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의 Epi-Life] 당신의 미각을 믿지 마세요

김두용 2024. 5. 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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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구별하지 못하는 혀, '미맹'이라고도 해


인간이 단맛·짠맛·신맛·쓴맛·감칠맛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혀에 각각의 맛을 감지하는 수용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인간 외 동물에게도 맛을 느끼는 혀가 있습니다. 그들 동물의 혀에도 맛을 감지하는 수용체가 존재하는데, 사람과 똑같지는 않습니다.

판다의 혀에는 감칠맛 수용체가 없습니다. 감칠맛은 주로 고기에서 얻을 수 있는 맛입니다. 판다는 아주 오래 전에 잡식을 하다가 초식만 하는 것으로 생존 전략을 바꾸었고 그러면서 감칠맛 수용체가 필요하지 않게 되어 퇴화한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합니다. 고양이의 혀에는 단맛 수용체가 없습니다. 단맛은 탄수화물의 맛입니다. 고양이는 육식을 하니까 탄수화물 맛을 느낄 필요가 없어서 단맛 수용체를 퇴화시켰을 것입니다.

근래에 과학자들은 인간의 혀에서 기름맛 수용체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현재 교과서에는 인간의 혀는 오미, 즉 단맛·짠맛·신맛·쓴맛·감칠맛을 느끼는 것으로 실려 있는데, 기름맛을 포함하여 육미를 느끼는 것으로 개정할 날이 곧 오지 않을까 합니다.

미각 관련 자료들을 보고 있자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혀가 느끼는 것이 육미만 있을까요? 그러니까, 현재의 과학 기술로 밝힐 수 있는 미각 수용체 종류가 6종이라는 것이지 다른 종류의 미각 수용체가 우리 혀에 또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 입안의 혀를 살살 돌려보십시오. 뭔가 복잡 미묘한 맛들이 느껴지지 않는지요.

더 나아가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동물의 혀에는 인간의 혀에 없는 미각 수용체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는 제각각 먹이 활동을 합니다. 어떤 것은 먹고 어떤 것은 뱉습니다. 그 제각각의 먹이 활동에 대응하여 미각 수용체가 제각각 변주를 하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이들 동물의 미각 수용체를 연구하는 데 그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인간의 미각 수용체입니다. 인간 외 동물은 인간이 느끼는 육미 말고 다른 어떤 맛을 느낄 수도 있는데 말이지요.

미각 이야기가 너무 나갔나요? 현실적인 미각 이야기로 방향을 바꾸겠습니다. 외식업 종사자 여러분에게는 사업에 도움이 되고, 일반인 여러분에게는 미식 활동에 도움이 되는 칼럼이 되도록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자, 여기까지 글을 읽으신 여러분께 묻습니다. 맛은 어디에 있습니까. 음식물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혀에 있습니까. 소금이 짜니까 짠 겁니까, 내 혀에 짠맛 수용체가 있으니까 소금이 짠 겁니까. 설탕이 다니까 단 겁니까, 내 혀에 단맛 수용체가 있으니까 설탕이 단 겁니까.

음식을 조리하고 먹을 때에 우리는 보통 음식에 집중합니다. 음식을 먹는 우리의 몸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음식의 맛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몸인데 말이지요.

여러분의 혀에 박혀 있는 미각 수용체는 맛의 절대적 기준을 장착하고 있을까요? 내 입에 맛있으면 다른 사람 입에도 맛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개체마다 감각 능력이 다 다릅니다. 타고나기도 하고 후천적으로 얻거나 잃기도 합니다. 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눈을 가지고 있으면 '색맹'이라고 합니다. 맛을 구별하지 못하는 혀도 있습니다. 그런 혀는 가지고 있으면 '미맹'이라고 합니다. 색맹은 공식적으로 검사를 합니다. 색맹으로 인해 위험을 초래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맹은 검사를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미맹인지 아닌지 모르고 삽니다.

“넌 요리하지 마.” 이런 말을 버릇처럼 듣는 분들이 계시는지요. 요리는 참 열심히 하는데 사람들의 평이 항상 안 좋은 경우에는 자신이 미맹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합니다. 이런 분은 요리를 하지 말아야 하느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입을 믿지 않으면 됩니다. 간을 보실 때에 미맹이 아닐 것으로 보이는 사람을 불러서 먹이면 됩니다.

다시 혀를 입안에서 살살 돌려보십시오. 치아로 깨물어보십시오. 혀는 참 민감한 신체 기관입니다. 맵고 뜨겁고 차가운 음식의 과도한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미각 수용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합니다. 죽을 때까지 함께할 혀입니다. 살살 다루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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