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윤석열 스트레스로 죽을 지경' 스님들의 경고 [제주 사름이 사는 법]

황의봉 2024. 5. 1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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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름이 사는 법] 제주 남선사 주지 행운 스님

[황의봉 기자]

▲ 행운 스님 1992년 미얀마로 떠나 위파사나 수행법을 공부했으며, 총무원장 직선제 등 불교개혁 운동에 앞장서 왔다. 지난해 시작한 불교계 시국법회 야단법석의 공동준비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 황의봉
 
"불교의 관점에서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자기 개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공자님도 아침에 도를 통하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씀하셨듯이, 사람이 어떤 도리를 깨닫고 변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변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게 바로 '지금 여기' 윤석열입니다."

제주 남선사 주지 행운 스님을 만난 때는 마침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이 시작된 4월 29일 오후 2시. 화제는 자연스럽게 시국 이야기로 시작했다. 행운 스님은 지난해 불교계의 '시국법회 야단법석'을 주도하면서 윤석열 정권을 날카롭게 비판한 바 있다. 시국법회를 하게 된 배경과 진행 과정부터 들어보았다.

"가톨릭 정의구현사제단이 시국미사를 하면서 탄핵이라는 단어를 들고나올 정도로 윤석열 정권을 강력하게 비판하더라고요. 사제단의 시국미사를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우리 불교 스님들도 뭔가 준비를 해야겠다는 데 뜻을 함께하게 됐어요. 저희가 가장 문제의식을 느낀 건 공정과 상식을 내걸고 당선한 사람이 대통령이 된 뒤로는 완전히 정반대로 행동한다는 점입니다. 상대방에 대해서는 수도 없이 조사하고 압수 수색하는 반면, 자기 가족이나 측근들이 한 위법행위는 묻어주는 걸 보면서 시국법회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불교도들보다는 다수의 시민이 참여했습니다. 명진 스님께서 '윤석열 네 이놈!' 하시며 열변을 토한 연설이 유튜브 조회 수 100만을 넘어갔고, 제가 탄핵을 이야기했을 때도 조회 수가 무척 많았어요. 오죽했으면 산중에 있던 스님들이 나와 시국발언을 할까, 하고 사회의 주목을 받은 것 같아요. 국회의원 총선거가 임박해 일단 마무리했지만 시국법회가 완전히 막을 내린 건 아닙니다. 계속해서 공정과 상식, 정의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시국법회를 이어가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행운 스님이 시국법회 야단법석의 공동준비위원장을 맡았던 만큼 향후 불교계의 움직임과 관련해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지금 상황은 야당이 총선에서 승리해 다수 의석을 차지했기 때문에 검찰 독재를 막을 수 있는 여러 법이라든가 민생을 챙기는 일들을 하나하나 해나가야 할 때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시국법회를 통해 국회의원들이나 정권을 압박하고 나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과거엔 불교계에도 정의구현사제단과 비슷한 성격의 조직이 있었는데, 작년에 방화 자살로 죽은 자승과 야합하는 바람에 유명무실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저희가 조만간 '야단법석 승가회'를 조직해 본격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할 계획입니다. 그 일환으로 야단법석 tv를 만들었어요. 여기서 불교개혁이나 시국 관련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 대구 시국법회 2023년 6월 24일 대구에서 열린 ‘시국법회 2차 대구 야단법석’에서 윤석열 정권 규탄 발언을 하는 행운 스님.
ⓒ 행운스님
 
합기도 관장이 스님이 된 까닭

행운 스님은 거침이 없다. 정권 비판은 물론, 불교계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 왔다. 총무원장 직선제 운동을 하다가 두 차례나 조계종단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가 재판을 통해 원상회복한 사례가 그의 강직한 성품을 잘 말해준다. 이런 까닭에 그에게 강성 이미지가 있지만, 출가 후 행적을 보면 공부하는 학승의 면모가 짙고, 예술에도 조예가 깊다. 출가하게 된 과정을 들어보았다.

