 폭언 듣는 건 예사예요. 멱살을 잡히고, 주먹다짐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도 가끔 들어요. 아이들도 그런 표현이 진심은 아니에요. 양육자가 고정되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며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욕구를 충분히 해소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훈육도 일관적이지 않고요. 그렇다보니 대부분의 시설 아동들이 충동조절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어요. 안쓰럽고 이해도 하지만 아동의 분노와 원망, 피해의식을 아무 필터 없이 면전에서 듣는 일은 정서적인 손상을 입혀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설에서 일하시기로 한 까닭이 있다면요?
"일단 사회복지를 선택한 건, 영리 기업에서 일하는 게 제게는 무의미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성과를 내는 활동에는 별로 흥미를 못 느껴서요. 지역아동센터는 장기적인 케어가 힘든 경우가 많았어요. '방과 후 돌봄'의 영역에서는 간섭하기 어려운 양육태도의 문제라거나 가정 내 방임과 무관심, 폭력 등이 너무 안타깝고, 그런 안타까움이 쌓이고 쌓여서 '학부모' 없는 곳에서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동양육에 있어 제가 추구하는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하면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가능한 한 안정적인 애착 관계 안에서 밝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시설들끼리 모이는 큰 행사에 가면, 가끔 다른 데서 온 6, 7살 또래 아이들이 두 시간 내내 떠들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경우가 있어요. 어리광 피우기 어려운 환경이겠구나 싶어서 좀 안쓰러운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저는 어린이가 어른 눈치를 보면서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일하는 사람끼리도 최대한 감정 상하는 일 없고 다투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할 일이 눈에 계속 보이고, 해둬야 할 것이 항상 밀려있다 보니, 아이들 살피고 돌보는 데에 쓸 힘이 소진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동료들의 업무 여건이나 정서적 탈진이 오지 않게끔 나름대로 계속 살피고 애쓰고 있는데, 모르겠어요, 잘 되고 있는지. 솔직히 아동생활시설은 복지 쪽에서도 '3D'이기 때문에…. 그런데 또 한편에선 워낙에 고된 일이라는 걸 알고도 이 일터에 남아있는 생활지도원 선생님들 대부분이 이 일과 일터를 애정과 열의로 지켜가는 게, 제가 우리 일터와 제 동료들에게 마음깊이 가지고 있는 경의와 자부심이기도 해요."
- 애정과 애씀이 무엇 하나 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양육시설은 인력배치 기준이 아동 7명당 생활지도원 1명이라고 하던데. 인력이 부족해 보이는데 어떠세요?
▲ 동생들 초등학교 졸업식에 자립아동이 꽃다발을 사람 수대로 사왔다. 시설 예산으로는 조화밖에 못 산다. 고맙고 아깝고 예뻐서 시설 거실에 꽂아두고 함께 오래오래 보았다. |
ⓒ A씨 |
- 52시간 교대근무제 도입이 현장에 어떤 변화를 만들었나요?
"제가 처음 일할 때는 72시간 맞교대까지 했거든요. 원래도 생활시설이 24시간 맞교대, 48시간 맞교대가 일반적이었고요. 52시간제가 되면서 맞교대가 불가능해지고 3교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됐고, 그에 따라 인력도 충원된 거죠. 인력이 보강되고 노동시간이 줄어든 것 자체는 좋은데 업무 연속성은 낮아졌죠. 아침에 아이들 학교 보낼 때 잘 다녀오라고 인사한 선생님들이 하교하고 오면 퇴근하고 없거든요. 누군가가 하루 종일 맡아서 돌보는 것과, 하루 안에도 사람이 몇 번씩 바뀌는 건 아이들에겐 정서상으로 차이가 커요."
- 그런 면에서 그룹홈 같은 소규모 시설이 안정적인 애착형성에 기여한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현 정부는 양육시설 없애기에 진심이에요. 저희 원장님도 그룹홈으로 쪼개라는 소규모 시설화 간담회에 불려갔다 오시곤 해요.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탈시설과 정부가 말하는 '탈시설'이 너무 다르잖아요. 자립을 일부 실현하는 것처럼 해서 오히려 탈시설 정책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기도 하죠. 복지 예산을 줄이려고 탈시설 이름표만 붙여서 다른 형태의 시설로 대안 없이 자꾸 밀어내는 거예요. 대형시설에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 비리와 학대는 소규모로 쪼개지면 더 많은 사각지대로 은폐될 수 있고요. 시설이 답이라고도 말 못하지만, 지금 정부의 '탈시설' 정책엔 동의하기 어려워요. 최근에는 '돌봄 형태 다양화'로 용어를 바꾸는 것 같더라고요.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할 말이 정말 많지만, 저는 일단 지금 제도라도 잘 돌아가게 했으면 좋겠어요. 시설 인력 현실화하고, 통합교육 특수학급 늘리고, 특수학교 교실과 정원도 늘리고요. 지금 당장 우리 아이가 일반 학교 가서 아무 것도 못 하고 가만히 있다 오는데, 특수학교는 대기명단까지 꽉 차서 몇 년간 이름조차 올릴 수가 없어요. 속상합니다.
- 네, 돌봄은 모두의 문제이니 함께 고민해나가고 싶어요.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메밀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5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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