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한 유인원, 퇴화한 인간... '혹성탈출4', VFX의 신기원 열다

나원정 2024. 5. 1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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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개봉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진화한 유인원이 인간 노예 부리는 세계
감독 "68년 영화 오마주, 새 챕터 열었다"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8일 개봉)는 전체 1,500개의 컷 중에서 1,470개의 컷이 모두 VFX 기술로 탄생했다.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인류의 시대는 가고, 유인원이 세상의 주인이 된다면?
찰턴 헤스턴 주연의 첫 영화(1968)부터 지난 8일 개봉한 신작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이하 '혹성탈출4')까지, 56년 간 10편의 영화를 배출한 '혹성탈출' 세계관은 1960년대 동물원 우리에 갇힌 고릴라 앞에서 시작됐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1957) 원작자로도 유명한 프랑스 작가 피에르 불(1912~1994)은 고릴라들의 '인간적'인 표정을 보고 문득 이런 상상을 했다. 닮았지만 처지가 다른, 인간과 유인원의 관계가 역전된 행성이 있다면 어떨까. 당시 우주개발 붐 속에 6개월 만에 SF소설 『혹성탈출』(1963)을 써내려 갔다.


"원래 인간들 거였어" VS "유인원은 또 침묵해야돼?"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8일 개봉)는 언어 능력을 잃지 않은 인간 메이(프레이아 앨런, 사진)와 유인원 청년 노아(오웬 티그)를 통해 진정한 공존에 관해 질문한다.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원작의 생명력은 반세기가 지나도 여전하다. '혹성탈출4'는 지난주 북미 등지에서 개봉해 전세계 1억2900만 달러(약 1771억원)에 달하는, 시리즈 최고 오프닝 성적을 기록했다. 리부트 3부작(2011~2017) 결말로부터, 300년이 흐른 미래 배경이다.
먼 옛날 인간이 퍼뜨린 바이러스로 인해 언어 능력을 얻은 유인원 사회는 지능이 퇴화한 인간들을 배척하거나 노예로 사냥하며 진화를 거듭한다. 주인공은 독수리를 길들이며 살아가는 침팬지 부족 청년 노아(오웬 티그). 노아는 유인원 제국을 꿈꾸는 폭군 프록시무스(케빈 두런드) 일당에 가족을 납치당한 뒤, 같은 무리에게 쫓기던 인간 여성 메이(프레이아 앨런)와 힘을 합친다. 그러나 유인원이 인류에 동물 취급을 당한 과거를 알게 된 뒤 고민에 빠진다.
“원래 전부 인간들 거였어.” 위성통신 장비를 되찾아 인류의 시대를 되돌리려는 메이의 말에 노아는 이렇게 반문한다. “그럼 유인원은? 또 다시 침묵 당하던 시절로 돌아가란 소리야?”

인도차이나 떠돈 프랑스 작가, 동물원서 원작 착안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8일 개봉) 의 폭군 프록시무스(케빈 두런드)는 유인원 제국을 꿈꾸며 폭력과 약탈을 일삼는다.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피에르 불은 소설 『콰이강의 다리』(1952)에선 제2차 세계대전 때 태국 정글 속 연합군 포로수용소를 무대로 영국‧미국‧일본군의 미묘한 공존을 다뤘다. 자신의 실제 참전 경험을 녹여냈다. 격변기 속 권력 관계를 몸소 겪은 그는 중년의 어느 날 동물원의 고릴라 우리 앞에서 『혹성탈출』의 단초를 떠올렸다.
원작을 계승한 ‘혹성탈출4’가 던지는 질문은 자명하다. 이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리고 공존의 의미는 무엇인가. 주제의식에서 초심으로 돌아갔다면, 비주얼은 획기적으로 진보했다. “7년 만에 돌아온 세계관을 관객이 직접 탐험하는 듯한 체험감을 준다”(타임)는 평가다. ‘메이즈 러너’ 3부작의 웨스 볼 감독이 ‘아바타: 물의 길’ 제작진을 만나 할리우드 VFX(시각특수효과) 기술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팔이 긴 오랑우탄, 목발 짚고 연기 캡처