"출가하기 전에 전북 고창에서 합기도 관장을 하고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하던 때였는데, 저는 토요일만큼은 아이들에게 주먹질하는 걸 가르치기보다는 강사를 모셔와 에어로빅을 한다든가 스님을 모셔서 정신적으로 유익한 강의를 듣는 식으로 운영했습니다. 이때 스님들로부터 도에 대한 철학적인 이야기를 많이 듣고, 친해진 것이 제가 출가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고창 선운사에서 태허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87년 계를 받았어요."

행운 스님은 출가한 후 승가대에 가서 본격적으로 불교를 공부한다. 그리고 승가대를 졸업하자 1992년 훌쩍 미얀마로 떠나게 된다. 미얀마에서 공부하고 온 스님으로부터 위파사나(insight, 통찰이라는 의미) 수행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든 걸 내려놓고 간 것이다. 미얀마에 가서 무엇을 배웠을까.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던 차에 미얀마에서 수행하고 온 스님들과 교류하면서 이것이 위파사나 수행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위파사나 수행법은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 수행법은 경전에 근거해서 하는 것으로 앉는 수행과 걷는 수행을 겸해서 합니다. 1시간 동안 앉아서 집중력을 개발하고 1시간을 걸으면서 몸의 움직임을 관찰하는데, 하루에 14시간씩 합니다. 자신의 몸의 호흡을 관찰하고, 느낌을 관찰하고,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번뇌 망상 등을 관찰하고, 이를 극복해 도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위파사나 수행을 위해 미얀마로 떠난 행운 스님은 이어서 미국 일본 대만 등을 방문하면서 다양한 불교 체험을 하게 된다. 스님의 구도 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미얀마에서 가서 하루 14시간씩 집중적으로 위파사나 수행을 했는데, 1년 반 정도 되니까 진이 빠지고 체력이 달려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미국으로 갔습니다. 미얀마에서 수행할 때 영어로 대화하고, 질문하고, 교재도 봐야 했기 때문에 영어도 익힐 겸 미국에 간 것입니다. 미국에선 워싱턴에 있는 '라오스 절'에서는 태국식 염불을 배웠고, '스리랑카 절'에서는 스리랑카식 염불을 배웠어요.

3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는 일본과 대만으로 갔어요. 일본에선 1년간 시즈오카에 머물면서 일본어를 배웠고, 그곳이 마침 녹차로 유명한 곳이어서 녹차에 관해서도 공부를 좀 했습니다. 대만에서도 1년 정도 살면서 대만사범대학에 중국어를 배우러 다녔고요. 이때 한 학기 동안 전각을 배웠습니다. 원래 전각은 돌에다 자기 이름이나 호를 파서 작품에 도장처럼 찍는 것입니다만, 저는 글씨보다는 그림을 전각으로 파는 공부를 많이 했어요. 이렇게 여러 나라를 드나들면서도 중간중간에 미얀마에 가서 위파사나 수행을 계속 공부했습니다.

사실 불교 경전에 있는 내용을 우리가 완전하게 이해하기는 어렵거든요. 정신적인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죠. 이렇게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수행을 하다 보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실하다는 점을 깨닫게 됐습니다. 우리가 능력이 없어서 끄트머리까지는 못 가더라도 처음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좀 이해하게 된 것이 해외 생활을 통해 얻은 수확이라고나 할까요."
 
▲ 국회에서 열린 시국법회 2023년 11월 20일 ‘어지러운 세상, 종교의 역할’을 주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차 시국법회 야단법석에서 행운 스님이 발언하고 있다.
ⓒ 행운스님
"기득권 세력과 놀아나기 때문에 불교개혁 안 되는 것"

해외 생활을 통해 다양한 체험을 하고 시야가 넓어졌기 때문일까, 행운 스님과 대화를 하다 보면 매우 개방적이면서 현실감각을 갖추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가 한국 불교 현실을 비판하면서 종단 개혁에 앞장선 것도 이런 경륜에서 기인하지 않나 싶다. 우리 사회의 불교 신앙 행태에 대한 스님의 비판이다.

