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붕괴론, 흘려들을 수가 없다

최진섭 2024. 5. 1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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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미국인 군사 전문가의 <모든 제국은 몰락한다> 를 읽고

[최진섭 기자]

최근 미국에 관한 주요 뉴스는 미국 주요 대학 캠퍼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학생들의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관련 보도다. 평화로운 학생 집회에 무장 경찰을 투입해 집회를 해산하고 수천 명의 학생을 연행하는 장면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5월 10일 기준 캠퍼스에서 연행된 학생 수가 무려 약 3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전두환 군사 정권이 통치하던 1980년대 한국 사회에서도 쉽게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미국의 대학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장면이었다. 미국 민주주의의 허구성을 전 세계에 그대로 보여준 뉴스 아닌가 싶다.

[관련 기사 :  미국 대학가 소요사태, 왜 언론은 이렇게 잘못 보도하나https://omn.kr/28jnj]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군사전문가

도서출판 진지의 신간 <모든 제국은 몰락한다>(부제 미국의 붕괴)는 이처럼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미국의 민낯을 속속들이 파헤친 책이다. <모든 제국은 몰락한다>를 옮긴 서경주 변역자는 후기에 "그(저자)의 비판은 신랄하다 못해 독설에 가깝다. 하지만 대단히 구체적이고 실증적이어서 설득력 있게 읽힌다"라고 썼다.
 
 저자 안드레이 마르티아노프는 구 소련 아제르바이잔에서 태어나 해군장교로 복무하다 1990년대 중반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미군항공우주그룹의 연구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 도서출판 진지
 
시종일관 미국 붕괴론을 주장하는 내용을 보고 처음엔 저자가 러시아 사람이라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미국을 사정없이 비판하는 어투도 그렇고, '안드레이 마르티아노프'라는 이름이 러시아계 사람이라는 추정을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는 러시아 국적이 아니고 미국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1990년대 중반 미국으로 이주한 러시아 군사(해군) 문제 전문가였다.

그는 1963년 아제르바이잔의 수도인 바쿠에서 태어나 키로프 해군 적기(적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90년까지 소비에트 해안경비대 장교로 근무했다. 현재는 미국 민간항공우주 그룹의 연구책임자로 일하고 있으며, <군사 문제의 (진정한) 혁명>(2019) 등의 저서가 있다.

옮긴이의 말처럼 저자는 대단히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자료를 제시하며 미국의 몰락을(이대로 간다면) 예측하기에 정치적 주관에 의한 확증 편향이 아닌 객관적 분석으로 설득력 있게 읽힌다.

<모든 제국은 몰락한다>에서 저자가 다루는 분야는 방대하다. 식량 구하기, 부채의 실상, 제조업, 요직을 차지한 무능한 엘리트, 군비경쟁의 패배자 등의 제목이 보여주듯이 사회, 경제, 정치, 군사 등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미국은 붕괴의 길로 들어섰다고 예측했다.

엘리트 지식인이 미국 붕괴의 주범
 
 지난 2일(현지시간) 새벽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에서 경찰이 친팔레스타인 텐트촌 주변의 바리케이드를 제거하고 친팔레스타인 시위대를 체포했다.
ⓒ 연합뉴스
 
안드레이 마르티아노프는 "미국을 자칭 글로벌 패권국의 지위에서 급속히 끌어내리고 정치, 이념, 경제, 문화, 그리고 군사적 쇠퇴를 가시화한 근본적인 추동 세력들"의 대표 주자로 '지식인 엘리트'를 꼽는다. 물론 이들은 다른 세력의 반영이자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 미국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세력은 어떤 자들인가? 우리는 이미 그런 세력을 확인했다. 미국 언론을 지배하는 지식인 엘리트들이다. 끊임없이 타락해온 그들의 저열한 능력 때문에 이 엘리트들은 미국의 존망이 걸린 위기를 갈수록 악화시켜 왔다." (저자 머리말 중에서)
 
대다수 미국 엘리트 지식인들이 '미국 예외주의와 우월주의'라는 질병을 앓고 있다고 보는 저자는 이들의 전문성과 도덕성도 수준 이하라고 지적한다. 이들 엘리트 지식인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가장 높은 몸값을 제시하는 곳에 빌붙어 능력을 팔고 결코 교화될 수 없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라며 미국의 학문풍토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저자는 20년 이상을 첨단국방과학기술연구소에서 일한 로버트 래티프 박사(전 예비역 소장)의 말을 인용해 "미국 엘리트 그룹에서는 진정으로 유능한 인재가 더는 나오지 않고 있다"라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은 더 이전부터 제대로 된 정치인들을 양성해 내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가 시원찮으면 그들이 미국을 망친다. 그들 가운데 다수가 진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배우, 코미디언, 스포츠맨, 음모론자 그리고 미디어에 나와 떠드는 선동정치가들이 전문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저자는 로버트 래티브 박사는 "미국의 엘리트들이 전쟁에 관해 알고 있는 대부분은 영화와 TV에서 유래한다"라고 했는데, 이 경고보다 더 불안한 것은 "그가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이 '사실보다는 감정과 정치적 편의에 따라 행동한다'고 언급했을 때"라고 썼다.

