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의 시시각각] 1인당 25만원, 정말 민생 살릴까

이상렬 2024. 5. 16.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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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 수석논설위원

‘채 상병 특검법’ 등 여러 특검법과 ‘전 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은 동떨어진 이슈 같지만 공통 요소가 있다. 모두 현 정권이 강하게 반대한다. 그러나 총선 민심이 ‘정권 심판’에 확실히 손을 들어준 지금의 현실에선 국민 다수가 공감하면 막아서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전 국민 25만원’의 경우 정부와 국민의힘은 정부의 예산편성권 침해 등 삼권분립 위반이라고 반발한다. 많은 전문가도 위헌 소지를 지적한다. 그러나 그 논리가 국민에게 먹혀들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전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것이 민생에 도움이 될 것인가, 그것이 최선인가 하는 점이다.

「 전 국민 지급 효과 의심스럽지만
나쁜 체감경기에 일각선 기대도
정부, 양극화 해소 등 적극 나서야

많은 서민 가계가 지금 한계 상황에 내몰려 있다. 자영업 대출은 코로나19 직전보다 50% 이상 늘었다. 그간 빚으로 버텼기 때문이다. 실질임금은 최근 몇 년 새 오히려 줄었다. 명목임금은 조금 올랐는데 물가가 껑충 뛰어서다. 올 1분기 파산신청 건수는 2021년 같은 기간의 배 이상으로 늘었다. 4인 가구 100만원의 지원금은 서민에게 큰돈이다. 삼권분립을 앞세운 민생지원금 반대는 한가하게 들릴 수 있다.

문제는 딴 데 있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급하는 방안의 비합리성이다. 부자들에겐 그 돈의 효용이 크지 않다. 지원금을 받으면 원래 지출하려던 돈은 아끼고 지원금을 쓴다. 그래서 고소득층에겐 현금 지원이 추가 소비로 연결되는 효과가 떨어진다. 2020년 전 국민에게 지급된 1차 긴급재난지원금의 소비 증대 효과가 투입 예산 대비 26~36%에 그쳤던 것(한국개발연구원 분석)도 그런 요인과 무관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도 이런 인식 때문에 그 뒤로도 몇 차례 이어진 재난지원금을 취약계층에 한정해 지원했다.

국민 1인당 25만원을 주려면 약 13조원이 필요하다. 세수가 부족하니 나랏빚을 내야 한다. 정부가 거액의 빚을 얻는 데는 사회적 비용이 따른다. 국채 발행 과정에서 시장금리가 오르고, 이는 대출자의 이자 부담을 키운다. 이들은 한편으론 소비 지원금을 받지만, 다른 한편으론 소비 여력이 줄어드는 모순에 직면한다. 일종의 구축 효과다. 일시에 풀린 돈이 들쑤시는 물가 인상 압박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사정 때문에 현금을 나눠주면 소비가 연쇄적으로 일어나 경제가 선순환한다는 발상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전 국민 25만원’ 카드가 민주당에 당장은 꽃놀이패가 될지 모른다. 특별법이든, 추경이든 25만원 지원이 성사되면 자신들이 해냈다고 생색낼 수 있고, 좌절되면 윤 정부가 민생을 외면한다고 비난할 소재가 된다. 그러나 본질은 나랏빚으로 경제 회복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현금 선심을 쓰겠다는 것이다. 앞에선 대중의 박수를 받을지 몰라도 국가를 책임질 수 있는 공당이라는 신뢰를 받기 어렵다.

명백한 포퓰리즘이 정국을 뒤흔드는 데는 정부·여당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당정은 야당의 ‘25만원 지급’을 무력화할 만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3%(속보치)로 깜짝 성장을 하자 고무된 기색이 역력하다. “경제가 이렇게 좋아졌는데 민주당의 민생지원금 주장이 먹히겠느냐”는 식이다. 보수 정권의 안일함이 결국 문제다. 1분기 성장엔 수출 기여가 컸는데, 반도체가 수출 증가의 83%를 차지했다. 대기업 생산이 1년 전보다 7.9% 늘 때 중소기업은 2% 줄었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의 소매판매 지표는 마이너스다.

반도체 호황에 따른 착시효과가 도처에서 체감경기 부진을 가리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양극화는 악화일로다. 오랜만에 호전된 거시 지표에 방심할 때가 아니다. 민생의 어려움을 엄밀하게 살펴야 한다. 양극화 해소에, 취약층의 ‘기회 사다리’ 구축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그래야 국민을 현혹시키는 포퓰리즘이 발을 붙이지 못한다. 정부의 분발이 필요하다.

이상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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