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 박사 “불안감 따뜻하게 맞아줘야 긍정 에너지로 활용” [스포츠잡스⑫-스포츠 심리학 박사]
불안감 떨치기 보다는 긍정 에너지로 활용해야
이상우 스포츠심리학 박사는 풍생고, 홍익대를 거쳐 2008년 FC 서울에 입단한 엘리트 축구 선수다. 하지만 FC 서울에서는 기라성 같은 선배들에 밀려 자리를 잡지 못했고, 이후 FC안양에서 38경기(3골-4도움)에 출전한 뒤 은퇴 수순을 밟았다.
축구 선수들이 현역 유니폼을 벗은 뒤에는 지도자의 길을 가거나 자체 축구교실을 열어 선수들의 개인 레슨을 담당하는 게 일반적이다. 아니면 아예 축구판을 떠나는 선수들도 상당하다.
하지만 이상우 박사는 현역 시절 틈틈이 공부에 나섰고, 주경야독의 결실은 스포츠 심리학 석, 박사 학위 취득의 결실로 이어졌다. 그는 멘탈 퍼포먼스라는 업체를 차려 스포츠 심리 전문가라는 다소 생소한 직업으로 여전히 축구장을 누비고 있다.
Q : 프로 축구 선수에서 스포츠 심리학 박사로 변신했다. 매우 이례적인 행보라 할 수 있는데.
이상우 박사(이하 이) : 사실 축구 선수 커리어를 더 이어나갈 수 있었는데 당시에는 축구를 더 하고 싶지 않았다. 은퇴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면 빨리 하자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택한 게 바로 공부였다.
Q : 현역 선수는 경기를 뛰고 훈련도 해야 하니 공부가 쉽지 않았을 텐데. 게다가 스포츠 심리학이라는 분야는 더더욱 어려워 보인다.
이 : 선수 시절 경기 출전을 앞두면 너무 긴장했다. 심지어 지도자들이 ‘쟤, 벌써 긴장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훈련 때는 잘하는데 막상 경기에 나서면 제대로 실력 발휘 못하는 선수가 바로 나였다. 결국 ‘축구에 재능이 없구나’라고 생각하던 찰나, 운명적인 인물을 만났다.
Q : 그게 누구인가.
이 : FC 서울에서 심리 상담역을 맡았던 김병준 교수(인하대 체육교육과 교수)였다. 멘탈 트레이닝을 통해 ‘마음과 생활을 관리해야 되는구나’를 처음 알게 됐다. 사실 축구는 로봇이 아닌 사람이 하는 것 아닌가.
또, 지도자들이 ‘자신감을 가져라, 집중해라’ 등을 주문하는데 어떻게 자신감을 갖고, 어떻게 집중해야하는지도 배우지 못했다. 당시 교수님을 통해 알게 되니 충격과도 같았다. 왜 이걸 이제 알았지라는 마음뿐이었다. 이후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그라운드에서도 점차 기량이 발휘됐다.
Q : 그 영향을 받아 은퇴 후 스포츠 심리전문가의 길로 들어섰다. 스포츠 심리학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설명해달라.
이 : 스포츠 심리학은 오로지 선수들의 훈련, 그리고 경기력 향상에만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반 심리나 임상 심리 등 치료의 목적과는 다르다. 예를 들면, 의학적 치료가 멘탈을 평균 수치로 올려놓는 것이라면, 스포츠 심리 전문가들은 평균 수치에 머물고 있는 선수들의 멘탈을 이상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리는데 있다.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수들의 집중력, 자신감, 컨디션 관리, 감정 조절 등에 주목한다.
Q : 마음이라는 게 눈에 보이지도 않고, 무엇보다 내 생각대로 제어가 안 되지 않나.
이 : 그게 바로 불안감이라는 것인데, 나는 늘 선수들에게 ‘불안이 오면 따뜻하게 맞이해 주세요’라고 주문한다. 사실 스포츠 심리학에서 불안이라는 요소는 꼭 필요하다. 실제로 선수들의 경기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적정 수준의 불안감과 긴장감이 동반된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긴장과 불안이 없어야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다고 알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경기를 앞둔 선수들에게 의도적으로 불안감을 높이기도 한다. 불안의 강도보다 해석의 방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인데, 긴장된 상황에서 불안이 몰려오는 것은 당연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불안해 할 것인가. 여기서 경기력의 차이가 결정된다.
불안감이 찾아오면 따뜻하게 받아들여 긍정 에너지로 활용한다 생각하고, 각성 상태를 조절한다. 에너지 수준이라고 하는데 이를 관리하면 불안을 긍정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다. 반면, 제대로 하지 못하면 집중력이 감소하고 몸이 굳고, 맥박수도 빨라진다. 불안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에너지 수준을 관리하면 높은 집중을 유지하게 되고, 그 상태에서 다음 단계인 플로우(몰입) 상태에 진입한다. 그럼 이제 마법을 부리는 시간이다.
Q : 어떤 과정을 통해 선수들을 분석하나.
이 : 심리 검사지가 따로 있다. 일단 검사를 통해 선수의 심리적인 약점과 단점을 확인하고 상담을 통해 종합적인 판단을 한다.
Q : 많은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을 텐데 흔히 나타나는 선수들의 약점이라면?
이 : 8년간 수집한 어린 아마추어 선수들의 경우 불안과 감정 조절, 이 두 가지가 가장 많았다. 불안을 불청객으로 맞아들여 긍정 에너지로 바꾸지는 못하는 사례다. 감정 조절은 상대 선수의 도발에 넘어가거나, 연속적인 실수, 지도자의 부정적인 코칭, 스코어, 심판 판정 등으로 감정의 변화가 찾아오는 경우다.
Q : 스포츠 팬들이라면 선수 곁에서, 또는 팀에 속해 해당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스포츠 심리학자 역시 이에 속하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야 직업으로 삼을 수 있나.
이 : 스포츠 심리 관련 대학원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 다만 스포츠 심리학자와 스포츠 심리전문가의 영역은 다르다. 심리학자는 말 그대로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분들이고 심리전문가는 스포츠 현장에서 멘탈 코칭에 더 주력한다고 보면 된다.
Q : 스포츠 심리전문가로 활동하며 보람된 일, 아쉬웠던 일을 꼽아보자면?
이 : 지금도 지원하고 있는 WK리그 경주 한수원에서의 2022시즌이다. 당시 인천 현대제철과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서 비기고, 2차전서 패해 준우승했다. 가장 속상했던 부분은 선수들이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패한 경기력이었다. 불안을 긍정 에너지로 바꾸지 못하다 보니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보이더라. 심리전문가로서 제대로 싸울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발가벗은 느낌이었다.
최근 인천 대건고(인천UTD U-18) 경기를 찾았을 때도 있다. 상대가 심리전을 잘 이용하는 팀이라 전날 멘탈 프리뷰에 나섰다. 하지만 선수들의 자신감이 넘쳐 잘 듣지 않더라.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경기서 상대 도발에 현혹돼 감정 조절을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화가 나기 보다 더 강하게 말해주지 못한 나를 책망했다.
이 일을 하며 보람된 순간은 무명의 선수들을 발굴하고 도움 주는 일이다. 고교 시절 나의 상담을 거쳐 지금 프로 생활을 하는 선수도 있고, 선수로는 꽃을 피우지 못했으나 심리적 전략을 활용해 경찰관 또는 대학 교수가 된 이들도 있다. 선수가 성장하는 데 있어 조금의 자양분을 제공해줄 때 큰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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