"우리가 극락세계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 극락세계는 경전에 없는 내용이에요. 한국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어 천도재를 지내면 극락세계를 간다고 하잖아요. 남방 불교 경전을 보면 부처님이 얘기한 내용 중에 극락세계라는 건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태평양에 빠져 수십 명이 널빤지를 잡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관세음보살을 계속 부르면 다 구제해준다는 식의 믿음을 강조하는데, 이건 부처님의 가르침에 근본적으로 어긋나는 것입니다."

불교에 대한 그릇된 믿음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행운 스님에게 불교계의 현실적인 병폐와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할 때부터 기득권 세력이었어요. 예를 들어 삼국시대 때를 보면 귀족들이 출가해 왕권과 결탁하게 됩니다. 일제 총독부 시절이나 1950년대 불교 정화운동 이후에도 불교계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권력과 밀착해왔습니다. 문광부에서 물 좋은 사찰의 주지를 임명할 때 로비가 들어가면서 낙하산으로 결정되기 일쑤였거든요.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스님들이 올곧게 바른 소리를 못 하고 눈치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자기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리저리 눈치를 보면서 줄을 서게 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작년에 자살했던 자승 총무원장이 정청래 의원의 '봉이 김선달 발언'을 빌미로 전국의 승려를 모아 윤석열을 지지하게끔 유도한 일입니다.

지금 총무원장은 321명의 선거인단이 뽑고 있어요. 대중의 민의가 반영되지 않고 서로 나눠 먹기를 하는 상황입니다. 나눠먹기식으로 선출된 지도자가 안목이 없고 기득권 세력과만 놀아나기 때문에 불교개혁이 안 되는 겁니다. 현재 4대 종교 성직자 가운데 승려 자살률이 1위입니다. 생계가 위협당하니 스님들이 자살을 많이 하는 것이에요.

총무원장을 직선제로 선출하면 공약을 내걸고 이행하려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종단이 최소한 승려들이 자살하지 않을 수 있도록 생계비를 50만 원씩이라도 지원하는 등의 복지 대책이라든가 무료로 연수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현재는 연수교육도 돈을 받고, 가사도 돈을 받고 팔고, 스님들에게 대종사네, 종사니 해서 5, 6가지의 계급을 매겨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자승 사라졌지만, 불교개혁 물 건너 갔다"

행운 스님은 1990년대에 거세게 제기됐던 불교개혁 운동에 앞장서 왔다. '정봉주의 전국구' 팟캐스트 방송에서 총무원장 직선제를 역설했고, 자승 총무원장에 대해서도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지난해 자승 총무원장이 칠장사 요사채에서 '방화 자살'이라는 의문의 죽음을 한 것이 불교개혁으로 이어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자승의 자살 사건을 둘러싼 일련의 상황과 전망에 관해 물어보았다.

"자승 사건 현장에 처음 나타난 건 국정원 요원이었고, 수사를 맡은 경찰은 소상하게 밝힌 바가 없습니다. 조계종에서는 공식적으로 '소신공양'이라고 발표했고, 정부에서는 방화 자살한 사람에게 무궁화 대훈장인가를 주면서 모든 걸 덮어버렸습니다. 현재 알려지기로는 자승이 죽기 이틀 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합니다. 역대 어느 독재정권보다도 심하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자승의 사망 현장에 경찰에 앞서 국정원이 먼저 도착한 것은 정부와 관련한 여러 가지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자승 총무원장이 전부터 대북사업 같은 걸 하려는 시도가 있었거든요. 또 다른 배경으로는 자승이 승려대회를 주도하면서 현 정권과 무슨 거래를 했다면 이와 관련한 유언이나 자료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를 수집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입니다. 승려대회와 관련한 어떤 밀약과 거래가 밝혀지면 선거법에 저촉될 수도 있거든요.

