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구제 수단이 보험금 지급 거부 수단으로?… ‘의료자문’ 논란

신은진 기자 2024. 5. 14. 18:2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특정 보험 회사가 주치의 진단서 등 가입자의 제출 서류를 믿지 못하겠다며 자신들이 지정한 병원에서 ‘의료자문’을 받으라고 요구한 사례가 알려져 ‘의료자문’ 절차의 오남용 문제가 주목받고 있다. ‘의료자문’은 무엇이며, 보험사는 왜 ‘의료자문 동의서’를 환자들에게 요청하는 것일까?

◇보험사 '말장난'에 환자 혼란 가중

일반적으로 ‘의료자문’은 보험회사가 보험금 지급 심사 또는 손해사정업무에 참고하기 위해 환자의 치료를 담당한 전문의(주치의) 또는 주치의 소견 발급이 불가한 경우에 주치의 이외의 전문의에게 의학적 소견을 구하는 행위다. 이는 보험약관에서 규정한 보험금 지급절차의 의무사항이다.

만약 의료자문에 환자와 보험사 간 이견이 발생할 경우 보험사는 해당 환자의 담당 주치의가 아닌 의료법 제3조상의 종합병원 소속의 전문의(제3의 의사)를 통해 진단과 치료 과정에 대한 의견을 받을 수 있다. 이는 보험수익자(환자)가 보험회사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는 구제 수단으로서 선택적으로 이용하도록 마련된 절차로 ‘제3의료기관 의료판정’이라 부른다. 일반적인 의료자문과 달리 환자가 원할 때, 즉 선택사항으로 환자의 동의를 얻어야만 진행된다.

문제는 엄연히 구분되는 2가지 자문 절차가 구분되지 않고 오남용 되고 있다는 것이다. 보험사는 ‘의료자문’과 ‘제3의료기관 의료판정’의 차이를 고지하지 않거나 한꺼번에 동의를 받음으로써 ‘제3의료기관 의료판정’의 동의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자문계약을 체결한 특정 의료기관의 전문의를 통해 ‘의료자문’을 진행한다. 결과적으로 의료자문 오남용은 환자 주치의의 진단과 치료 적정성에 이견을 만드는 기회가 되어 보험금 지급 거절의 근거가 된다.

실제 보험회사에서 가입자에게 서면으로 요청하는 의료자문 동의서를 살펴보면 ▲일반적인 '의료자문'과 '제3의료기관 의료판정에서 의미하는 의료자문'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의료자문'으로 동의를 받거나 ▲'의료자문'과 '제3의료기관 의료판정에서 의미하는 의료자문' 동의 여부를 한 번에 체크 ▲분리하여 질문하였지만 '제3의료기관 의료판정에서 의미하는 의료자문'이 선택 사항임을 고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제3기관 의료판정이 선택 사항임을 고지하지 않은 사례(1)와 의료자문과 제3기관 의료판정 동의 여부를 한 번에 받는 사례(2) /헬스조선 DB
정인식 손해사정사는 “현재 의료현장에서는 의료자문에 동의를 안 하면 보험금 지급이 어렵다는 식으로 사실상 보험사가 주치의 의학적 소견은 배제하고 환자들에게 선택사항인 제3기관 의료판정에 동의하도록 강제하고, 이를 의료자문 결과로 하여 결국 보험금 부지급이 일어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KSC서울 김창수의원 김창수 원장(흉부외과 전문의)은 “담당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 시행된 치료임에도 보험사에서 ‘제3의료기관 의료판정’ 절차를 이용해 ‘과잉진료’로 몰아가면서 이견을 만들어 내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의료진이나 환자들이 위축돼 해당 진료 행위 자체를 하지 않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과 보험협회가 만든 ‘의료자문 표준내부통제기준안’은 “보험회사는 의료자문 결과만을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지연하여서는 아니되며 보험계약자 등이 제출한 의료기록 등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보험금 지급 심사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선택적 의료자문인 제3의료기관 의료판정에 대한 동의 여부 및 그 결과가 보험금 지급 거절 및 지연의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의미다.

실제 환자 A 씨는 지난 2004년 뇌경색증 진단 시 보험금 2,000만원을 지급하는 계약을 체결한 후 2020년 대학병원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 뇌경색증 진단을 받았다. 이에 뇌경색증 진단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보험사에 청구했으나, 보험사에서는 제3의료기관을 통한 자체 ‘의료자문’ 결과 '뇌허혈발작'으로 진단되었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감정의나 자문의보다는 환자를 직접 대면하고 진료한 담당 주치의 판단을 우선해야 한다고 판단하며 환자가 제기한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보험사가 약정한 보험금 200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고 선고한바 있다.

◇의료자문 절차, 실비보험 악용 예방 수단으로 쓰여선 안 돼

다만, 일부 의료기관과 브로커가 실비보험을 악용하는 이른바 ‘실손보험금 빼먹기’ 문제도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비급여 주사료, 백내장수술에서 시력교정효과가 있는 다초점렌즈를 삽입, 치료를 빙자한 과도한 도수치료, 역류 증상이 없음에도 초음파 결과를 조작해 치료가 필요한 하지정맥류로 둔갑시켜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는 사례 등이 있다.

국회는 이에 대응하여 지난 1월 ‘보험사기방지특별법’ 개정안을 발표하고 실제 보험사기로 보험금을 취득하거나 제3자에게 보험금을 취득하게 하는 행위뿐 아니라 보험사기를 알선, 유인, 권유, 광고하는 행위까지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 문제가 필수 의료체계를 악화시킨다는 지적에 따라 ‘실손보험 제도 개편’은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논의하는 의료개혁의 핵심 안건으로도 상정되어 있다.

익명을 요청한 혈관외과 전문의는 "보험 사기에 가담하는 일부 의료진의 일탈은 응당 무겁게 처벌받아야 한다"며 "다만, 보험 사기 문제는 처벌 규정에 따라 다스려야지, 모든 진료 및 치료 건을 일단 사기로 의심한 뒤 의료자문 제도를 악용하면서까지 보험 지급을 미루는 방식으로 관리하는 건 옳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보험사와 보험사 친화 병원 간 결탁을 기반으로 나타나는 자문 제도 남용은 선량한 환자들이 피해를 입는 구조다"고 강조했다.

◇최선의 치료받을 환자 권리 지키려면…

환자가 괜한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보험회사가 의료자문 표준내부통제기준안에 따라 약관설명 및 용어를 보다 분명히 하는 게 첫 번째다. 그러나 이는 당장 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현재 환자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면 조금 더 꼼꼼히 서류를 따져 읽는 수밖엔 없다.

정인식 손해사정사는 “환자는 ‘의료자문’과 ‘제3의료기관 의료판정’을 구분하고, 서류상 구분이 되어 있지 않은 경우 자필로 '주치의 소견이 없는 선택적 의료자문은 거부한다”는 의견을 명확히 기재해야 최소한 권리를 보호할 수 있다"고 밝혔다.

Copyright © 헬스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