오랑우탄 라카 캐릭터는 인간보다 긴 팔을 배우가 양팔에 목발을 짚고 연기해 퍼포먼스 캡처로 최종 캐릭터를 구현했다. AP=연합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유인원 캐릭터는 놀라운 수준이다. 거의 모든 장면에 VFX가 들어갔고, 상영시간 145분 중 33분은 장면 전체를 CG(컴퓨터그래픽)로 그려냈다. 뉴질랜드의 세계적 VFX 회사인 웨타 FX(‘반지의 제왕’ ‘아바타: 물의 길’ 등)가 참여했다.
2011년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배우의 신체 움직임만 CG 캐릭터에 담던 ‘모션 캡처’에서 더 나아가 얼굴 움직임, 감정 연기까지 포착하는 ‘퍼포먼스 캡처’ 기술을 야외 촬영에도 접목시킨 기념비적 작품이었다.
‘혹성탈출4’는 11명의 새로운 유인원 캐릭터를 고해상도로 구현했다. 유인원들이 절벽을 기어올라 독수리 알을 훔쳐내고, 공중에 두발로 매달리는 등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액션을 펼친다. 나이든 오랑우탄 라카(피터 마콘)가 노아와 모닥불을 마주한 채 “(메이가) 인간치곤 똑똑한 편”이라 중얼대는 장면도 자연스럽기 그지 없다.
유인원 역의 배우가 움직임 포착용 복장 ‘포캡’을 입고 카메라 2대가 달린 헬맷을 쓴 채 연기하면 VFX팀이 이를 CG로 빚어낸 유인원 캐릭터에 반영하는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인간보다 팔이 긴 라카의 경우 배우가 양팔에 목발을 짚고 팔 동작을 표현했다.

VFX 작업에 총 9억4600만 시간 걸려


웨타에서 캐릭터 표정을 구축하는 한국인 페이셜 모델러 김승석 씨는 “오랑우탄은 눈썹 위쪽 뼈가 웃는 듯한 형태여서 표정 묘사가 힘들었다”면서 "FACS(페이셜 액션코딩 시스템)를 이용해 감정에 따른 표정 변화를 얼굴 근육 별로 분석해가며 작업했다"고 했다. 유인원의 섬세한 표정은 배우 얼굴에 101개 점을 찍고, 눈 움직임도 16개 기준점을 잡아 점 움직임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빚어냈다.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8일 개봉)에선 고난도 VFX 기술로 알려진 털이 있는 캐릭터 표현에 더해 물과 불 등 다양한 장면을 '아바타2' 첨단 기술 등을 적용해 자연스럽게 완성했다.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가장 어려웠던 건 물과 유인원‧맹금류의 털 표현이었다. 오랑우탄이 물에 휩쓸리는 장면은 실제 오랑우탄의 목욕 영상을 토대로, 털이 물살에 움직이고 젖어 드는 모습을 1년 걸려 완성했다. VFX 결과물의 렌더링 작업에 총 9억4600만 시간이 걸렸는데, 고사양 컴퓨터 한 대로 작업한다면 청동기 시대부터 시작해야 할 작업량이라고 윈퀴스트 시각효과 감독은 설명했다.


1968년 영화 경고 '인간 조심하라'…시리즈 재시동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8일 개봉)은 판타지 액션 영화 '메이즈 러너' 3부작을 만든 웨스 볼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사진은 지난 7일 볼 감독이 한국 취재진과 화상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웨스 볼 감독은 “1968년 찰턴 헤스턴 주연의 오리지널 시리즈를 TV로 보고 자랐다”면서 "이 고전의 오마주를 통해 프랜차이즈의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고 자신했다. 극중 메이가 자신의 실명을 밝히기 전 유인원들에게 불리는 이름 ‘노바’도 1968년 영화의 오마주다.
당시 찰턴 헤스턴이 연기한 우주선 선장 테일러는 수천년의 동면 후 도착한 유인원 행성에서 '노바'라고 이름 붙인 여성과의 탈출극 끝에 이런 고대 문구를 발견한다. ‘인간을 조심하라. (중략) 땅을 차지하기 위해 형제를 살해한다.’ ‘혹성탈출4’의 메이 캐릭터가 테일러의 변주란 해석도 나온다. 미국 매체 인디와이어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볼 감독은 68년 영화의 속편을 만들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 4월 25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주연 배우 프레이아 앨런(왼쪽)과 오웬 티그(오른쪽)가 2011~2017년 '혹성탈출' 3부작의 퍼포먼스 캡처 연기를 이끈 주연배우 앤디 서키스(가운데)와 함께 참석했다. AFP=연합뉴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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