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은 왜 숲속의 도깨비가 됐을까

올해 칸영화제 초청된 단편 ‘메아리’는 한 소녀가 만난 도깨비 전설을 그렸다. [사진 칸국제영화제]

술 취한 청년들에게 쫓기던 소녀가 금지된 숲으로 도망쳤다가, 몇해 전 시집간 옆집 언니를 만난다. 팔려가듯 떠났던 언니는 여전히 혼례복 차림이다. 14일(현지시간) 개막한 제77회 칸 국제영화제 학생단편경쟁 ‘라 시네프’ 부문에 12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초청된 임유리(26·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 감독의 단편영화 ‘메아리’다. 메아리는 사람을 잡아먹고 똑같이 흉내 낸다는 전설 속 도깨비다.

초단편 습작 2편을 빼면 ‘메아리’가 임 감독의 영화제 데뷔작이다. 그는 “영화의 시작은 꿈이었다. 어느 서늘한 가을, 모든 걸 포기한 소녀가 거대한 숲을 뒤로하고 바다로 나아가는 꿈이었다. 그 해방감을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칸 영화제 초청 메일을 받았을 땐 ‘오리엔탈리즘 때문인가’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바다로 함께 나아가고 싶었던 마음이 닿은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메아리 전설은 임 감독이 만들었다. 메아리는 왜 그 숲에 있을까. 상상 끝에 독특한 ‘크리처’(괴물)를 탄생시켰다. 그는 “현실 문제를 판타지로 풀면 본질에 더 가까워진다. 스페인 내전을 아이 시선으로 그린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영화 ‘판의 미로’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독특한 세계관 덕분에 2022년 CJ문화재단신인 감독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임유리 감독

영화는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에서 먼저 공개됐다. 남도영화제에선 “남성 폭력에 희생된 여성들이 도깨비로 부활해 옥연(정은선)을 구한다”(허남웅 영화평론가)는 여성 연대·해방 이야기로 주목받았다. 시나리오를 17차례나 고친 임 감독은 “처음부터 페미니즘 코드로 시작한 건 아니지만, 수정해가면서 좀 더 많은 여성을 대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호정 촬영감독 등 스태프도 대부분 여성이다. 시나리오에 공감한 이들이 의기투합하다 보니, 조명감독을 제외하고 모두 여자였다고 한다.

“원래 서양화과 지망생이어서 화면 구도와 예쁜 그림에 대한 집착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야 하는데, 머리카락 한올까지 신경 쓴 게 지금 생각하면 아쉽습니다.” 임 감독은 “하고픈 이야기나 사람을 그림 속에 담고 싶어서 전공을 영화로 틀었다”며 “로알드 달, 에릭 칼 같은 동화작가, ‘피노키오’ ‘헤라클레스’ 등 옛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고 말했다.

올해로 27년째인 ‘라 시네프’ 부문에는 전 세계 영화학도들이 출품한 단편 2263편 중 ‘메아리’ 등 18편이 진출했다. 이 부문에서 한국은 홍성훈 감독이 ‘만남’(2007)으로 3등상을, 윤대원 감독이 ‘매미’(2021), 황혜인 감독이 ‘홀’(2023)로 2등상을 수상했다. 영화 ‘늑대소년’(2012), ‘승리호’(2021)의 조성희 감독도 ‘남매의 집’(2009)으로 3등상을 받았다. ‘메아리’는 22일 칸 현지에서 상영하며, 수상자는 23일 발표한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