지적으로 무능한 데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엘리트지식인 문제 이외에도 복합적 요인으로 미국은 군사, 경제,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세계는 새로운 질서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미국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은 예외일 거라는 환상과 확증 편향에 빠져 있다.

분명한 역사적 사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엘리트들이 벌인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 소말리아,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등 수많은 국지적 분쟁과 내란 사태에 개입했지만 제대로 승리하거나 해결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내분과 신자유주의

이 책의 마지막 장인 '9장 죽느냐 사느냐'에서는 미국의 망국적인 '내분' 현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미국의 '용광로' 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에 지나지 않으며, "미국의 여러 민족은 동화되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지 못했다"라는 점을 지적한다.

저자는 이러한 미국의 붕괴는 "정확히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초 위에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진단한다. 끝없는 문화적 파편화와 전통에 대한 증오와 확산을 양산한 포스트모더니즘과 그 파생물인 신자유주의는 "보편적 진리라는 개념을 거부하며 사회를 전면적인 분열로 이끄는 길을 열어 놓았다"라는 것이다.

'미국 고유의 정체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보는 저자는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면 "미국이 발칸 제국처럼 분열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와 함께 "미국 핵무기가 어떻게 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우려를 표하는데, 미국의 정치인과 엘리트들이 이런 문제를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니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저자 안드레이 마르티아노프는 머리말에서 "미국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측하려는 게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미국의 미래에 관해 불길한 예측에 빠지게 된다.

저자는 본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미국이 추구한 세계주의(공동체와 가족을 해체하는)가 미국 사회를 디스토피아로 몰아가고 있다고 평했다. 그는 "역설적으로 현대 세계주의는 서구 문명의 파괴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반서구적이다. 그것은 반인륜적이며 인류문명에 대한 저주다"라고 미국의 세계주의를 비판하면서 비관적인 결론으로 끝을 맺었다.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든 혹은 어느 정당이 만신창이가 된 경제와 문화정책을 이어 가게 되든 미국의 붕괴는 하나의 기정사실이다. 기존 체제 속에서는 그런 정책들을 바꿀 어떤 변화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맺는말에서 미국이 "통일된 나라로서 국체를 보존하고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을 제시한다. 그것은 '국가, 그리고 그 국민의 정신'을 되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국민을 "함께 살려는 욕망, 공동으로 이어받은 전통을 보전하려는 욕망, 희생했고 희생하려는 감정적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연대"로 규정하는데, 그런 면에서 미국에는 국민이 없다고 본다. 국민이 사라진 자리에는 "어쩌다 같은 법률 체제하에 살게 된 다수의 원자화된 인간들"이자 몰개성적인 소비자들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군사, 경제,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세계는 새로운 질서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미국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은 예외일 거라는 환상과 확증 편향에 빠져 있다. 미국의 부정적인 면을 서술한 책들.
ⓒ 최진섭
 
'미국 붕괴론'에서 한국이 배울 점

10년 전, 20년 전에도 미국의 붕괴, 미국 패권의 종말을 예언하는 책들은 많았다. 그러나 지금처럼 실감나게 읽히는 시기는 없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통해 미국이 종이호랑이, 무능한 거인, 허풍쟁이로 전락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을 저자는 "핵무기로 무장하고 권력투쟁에 빠진 불안정한 후진국"이라고 규정한다.

옮긴이 서경주는 후기에서 "우리는 미국에 대한 저자의 비판을 남의 이야기로 흘려들을 수 없다. 왜냐하면 미국은 여전히 우리가 철석같이 믿는 우방이자 유일한 군사 동맹국이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그리고 한국인에게 여전히 미국은 무서운 호랑이이고 감히 맞짱 뜰 수 없는 거인이다. 옮긴이는 한국이 선진국이 된 지금도 미국에 할 말 못 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이 미국에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라는 말을 제시하기도 한다.

한국인들이 세계 다른 나라의 국민과 현저하게 다른 친미적 대미관을 지닌 이유로 남북 대치 상황도 작용했겠지만, 옮긴이가 지적했듯이 제 역할 못 하는 지식인들의 행태 때문이기도 하다. 절대다수의 언론과 엘리트 지식인들이 확증 편향적 친미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이 책에서 얻은 첫 번째 교훈은 국가를 망치는 추동세력 중에도 1순위는 무능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엘리트 지식인이라는 점 아닐까 싶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진실과는 거리가 먼 엘리트 지식인들이 한국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 아닌지 눈여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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