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돌'과 살아갑니다

박보현 2024. 5. 14. 14: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반려돌의 변하지 않는 물성, 정서적 안정감 효과로 인기

[박보현 기자]

▲ 반려돌을 키우는 사람이 늘고 있다 아이디어스 반려돌 판매 상품 캡쳐
ⓒ 아이디어스
 
"아무도 없는 집에 퇴근하고 돌아오면 '장돌이'를 보며 하루의 고단함을 위로 받아요"

'장돌이'는 장은희씨가 키우는 반려돌의 이름이다. 은희씨는 대학을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 2년 전 진주로 이사를 왔다. 본가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데려오고 싶었지만, 원룸 규정상 '반려동물은 키울 수 없다'는 단서조항이 있어 그러지 못했다.

이삿짐을 옮겨 놓고 허전함을 달래려 화분 몇 개를 두고 키워보기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작은 물고기나 거북이를 키워볼까? 고민도 했지만, 어항 관리의 번거로움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 즈음 친구가 메시지로 생일 선물 쿠폰을 보내왔다. 은희씨는 '반려돌'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당황했지만, 이내 귀엽고 앙증맞은 반려돌 사진을 보며 미소가 지어졌다.
 
무려 26살 생일 선물로 돌을 받았다. 반려돌 이름은 내 성을 따라서 '장돌이'다. 이 아이의 MBTI는 ISFP이다. 이유는 '집돌이' 이기 때문이다. 음악 듣는 게 취미여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려줬다.

늘 같은 표정인데도 내가 보기엔 미세하게 달라 보인다. 음악 들을땐 표정이 좋은데, 씻겨 줄때는 뭔가 언짢아 보이고. 다른 반려돌들도 그런가요?

집에 있을때 최대한 많이 놀아주면서 친해져야겠다. 장돌아! 우리 같이 잘살아보자! 돈은 언니가 벌어올게!
- 장은희씨가 쓴 상품 후기

은희씨는 "지치고 힘든 날이면 '장돌이'에게 마음을 털어놓는다"며 "마치 친한 친구에게 말하는 것처럼 '장돌이(반려돌)에게 위로 받는다"고 말했다.

은희씨 뿐 아니라, 반려돌을 구입한 사람들은 대체로 온라인 쇼핑몰 상품 후기에 긍정적인 반응을 올렸다.

"키우던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상실감에 시달렸는데, 반려돌을 곁에 두면서 점차 회복이 되었다."

"새로운 직장에서 적응하기 어려웠는데 컴퓨터 앞에 반려돌 삼총사를 뒀다. 삼총사의 응원을 받아 자신감이 생긴다."

"짖지도 않고, 물지도 않고, 털도 안날리고, 산책도 안 시켜도 되고, 가성비 완전 좋은."

이들은 반려돌을 키우는 사람을 '석주(石主)' 라고 부르며, 오픈 채팅방에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눈동자를 그리거나 붙인다. 앙증맞은 니트 모자나 썬글라스 등을 씌워주기도 하고, 정성스럽게 꾸민 둥지 사진을 올리며 반려돌 키우는 일상을 공유한다.

반려돌은 최저 5000원부터 1만5000원까지 대체로 저렴한 가격이며, '반려돌 등록증'에는 이름과 생일, 성별, MBTI, 발견된 곳에 대한 정보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석주'에게는 반려돌은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다. 백일, 이백일을 기념일을 챙기기도 하고, 줄을 매달아 산책을 시키거나 훈련을 시키기도 한다.

외롭지 않지만 외로워서, 고립이 일상이 되는 시대

반려돌 인기가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를 겪으면서부터다. 당시 세븐틴·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등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자신이 기르는 반려돌을 SNS에 공개하며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 SBS 예능 프로그램 '미우새'에서도 배우 임원희가 반려돌을 키우는 모습이 소개되기도 했다.

코로나가 끝났지만, 반려돌 판매량은 계속 늘고 있다

바쁜 일과와 긴 노동시간으로 이제 사람들은 혼자 지내는 것이 더 편하다. 외출하지 않아도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으며,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돈이 많이 들지 않으면서, 혼자 할 수 있는 취미나 활동을 해  나가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대학교 4학년인 준혁씨는 최근에는 플라스틱 앵무새를 키우고 있다. 빗으로 앵무새의 깃털도 빗어주고, 목욕도 시키며 둥지도 청소하며 애정을 쏟는다. 플라스틱 장난감에 불과한 앵무새지만 그에게는 세상에 하나뿐인 '반려새'이다. 그는 반려새를 들인 후로 정서적 안정을 느낀다고 했다.

반려돌의 빛과 그늘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인데, 반려돌은 오히려 영원히 변치 않는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 속 고요함으로 이끄는 말없는 친구, 그래서 사람들은 반려돌을 곁에 두고 싶어하는게 아닐까.

지난 3월 17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반려돌 인기 현상은 한국에서 유행한 '멍때기리 대회'가 생겨난 배경과 유사하다"며 "산업화 국가 중 가장 긴 노동시간을 견디는 한국인들이 휴식을 취하는 특이한 방법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반려돌을 키우는 '석주'가 늘어나는 현상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으며 발생하는 갈등이나 불편함을 피하고 싶으면서도 여전히 누군가와 '소통'을 간절히 바라는 한국인들의 욕구 보여준다"며 꼬집었다.

한보희 인문학자는 "인간은 마음이라는 비신체적(여전히 감각적) 기관을 퇴화시키지 않고 보존해야 인간임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니 반려돌과 대화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는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최전선에서의 몸짓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라며 "반려돌이 아니고선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해갈 수 있는 인간적인 관계나 여건이라고 하는 것들이 보유할 수 없을만큼 비싸지고 멀어졌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려동물도 그렇고, 연인과 친구, 가족 등 체온이 있는 것을 지닐 수 없는 세대의 풍경"이라고 진단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