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생각하기'가 이뤄낸 치매 마을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진순 기자]
아프면, 늙으면, 치매 걸리면, 가난하면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하게 된 듯하다. 그렇게 보고 배워왔다. 그래서 우리는 늘 불안하고 공포스럽다. 생로병사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운명인데, 우리 사회는 비약적 발전을 해왔는데, 삶과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고작 이 정도임을 문득 깨달을 때마다 나 자신과 우리 사회에 대한 실망스러움이 감춰지질 않는다.
의사 박중철은 그의 책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에서 '초라한 삶의 질, 비참한 죽음의 질'로 우리 사회를 진단했고, 기적을 이루었지만 행복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존엄사', '안락사'라는 말이 일상어가 되더라도, 삶이 초라하다면 죽음이 갑자기 존엄하거나 안락해질 방법은 없을 것이다.
▲ 여가 활동을 하고 있는 노인 요양원의 노인들. |
ⓒ elements.envato |
이런 절망적인 질문을 품고 있던 차에 네덜란드의 호그벡 마을 이야기를 기사로 접하게 되었다. 우에노 치즈코의 책을 통해 이런 마을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치매에 걸렸다고 어딘가에 모여 살아야 할 필요 없이 자신이 살던 집에서 살다 죽을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었다.
<디멘시아뉴스>는 치매를 다루는 매체로 세계의 치매마을 기사를 시리즈로 싣고 있다. 네덜란드, 프랑스, 캐나다, 미국 등 세계의 치매마을을 소개하고 있는데, 기사를 읽고 사진을 보다보면 '치매=비참=공포'의 등식이 들어있는 우리의 머리를 세게 한 방 때리는 기분이 들곤 한다.
네덜란드의 호그벡 기사를 보면서도 그랬다. 이 곳이 중증 치매 노인들이 사는 '치매 마을'이라고? 노인들이 햇빛 비추는 광장에 앉아서 놀고 있고, 식탁에 둘러앉아 기분 좋은 표정으로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의 상식에 걸맞는 '중증 치매인'들의 모습이 아니다.
호그벡은 2008년 세계 최초로 네덜란드의 수도 근처에 만들어진 치매 마을이다. 치매 노인들 200여 명과 그보다 많은 의사·간호사·자원봉사자 등 총 400여 명이 축구장 세 개 정도 규모의 마을을 이루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수용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기 위한 소수의 인원 6~7명이 한 집에서 살아가고, 술집, 슈퍼마켓, 탁구장, 골목, 영화관, 광장 등 우리가 '마을'이라고 말할 때 떠올리는 것들이 갖추어진, 말 그대로 마을이다. 요즘 많이 알려진 살기 좋은 도시 '15분 도시'를 이곳 호그벡은 이미 실현하고 있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창립자는 말한다. 호그벡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했다고, 내 앞에 있는 환자들을 보며 그분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기에 가능했다고, 그리고 '다르게 생각하기'는 미소 짓는 것처럼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그래서 호그벡 마을은 특정한 어떤 곳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가능하다고.
한국에서는 한 지자체가 호그벡 모델을 지향하는 사업을 시도한 적이 있으나, 충분히 예상 가능하듯 주민 반대 등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하지만, 몇몇 지자체들에서 새로운 시도, '다르게 생각하기'의 실험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들을 접하면서 절망을 다시 조금 미루어본다.
삶의 시작이 돌봄 없이는 불가능하듯 삶의 마무리 역시 따뜻한 돌봄 없이는 초리하고 비참할 수밖에 없다. 노년의 삶과 자연스럽게 이어질 죽음의 문제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관성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그래서 다르게 생각해야만 하는 과제인 듯하다. 돈이 많은 것을 해결해주지만, 돈 같은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더 많고 더 중요한 것들이 우리 삶에는 깃들어 있다.
뒤늦게, 더듬더듬, 독학으로 '다르게 생각하기'를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그 배움의 과정에서 네덜란드는 여러 면에서 나의 눈길을 멈추게 했다. 한국 사회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훨씬 인간적 삶을 누리고 있는 듯한 호그벡 주민들의 표정이 그랬고, 부인과 함께 안락사를 선택한 전 총리의 부부의 맞잡은 손이 그랬다.
높은 곳에 서서 '겁내지 말고 용감하게 뛰어내려!'라고 응원 또는 압박을 받는 듯한 느낌으로 나는 우리 사회의 안락사 논쟁을 접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평온한 죽음의 하나로 안락사가 자리잡고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믿어도 될 듯하다.
그러나 그 사회에서도 생명에 대한 인위적 개입에 대한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치매,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이유로 안락사가 행해지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초기보다 논란은 더 거세지고 있는 듯하다.
안락사 논쟁을 접하며 내가 갖게 되는 공포심에는 깊은 뿌리가 있는 것 같다. 안락사가 대세여서 또는 앞선 입장인 것 같아서 내 공포심을 외면하고 싶지는 않다. 늙음, 장애, 치매 등에 대한 혐오로 충만한 우리 사회에서 안락사가 우리의 삶과 죽음에 어떤 도구가 되어줄지 잘 모르겠다.
죽음을 논하는 이 기회를 통해 그동안 우리 사회가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가져왔던 태도를 살피고, 그 뿌리에 자리잡고 있는 잔인함과 혐오 등을 제대로 살필 수 있기를 기대한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대통령 온다고 축구장 면적 절반 시멘트 포장, 1시간 쓰고 철거
- 김 여사 소환? 이창수 신임 중앙지검장 "충분한 조치 취할 것"
- 김정은에게 틈을 준, 윤석열 대통령의 '돌출행동'
- '교통혁명'이라던 GTX의 처참한 성적표, 그 이유는
- 선고 앞둔 이화영측, 변론재개 신청 검토 "출정기록 확인해야"
- '채 상병 특검법' 거부권, 위헌 소지 있다
- "윤 대통령 폭탄선언에 연금개혁 물거품, 황당하다"
- '산재 노동자'란 단어에 우리가 보통 떠올리는 성별
- 윤석열 정부 굴욕외교에 따라다니는 경제적 희생
- 고민정 "대통령 고집 꺾어야, 언제까지 영부인 숨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