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시민들 2021년 자발적 조직… 홀로서기 청년들 꿈 후원

장선욱 2024. 5. 16. 01: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자립준비청년에 희망 디딤돌을] 광주 ‘디딤돌 장학회’
광주 디딤돌장학회의 주축인 운영위원들이 지난해 광주자립지원전담기관 사무실에서 1년간의 성과를 돌아보고 향후 계획을 세우는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있다. 광주자립지원전담기관 제공


12년 전 부모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9살의 어린 나이에 고립무원 신세가 된 김모(22)씨는 2021년 초봄의 아찔한 기억을 잊을 수 없다. 9년 가까이 생활하던 아동보호시설에서 두 살 어린 동생을 데리고 독립해야 한다는 공포심에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렵사리 우수한 성적으로 고교를 졸업했지만 대학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하지만 김씨의 얼굴에서 수년 전 가득했던 수심은 사라졌다. 자립준비청년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어주는 ‘디딤돌장학회’ 덕분이다. 서울 지역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김씨는 얼마 전 해외연수까지 다녀왔다. 지난 학기 평균 4.45점의 높은 학점을 딴 김씨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아이들을 돌보는 심리치료사 자격시험을 준비 중이다.

광주 시민들이 2021년 말 자발적으로 조직한 ‘디딤돌장학회’는 보호연장아동과 자립준비청년들이 학업을 잇도록 돕기 위해 1인당 매월 30만원 안팎을 정기적으로 지원하는 장학단체다.

출범 초기 참여한 7~8명이 주축이 된 운영위원회를 구심점으로 현재 각계 90여명의 후원자들이 끈끈한 연대감 속에서 14명의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장학금을 매달 지급하고 있다.

디딤돌장학회를 이끄는 운영위원들이 지난해 광주자립지원전담기관 회의실에서 정기총회를 마친 뒤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장면. 광주자립지원전담기관 제공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처럼 햇수로 4년째인 장학금 혜택은 ‘비대면 계좌입금’을 철저한 원칙으로 삼고 있다. 지정 후원금도 장학금 기부자가 대상자를 선정할 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고 전달하거나 식사도 함께하지는 않는다. 혹시라도 자립준비청년들이 그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을까 염려해서다.

장학금 지급은 사단법인 광주아동복지협회가 광주시와 위수탁 계약을 맺고 운영하는 광주시자립지원전담기관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자립준비청년들의 자립을 뒷받침하는 광주시자립지원전담기관은 13명의 인력으로 2022년 6월 문을 열었다. 이후 디딤돌장학회와 협력해 장학사업에 역량을 쏟고 있다.

다른 장학재단과 달리 대학 학적만 유지하고 있으면 자립준비청년뿐 아니라 시설에서 보호 중인 대학생에게도 별다른 조건 없이 졸업할 때까지 동일한 장학금 혜택을 제공한다.

그동안 디딤돌장학회를 통해 주로 대학졸업 때까지 장학금 혜택을 받은 자립준비청년은 20여명에 달한다.

누적 기부금액은 2022년 4635만4600여원, 2023년 6623만4000여원 등 1억125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올 들어서도 완만하나마 기부금액과 회원 수는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광주지역에 거주하는 자립준비청년은 현재 서구 176명, 북구 128명, 광산구 124명, 남구 105명, 동구 68명 등 601명으로 파악된다. 양육시설과 공동생활가정(그룹홈), 가정위탁지원센터 등 각종 보호시설에서 해마다 40~50명이 나와 자립준비에 나서고 있다.

이와 관련해 광주시와 시의회, 광주도시공사, 광주시체육회, 광주청소년상담복지센터, 전력그룹감사협의회(한전KDN), 빛가람감사협의회(한전KPS), 광주경제정의실천연합, 광주FC·유명 스포츠 선수 등 10개 기관·개인은 2022년 9월 자립준비청년 지원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이들은 이후 아동복지법을 근거로 설치된 광주시자립지원전담기관을 중심으로 역량강화, 정착기반 조성, 지원체계 구축 등 3개 분야 14개 과제를 선정해 자립지원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전과 한전KDN·KPS, 광주테크노파크 등이 다수의 자립준비청년을 인턴십 사원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최평화 광주시자립지원전담기관 과장은 “디딤돌장학회는 자립준비청년들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돕는 진정한 디딤돌이 되어주고 있다”며 “미래 주역인 청년을 굳건히 함께 세워가는 동반자이자 성장, 도전, 자립, 동행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딤돌 장학회’ 산파 박소연씨
“자립청년들 성실하게 삶 채워가는 걸 보면 되레 위안 얻고 많이 배우죠”

“2020년 말 개인 사정으로 힘들었던 시절 우연히 광주 한 청소년수련시설에서 남학생이 투신해 숨졌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접했죠. 보호 종료와 함께 복지시설 퇴소를 앞두고 있는데 미래가 너무 막막하니까.”

10여년 동안 평온한 직장생활을 이어가던 박소연(58·여·사진)씨는 자신과 달리 앞길이 구만리 같은 10대 남학생이 꽃피기도 전에 세상을 등지게 된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박씨는 그 시기 본인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가족’이 있었고 투신한 남학생은 의지할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박씨는 15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어려움에 부닥친 청소년에게 만일 가족과 같은 존재가 되어준다면 남은 인생이 무의미하지 않겠다는 절실한 마음이 들었다”고 당시 심경을 밝혔다.

직장생활에만 열중하던 박씨가 광주지역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한 ‘디딤돌 장학회’를 주도적으로 결성하게 된 결정적 계기다. 이에 당시 광주시의회 장연주(정의당) 의원과 함께 광주아동복지협회의 도움을 받아 장학생 신청을 받는 등 의기투합했다. 박씨도 1000만원 기부 의사를 전했다.

이후 장학회는 최희석 운영위원장(자연그린한방병원장) 등 운영위원 9명을 포함한 후원자 등 90여명이 참여해 알뜰한 살림을 꾸리고 있다. 한의사와 세무사, 수의사, 치과원장, 기업대표, 회사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적게는 1만원에서 많게는 30만원을 매달 꼬박꼬박 기부하고 있다.

장학회 산파 역할을 한 박씨는 “1만~2만원 소액기부자가 많고 몇 분은 매월 20만~30만원씩 후원해주고 있다”며 “자립준비청년들이 본인의 삶을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채워가는 걸 멀리서나마 지켜보면서 위안을 얻고 때로는 많은 걸 배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