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시선] 윤 정부 경제정책 ‘샤워실의 바보’ 안 돼야
윤석열 정부는 지난 2년간 어떤 경제 성과를 거두었을까. 그간 윤 정부는 실패로 끝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수습하며 재정 긴축과 수출진흥 정책을 펴왔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이 멈추고, 문 정부 때 400조원 넘게 불어났던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주춤해졌다. 그렇다고 경제가 크게 좋아진 것도 아니지만,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 때문에 힘들다는 얘기는 잦아들었다. 재정 긴축이 시작되면서 재정 건전성 악화에 대한 국제 연구기관들의 경고음도 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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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년 정책 성과 체감 힘들어
공시가·R&D 예산 정책은 패착
실용에 힘 쏟아야 남은 3년 성공
」
노동·교육·연금 개혁에도 시동을 걸었다. 다만 아직 성과를 체감하긴 어렵다. 노동개혁은 노동조합의 회계 투명성을 높인 것 외엔 근본적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여성과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 환경을 개선하거나 일자리를 새로 발굴하는 실용적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교육에서는 킬러 문항 배제라는 미시적 조치를 빼면 사교육 의존 완화와 공교육 정상화 등에서 그 성과가 미미하다. 연금 개혁안은 내놓긴 했지만 여전히 미덥지 않다. 물론 쉽지 않은 개혁과제라는 건 잘 안다.
기본 방향 자체가 잘못된 정책도 있다. 아파트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 그렇다. 문 정부의 공시가 현실화는 문제가 많았다. 우리 경제 규모와 저성장 현실을 고려할 때 공시가를 시가에 맞춰 과세하는 건 부작용이 컸다. 문 정부는 시가 50~60% 수준의 공시가를 90%까지 높이려 했다. 이는 곧 세금 증가로 이어졌고 바로 집값 상승의 불쏘시개가 됐다. 이 충격으로 문 정부 재임 중 서울 아파트 가격은 두 배 폭등했다. 무주택자들 사이에 2021년 전후로 ‘벼락 거지’가 됐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고 서민은 상대적으로 더 궁핍해졌다.
급격한 과세는 중산층도 세금을 감당하기 어렵게 만든다. 공시가는 재산세는 물론 종합부동산세의 과세 기준이 된다. 집값이 일정한 수준을 넘으면 1주택자도 이 두 세금을 모두 내야 한다. 이중과세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일종의 부유세인 종부세는 과세 대상이 부유층에게만 매우 제한적으로 적용돼야 납세 대상자들이 수용하고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급격한 공시가 인상은 세금 상승을 거쳐 집값을 자극하며 부동산 시장을 불안하게 했다. 상당수 무주택자는 서울 바깥 지역으로 이사를 갔고 서민형 빌라 수요가 급증했다. 그 부메랑이 빌라 사기 사태와 빌라 기피 현상으로, 나아가 전세가 급등으로 이어졌다.
이런 문제점을 직시한 윤 정부가 공시가 현실화를 폐기하겠다는 결정을 한 것은 합리적이긴 하다. 하지만 합리성만으로 세상일이 되는 건 아니다. 공시가 현실화 폐지는 정무적·전략적으로는 패착이다. 조세의 재분재 기능을 고려하지 못한 실책 중의 실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문 정부 때처럼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집을 가졌으니 세금을 더 내라”는 식의 징벌적 과세는 국민을 힘들게 하고 경제를 왜곡한다. 지속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제도 자체는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집값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집값이 급등하면 언제라도 현실화율을 상향 조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둬야 했다. 지금이라도 폐지를 번복하는 게 마땅하다.
R&D 예산 역시 문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는 게 출발이었다. 문 정부 재임 중 폭증한 국가채무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면 허리띠를 다시 졸라매고 긴축하는 건 합리적인 방향이다. 그러나 경중을 가리지 못했다.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한국이 먹고 사는 원동력은 노동력밖에 없다. 그 노동력을 높이려면 R&D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그걸 줄였으니 스스로 손발을 묶은 셈이다. 이런 자가당착이 없다. R&D 예산 감축은 총선에도 영향을 미쳤을 듯싶다. 사후 해석에 불과하지만, 과학연구단지가 들어선 대전 지역에서 여당이 참패한 것이 과연 우연이었을까.
1997년 외환위기 직후 한국 경제가 금세 회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김대중 정부의 정보기술(IT) 육성이었다. 이를 위해 당시 정부는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나랏돈은 먼저 보면 임자라는 듯 정부 예산을 부정하게 빼 쓴 기업인도 많다. 그 정도의 거품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자유주의 경제학자였지만 ‘샤워실의 바보’가 되지 말라고 했다. 경제 정책이 온탕·냉탕으로 오가면 일을 망칠 수 있다는 경고다. 좀 답답해도 천천히 방향을 틀어야 한다. 경제 정책의 장단점을 함께 봐야 한다. 윤 정부는 과거와 싸우지 말고 실용만 보고 가야 한다. 의회를 장악한 거대 야당도 마찬가지다.
김동호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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