자승이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불교 개혁의 전망이 밝아졌다고 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개혁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자승 원장이 힘을 가지고 있을 때 다 했겠지요. 그런데 지금은 자승이 죽어버린 상태고 또다시 기득권 세력끼리 이합집산하면서 나눠 먹기를 하는 형국이어서 개혁은 물 건너갔다고 저는 봅니다."
 
▲ 남선사 향적전 ‘퓨전 한옥’ 양식으로 건립한 남선사 법당의 현판과 주련은 어려운 한문 대신 모두 한글로 씌어져 눈길을 끈다.
ⓒ 황의봉
 
한글 현판, 한옥식 절, 영화감상회까지... 남선사의 시도

'무엇이 좋아 웃고 무엇을 기뻐하랴 세상이 끊임없이 불에 타고 있나니 그대는 온통 어둠 속에 덮여 있구나 어찌하여 진리의 등불을 찾지 않는가' (향적전 주련)
'향하는 길이 다를지라도 문 너머의 진리는 같다' '깨닫지 못해도 진리의 한자락을 접한 것만으로도 기쁘다'(연경당 주련)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의 남선사를 처음 방문한 사람은 무엇보다도 한글로 쓴 현판과 주련에 눈길이 꽂히게 된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어려운 한문 대신 누구나 읽어보면서 고개를 끄덕일 만한 내용이 적혀 있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하게 됐을까.

"앞에서 불교개혁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절에 가면 다 한문으로 씌어 있잖아요.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요. 기존의 것을 싹 지우고 새롭게 하지 않으면 한국 불교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봅니다. 현판이나 주련뿐 아니라 불교의식도 다 바꿔야 합니다. 주련에 적힌 한글 문구는 책 속에서 제가 가져다 쓰기도 했고, 법구경(法句經)에 나오는 말씀을 번역한 것도 있어요. 또 굳이 불교 경전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면 갖다 쓰고 있습니다."

남선사는 400여 평의 부지에 아담한 한옥식의 건물 3채가 들어서 소박하면서도 친근한 느낌을 준다. 어떻게 한옥식으로 절을 짓게 된 것일까.

"절의 자재는 육지의 한 사찰에 있던 요사채를 철거할 때 자재들을 뜯어와 재활용한 것입니다. 제가 전부터 한옥에 관심이 많아 경북 청도의 김창희 대목장 제자분이 세운 한옥학교에 가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강원도 양양의 구들학교에서 구들 놓는 법을 배웠어요. 제주도가 의외로 겨울철 난방비가 많이 들더라고요. 제주도에 나무는 많으니까 불을 때고 사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 구들을 놓은 것입니다. 남선사에는 대웅전은 없고 대신 향적전(香寂殿)이라고 했는데, 한옥이지만 문이나 설비를 현대식으로 했기 때문에 퓨전 한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옥 양식의 법당이나 한글로 새긴 현판, 주련이 남선사의 개혁적인 겉모습이라면 내용상으로는 어떤 파격이 있을까. 행운 스님은 일각에서 한국 불교의 르네상스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다방면에 조예가 깊다. 전각에 능하고 그림도 익숙하다. 영화에도 관심이 많다. '정봉주의 생선 향기'라는 팟캐스트 방송에 나가 특유의 입담과 유머로 커다란 인기를 끌었고, 합기도와 오토바이 등 스포츠와 모험에도 능하다. 남선사는 행운 스님의 이런 재능과 관심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를 열고 있다. 영화감상회와 기와 그림, 전각작품 등이 대표적이다.

"영화감상회는 2018년 무렵부터 시작했어요. 강당으로 쓰려고 17평짜리 연경당(연경문화예술원)을 지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주 남문서점에서 매주 여는 '목요 인문영화'라는 행사엘 가봤는데 굉장히 좋더라고요. 그래서 양윤모 영화평론가에게 '우리 절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영화를 상영하고 해설도 해줄 수 있겠느냐'고 제안했더니 흔쾌히 받아들여 시작하게 됐습니다. 마을주민이든 누구든 와서 영화를 보고 평론가의 해설을 듣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통해 시대의 아픔이라든가 의미 있는 메시지에 공감하고 깨어 있는 의식을 갖자는 게 감상회를 하게 된 취지입니다. 요즘엔 많이 알려져서인지 30석이 거의 꽉 찹니다.
 
