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원 방산수출 6월 고비설…정책금융 지지부진에 속타는 기업들

최서윤 2024. 5. 16.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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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와 무기(武器) 공급계약을 맺은 국내 방산기업들이 6월 고비설에 휩싸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은 폴란드와 수조원 규모의 2차 무기 공급계약을 맺었는데, 신용공여를 맡은 한국수출입은행(수은)으로 법정자본금 유입이 늦어지면서 계약 해지 위기에 처한 것이다. 앞서 수은은 법 개정을 통해 개별 기업에 부여할 수 있는 정책금융 규모를 늘리기 위해 법정자본금 한도를 10조원 확대한 바 있다. 하지만 실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정부가 여전히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어 기업들이 초조해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16일 "우리 상황에서 얼마만큼 지원해줄 수 있을지 적절한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관련 부처와 협의 중"이라며 "(금융계약 6월 말 시한 등)상황이 시급하고 호기(好機)를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우리 금융기관들에 부담을 지우면 안 되기에 K호갱 이슈도 포함해 계속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폴란드와의 무기 공급계약 규모는 상당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달 천무 72대, 지난해 12월 K-9 자주포 152문에 대한 2차 실행계약을 맺은 바 있다. 계약 규모는 각각 3조4000억원과 2조3000억원에 달한다. 폴란드는 2차 실행계약을 맺으면서 수은, 무역보험공사 등 정책금융기관 보증을 단서로 달았다. K-9 자주포의 경우 6월, 천무의 경우 오는 11월까지 체결하기로 했다.

지난달 24일 충남 태안군 국방과학연구소 안흥시험장에서 진행된 시험사격에서 폴란드형 천무 HOMAR-K가 사거리 290㎞급 유도탄을 발사하고 있다. [사진제공=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 기업들과 수십조원 무기 계약을 맺은 폴란드는 1%의 금리라도 낮은 대출을 받아야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번 금융계약도 무기 수출국인 한국에서 정책금융기관 보증을 받아 낮은 금리를 받을 수 있는 요건을 확보한 후 유럽을 포함한 여러 금융기관에 입찰 형식으로 대출해줄 곳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수조원대 규모의 방산 계약은 금리 1% 차이에 수백억~수천억원이 달라진다.

기업 입장에서는 마음이 급하다. 기한을 넘기면 수조원 규모 2차 계약이 자동 해지되기 때문이다. 수은에는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 수준의 지원 자금이 남아있고, 무보의 경우 지원 금액 상한선이 없어 지원 여력이 있지만 집행 결정권을 지닌 기재부는 기다리라고만 한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현대로템은 현재 폴란드 신정부와 K2 전차 2차 계약을 협상 중이다. 현대로템이 폴란드와 2차 계약을 맺으면 정부가 일괄 지원하겠다는 의미로 방산업계는 해석한다. 현대로템과의 계약이 늦어지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계약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수은으로의 자본확충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최근 수은법 개정으로 자기자본이 10조원 확충됐지만, 1년에 2조원씩 들어온다. 수은이 이를 전부 받기 위해선 5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그때까지는 남아 있는 자금을 나눠 집행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한정적인 정책금융지원을 먼저 계약한 한화에 몰아주면 현대로템 지원 여력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폴란드 그드니아 항구에 도착한 K2 전차 [사진제공=현대로템]

정부도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는 속사정이 있다. 무기 구입국에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고 우리 사정에 맞게 지원 기준을 잘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원은 "방산업체는 무기를 팔면 그만이지만 실체는 정부를 끼고 대기업이 이익을 창출하는 거라 리스크를 정부가 감당해야 한다"며 "전쟁 장기화로 갑자기 확 커진 방산시장의 현 상황을 표준화시켜서 금융지원책을 마련하는 게 맞을지, 우리 보유 자본 수준에서 정책 지속성을 가져갈 수 있을지에 대한 여러 고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을 위해 무리하게 감내하면서 코너에 몰리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는 "무기 수출은 정부 간 계약(G2G)으로 통용되긴 하나 무기 구입국도 어느 정도 자기자본금을 가지고 들어와야 하는데 우리 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커져 버렸고 특정 국가를 위해 특별법을 만들어 일종의 특혜를 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A국가에 특혜를 주면 선례로 남고 B국가, C국가, D국가가 요구했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도 문제라고 했다. 그는 "인도네시아처럼 막판에 돈을 못 내겠다고 버틸 수도 있다"며 "사실 독일이나 프랑스를 제외한 나머지 중소 유럽국가들도 상황은 비슷하다"고 했다. 이어 "대기업 방산업체에 대한 지원몰아주기 아니냐는 비난도 있어 당국의 부담이 클 것"이라고 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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