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걸으며... 자갈밭 천막에 '생명의 그물망' 친다

박은영 2024. 5. 1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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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보 천막 소식 15일차] 전국녹색연합 활동가 30여명 방문해 '세종보 재가동 중단' 퍼포먼스

[박은영 기자]

▲ 전국녹색연합 활동가들의 퍼포먼스 현장 전국녹색연합 활동가 30여명이 금강에 들어가 피켓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녹색연합
'사이'.

이 단어는 관계를 의미한다. 물체나 사람과의 간격을 뜻하는 명사이다.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막으려고 보 상류 300m 지점의 자갈밭에 친 농성천막을 지키고 있으면 문득문득 이 단어가 떠오른다. 끝없이 이어지는 발길과 이들이 정성껏 가져오는 손길을 느낄 때마다 우리는 더 가까운 사이가 되고, 그 인연의 끈이 사방팔방 이어져 촘촘한 그물망을 창조해가고 있는 건 아닌지. 그 사이가 농성천막을 지키는 힘이다.

"흘러야 강이다!" 
"열어라 생명의 물길!"

지난 13일, 30여명의 전국녹색연합 활동가들이 금강에 맨발로 들어가 외쳤다. 활동가들은 엄보컬, 김선수가 부른 노래 <흘러라 강물아>를 합창하고 4대강 보 해체를 촉구하는 대형현수막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화창한 하늘 아래 흐르는 금강은 금빛으로 일렁였다. 그 강물에 대고 활동가들이 합창을 했다. 제발,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흘러달라고.

이날도 어김없이 활동가들은 천막농성장의 정규 코스인양 강변에 가서 물수제비를 날렸다. 아주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물수제비를 날려본 활동가도 있으리라. 주말에 교회 예배 차 방문했던 어린이들처럼 신이 났다. 누구라도 강에 서서 자갈을 밟으면 어린아이의 마음이 된다는데, 딱 그 모습이다. 이렇듯 자연을 마주하는 삶을 잃는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까? 도시 안에 흐르는 강은 자연과 사람을 관계 맺게 하고 위로한다. 함께 살아간다.

단절로 죽어가는 강… 이윤을 위해 잃어가는 것들  
 
▲ 새만금 방조제 사이에 둔 흐르는 바다와 막힌 강 흐르는 바다는 맑고 푸른 반면, 바다와 막힌 강은 탁한 녹색이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전국녹색연합 활동가들은 2년 전, 새만금 방조제 위에서 새만금 신공항 반대 삼보일배를 했었다. 드론을 띄워 새만금 방조제를 찍어보니 구조물을 사이에 두고 나누어진 강과 바다는 색과 빛이 너무나 달랐다. 한쪽은 푸르게 빛나는 바다였고, 다른 한쪽은 빛도 통과 할 수 없을 만큼 탁한 죽음의 강이었다. 

정부는 새만금호 수질을 개선시키기 위해서 2001년에서 2020년까지 4조 원 넘게 돈을 쏟아 부었다. 지금도 많은 세금을 쓰고 있지만 실패한 수질 정책으로 개선될 리 만무했다. 한시라도 빨리 상시 해수 유통을 하는 것이 새만금을 살리는 방법이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새만금신공항 사업도 이미 국토부가 2019년 사전타당성 조사결과 비용편익 분석이 0.479밖에 되지 않아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한 바 있지만 정부는 강행하고 있다. 

방조제는 바다와 강의 '사이'를 인위적으로 끊었다. 바다와 강 사이 구조물 위에서 삼보일배를 하며 다가갈 수도 없고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은 강을 통해 정부와 전라북도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생각했다. 아마 그들은 바다와 단절되며 잃은 것이 더 많지 않았을까.

금강과 관계를 맺는다…자연의 권리를 함께 외치는 일  
 
▲ 공주보 개방 시 드러난 모래사장에서 공주보를 개방하며 드러난 모래사장에 놀러간 어린이가 피켓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 임도훈
   
하지만 그 단절 때문에 생긴 생산적인 '사이'도 있다. 무릎을 대고 허리를 숙이고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는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만경강, 김제평야, 서해 바다와 삼보일배 하는 이들 사이에 '관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새만금에 사는 생명과 우리가 무관한 남이 아니라, 어떤 '사이'가 되어가는 경험이었다. 그저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갖던 것을 넘어 그들을 변호하고 함께 권리를 외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천막을 지키고 찾는 이들은 매일 금강과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 오면 물떼새 둥지를 살피고, 어떤 새들이 있나 유심히 관찰하고 흐르는 강을 보며 명상에 잠기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벗이 되어간다. 애정이 깊어진다. 금강의 생명들과도 '그런 사이'가 되어간다. 그럴수록 금강은 애달파진다. 강하고 아름답지만,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강을 더 지키고 싶다.
 
▲ 수문개방된 세종보와 모래톱 2018년 수문이 개방되고 세종보 주변에 넓게 형성된 모래톱
ⓒ 대전충남녹색연합
 
"물떼새와 흰수마자는 어데로 어데로 어데로 가야하나."

노래 '흘러라 강물아' 일부 가사를 금강에 맞게 개사해 함께 부른 노래다. 강에 서서 '흘러라 강물아'를 외치고 부르며 우리는 금강과 더 강고한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 아직은 펄이 남아있는, 모래가 있는 물속으로 들어가면 깨끗한 모래톱에 둥지를 트는 물떼새와 맑은 모래여울에서 사는 흰수마자가 갈 곳을 잃어가고 있음을 맨발로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다. 천막을 찾는 많은 이들과 같이 노래도 부르고, 율동도 하고, 강을 대신해 외친다. '흘러야 강이다', '열어라 생명의 물길'. 금강만큼 간절할 수는 없었겠지만 우리는 진심으로 강이 흐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여기 천막농성장을 지킨다. 금강과 우린 이곳에 들어올 때보다 아주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반갑다,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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