▲ 영화감상회 남선사 연경문화예술원에서 매달 열리는 영화감상회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영화감상이 끝나면 영화평론가의 해설을 듣고 의견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 황의봉
 
제가 요즘 몰두하고 있는 작업 중 하나가 기와에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리는 일입니다. 기와의 재질이나 색감 문양 같은 것을 살리면서 적당히 그림을 파내고 색을 입히는 방식입니다. 요즘 기와는 강도가 세 이런 작업을 하기 힘들지만 옛날 기와는 가능합니다. 특히 대웅전의 큰 기왓장이 쓸모가 없어져 버리게 되면 제가 주워다가 그림 작업에 활용하는 겁니다. 부처님 일대기를 보여주는 기와 그림 100점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현재 70점가량 완성해 일부는 절에 전시해 놓았어요. 한 30점 정도 더 만들게 되면 정식으로 전시회를 할 예정입니다.

부처님의 일대기는 구구절절 이야기가 많은데, 이걸 그림으로 그려 메시지를 전하게 되면 어린이를 비롯해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겠습니까. 작품을 모두 완성하면 책으로도 내고 싶습니다. 글씨 대신 그림을 판 전각 작품으로 남선사 달력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앞에서 대만에 갔을 때 전각을 그림으로 파는 공부를 했다고 했습니다만, 제가 이런 일에 재주가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수행하면서 대만에 가고 전각을 배우다 보니까 제 마음속에 있는 뭔가가 발현된 것이죠."

'김건희·윤석열 OUT' 달고 오토바이로 순례여행

행운 스님은 지난 3월 4일부터 1개월에 걸쳐 호주 대륙을 오토바이로 달리는 평화 순례 여행을 다녀왔다. 호주 여행 동영상을 보면 '내 마음의 평화, 내 이웃의 평화, 한반도의 평화'를 영어로 쓴 플래카드가 보이고, '4월 10일 김건희·윤석열 OUT 스트레스로 죽을 지경이다'라는 한글 플래카드도 보인다. 위험을 무릅쓰고 떠난 오토바이 여행의 배경과 과정을 들어보았다.

"'내 마음의 평화, 내 이웃의 평화, 한반도의 평화'는 제가 운영위원으로 있는 사단법인 '평화의 길'이 지향하는 모토입니다. 윤석열 정권이 북한 선제타격 같은 평화를 위협하는 발언을 하고, 일본이 핵 오염수를 방류하는 등 평화가 위협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의 길'이 추구하는 평화 메시지를 지구 곳곳에 알리자는 취지로 오토바이 여행을 시작한 것이에요. 호주 여행은 더 넓은 세계로 평화운동이 뻗어나가기 위한 시작이자 연습인 셈입니다. 앞으로 유라시아 대륙이나 팬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지로 오토바이를 타고 평화의 길 순례를 할 생각입니다.

한 달 동안의 여행기록을 보니까 이번에 비포장도로 500㎞를 포함해 약 8500㎞를 달렸습니다. 코스는 호주 시드니에서 남쪽으로 갔다가 다시 서쪽으로 이동했는데 호주를 상징하는 엘리스 스프링스 또는 울룰루 큰 바위 방향이 모두 사막 지역이어서 비포장도로가 많았던 겁니다. 가장 위험했던 순간이 카메론 코너라는 지역에 갔다가 길이 끊기고 오토바이는 고장이 났던 때였어요. 앞으로도 뒤로도 못 가는 상황에서 새틀라이트 폰으로 구조신청을 하고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물도 다 떨어지고 기진맥진한 상황이었는데, 그 지역의 목장 매니저가 왔더라고요. 경찰이 200㎞나 떨어진 데 있으니 자기에게 가보라고 해서 왔다는 거예요. 그분이 임시 조치로 오토바이가 움직일 수 있게 해줘 겨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 호주 평화순례 지난 3월 4일부터 1개월에 걸쳐 오토바이로 8,500㎞를 달리는 호주 평화순례에 나선 행운 스님이 울룰루를 배경으로 촬영했다.
ⓒ 행운스님
 
