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호의 법과 삶] 의학 교육과 전공의 교육은 분리가 옳다

2024. 5. 16.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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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법학박사

의학은 사람의 존엄과 생명을 다루는 학문이고, 의료는 이를 임상에 적용하는 기술이다. 의학을 기초로 의료 기술을 행하는 의사들이 되기 위해서는 의과대학에서 기초의학과 임상의학뿐 아니라 의학사, 생명윤리, 의료관리학, 의료법, 의료저널리즘, 의료문학예술 등의 전인 교육을 한다. 반면, 전공의는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에 의해 의사 자격 취득 후 전문과별로 집중해 일정 건수 이상의 진료와 연구논문 발표를 거치게 하는 심화 연수 과정을 밟는다.

의학 교육과 의술 연마는 분리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21대 국회 말에 국립대학병원 주무부처를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이는 의학교육을 말살할 위험이 있다. 학문으로서의 의학 교육은 교육부가, 의술로서의 전공의 수련은 보건복지부가 각각 전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과대학은 대학병원 부속기관이 되어 의료기술자 양성 학원으로 전락할 수 있다.

「 복지부가 대학병원 관장하면
전인적 의학교육 위험에 처해
의대가 의료기술 학원 돼서야

법과삶

의과대학은 교육기본법과 고등교육법에 의해 설치 운용된다. 교육기본법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등교육법은 대학의 목적을 “인격을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으로 규정한다. 이에 비추어 보면 의과대학생은 단순히 의료기술만을 배우지 않는다. 의과대학에서는 자연과학, 사회과학, 문화예술 등이 결합된 종합학문으로서의 의학을 교육한다. 의과대학 졸업생들이 임상의사 이외에도 공무원, 변호사, 성직자, 제약사, 언론사, 인공지능(AI) 연구, 유엔 기구 같은 다양한 분야로 진출해 사회에 공헌하는 데 필요한 기본 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의과대학 부속병원’이 사라지고 ‘○○대학병원 부속 의과대학’으로 앞뒤가 바뀌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확산되고 있다. 과거 의과대학에서 임상 실습을 위해 부속병원을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 의과대학 부속병원이 대학병원 부속학원으로 지위가 바뀌면서 의대 본연의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없도록 구조화되었다. 대학병원은 전공의 수련기관을 명분으로 대도시에 몰리는가 하면 대형화, 상업화되었다. 반면에 지방의료기관은 상대적으로 공동화(空洞化)되었다. 이를 실습과정에서 경험한 의과대학생들은 대도시에서 인기과 개업을 목표로 수업을 받는다. 의과대학이 전공의 입문을 위한 기초 의료기술 학원이 된 지 오래되었다.

의과대학은 의과대학장이 최고 교육책임자가 돼야 돈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학문으로서의 의학교육을 할 수 있다. 대학병원은 진료가 주 업무이고, 진료수익을 창출하여야 생존할 수 있는 조직이다. 따라서 의과대학장이 대학병원장의 하위 기관이 되면 학자의 3대 의무인 학문 연구, 강의, 학생 지도에 전념할 수 없게 된다. 의과대학 교수는 학문연구기관에 근무하는 것이 아니라 임상 진료기관인 대학병원 소속이어서 환자 진료 업무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임상교수들 대부분은 1년에 1∼2시간밖에 강의를 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내용도 의료기술 전수에 그친다. 의과대학생들이 교육기본법과 고등교육법에 따라 전인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된 이유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 연금과 교육을 3개 구조개혁 대상에 포함해 핵심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그 일환으로 의대 입학정원 확대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설립 취지는 중증·필수의료에 대한 보상강화, 의료전달체계의 정상화, 전공의 수련 국가책임제 도입,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라고 밝혔다.

전공의 수련을 국가가 책임지려면 전공의를 교육할 전문의가 확보돼야 한다. 대학병원에서 전문의들이 진료에 매달리고 있는 현실에서 전공의들이 의학적 필요성과 의술적 적정성을 전제로 한 인술을 배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잘못된 의료경영 기술을 배울 위험도 있다.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전공의 수련을 책임지려면 그 혜택이 국민에게 돌아오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공공의료기관에서 의무근무할 전공의들을 지원하거나 공공의대 설립에 세금을 쓰는 것이 옳다.

교육부는 진료부담 없이 의학연구와 교육을 전담할 전임교원제와 부속병원을 관장하고, 보건복지부는 전문의를 수련할 별도의 수련병원과 임상전문의를 관장하는 이원화 시스템을 제도화하는 것이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 할 일이다. 국민은 의료 기술자가 아니라 인술을 베푸는 의학자가 양성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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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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