이번 호주 여행에선 이승기씨라는 뉴질랜드 교포와 함께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이승기씨는 세계 70개국 약 20만㎞를 오토바이로 배낭 여행한 경험이 많은 분입니다. 호주에 가보니까 오토바이 타고 여행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더군요. 이러이러한 취지로 오토바이 여행을 하고 있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스티커를 붙이거나 나눠주기도 합니다. 저도 오토바이에 평화의 깃발을 꽂고 스티커를 붙이고, 플래카드를 펼치기도 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스티커를 나눠주기도 했는데, 휴게소에 스티커 붙이는 곳도 있더군요."

행운 스님의 얘기를 듣다 보면 뜨거운 열정과 행동력, 실천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평화와 예술, 자기 개혁과 불교개혁을 추구하며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행운 스님의 향후 구상을 물었다.

"제가 미얀마로, 미국으로 계속 떠돌아다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할 곳을 찾게 되었어요. 그러던 중 제주도에 와서 구석구석 다녀보니까 이곳이 한마디로 정원의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 년 내내 꽃이 피고 녹색으로 덮인 이곳에 작은 절을 짓고 예술활동을 하면서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2013년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앞으로 기와 그림이 완성되면 전시회를 할 예정이고, 오토바이 세계여행도 계속 추진할 생각입니다.

또 요트 훈련을 해서 올여름에는 요트 운전 면허증을 따려고 합니다. 윤석열 정권이 끝나고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제주도에서 무동력 요트를 타고 바다 위의 국경선 NLL을 통과해 북한 쪽을 거친 뒤 오토바이로 실크로드를 가보고 싶습니다. 작년에 서귀포시 강정에서 평화운동을 하는 송강호 박사가 요트를 타고 오키나와 대만을 거쳐 돌아오는 공평해 프로젝트를 할 때 제가 동승해 부산까지 함께 간 적이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알리려고 유튜브를 통해 인터뷰하기도 했지요. 우리 '평화의 길'이 추구하는 바와 통하니까요.

앞에서 말한 대로 윤석열 정권이 계속해서 민심을 외면하고 공정과 상식을 저버린다면 야단법석 승가회가 시국법회를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엇갈리니까 제가 하는 일을 많이 도와줘야 한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 반면, 어떤 분들은 너무 개혁적이고 진보적이라며 좀 싫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쨌든 부처님이 계속해서 자기혁신을 꿈꿔왔듯이 저도 자기혁신을 이루기 위해서 이런 것도 해보고, 저런 것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행운 스님은 유튜브 천불난다 tv(https://www.youtube.com/@TV-sb2jd)를 하고 있다. 호주 오토바이 여행 관련 영상 100여 개를 비롯해 장작을 패거나 밀감 까먹는 것과 같은 일상생활과 음악회 행사 등의 영상이 올려져 있다. '천불난다'의 의미를 묻자 "사회가 이 모양이고 정부가 이 모양이어서 천불이 난다는 뜻과, 한 분 부처님으로는 안 되고 천(千)의 부처님이 오셔서 세상을 좀 밝고 아름답게 이끌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함께 담은 이름"이라고 했다. 아무쪼록 우리 가슴속 천불은 잦아들고, 사바세계로 천불이 오시기를 기원해본다.
 
▲ 기와 그림 부처님 열반시 제자 아난다에게 유언하는 장면을 기왓장에 그린 작품. 행운 스님은 부처님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기와 그림 100점을 완성하면 전시회를 할 예정이다.
ⓒ 행운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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