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러피안 드림, 진보의 한 축이 무너지다 [민경우의 운동권 이야기]

데스크 2024. 5. 14.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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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학생, 미국에 의구심 견지 유러피안 드림 비원
미국, 물질적 부, 문화적 동화, 힘의 우위
유럽, 사회복지, 문화적 다양성, 세력 간 공존
세상을 정직하게 보고 근본적 사상혁신 해야 할 때

현재의 세계가 만들어진 것은 대체로 2010년대이다. 이를 일별해 보면 첫째. 중국의 부상과 미·중 대치 구도의 정립 둘째. 유럽의 몰락과 인도의 부상 그리고 인도·태평양 질서의 정립 셋째. 스마트폰과 AI 혁명 등 새로운 과학기술 혁명과 신세계로의 진입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이 유럽의 몰락이다. 유럽의 몰락이 주는 중요한 함의 중 하나는 거기에 유러피안 드림이라고 하는 한국 진보 진영의 꿈이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위 표는 미국과 EU의 GDP를 보여준다. 2012년 2010년대가 시작될 무렵 미국과 EU의 GDP는 각각 16조 달러, 15조 달러로 비슷했다. 10년 정도가 지난 현재(2023년) 미국은 27조 달러지만 EU의 GDP는 18조 달러에 불과하다. 미국이 11조 달러가 증가하는 사이 EU는 3조 달러가 증가하는 데 그친 것이다. 지금부터 4년 뒤인 28년에는 미국은 5조 달러가 느는 반면 EU는 3조 달러가 느는 데 그쳐 점점 격차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자 미국, 가난한 유럽”(손진석·홍진기)에서는 이를 2010년대 시작된 모바일 혁명 국면에서 유럽이 미국에 뒤처졌기 때문으로 본다. 과학기술에서 나타난 격차는 혁신을 대하는 태도, 교육·금융·이민 등 사회시스템의 근원적인 차이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유럽의 부진과 몰락은 모바일 혁명을 낳고 그것을 만개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한국의 진보 운동권은 은연중 미국과 서방 그리고 소련과 동구권 중에서 소련과 동구권에 비중을 두고 있었다. 1990년대 사회주의권이 몰락한 이후에는 서방 세계를 미국과 유럽으로 갈라보고 유럽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미국의 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쓴 “유러피안 드림”과 이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이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유튜브에는 노무현·유시민 등 진보 인사들이 유러피안 드림에 대해 어떤 생각하고 있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영상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jmWa3fBNpM)

영상에서 유시민 작가는 제레미 리프킨의 책을 소개하면서 미국은 주로 물질적 부, 문화적 동화, 일방적인 힘의 우위 등을 강조하는 반면 유럽은 사회복지, 문화적 다양성, 세력 간 공존을 중시한다고 보고 유러피안 드림이 아메리칸 드림보다 가치가 있고 한국도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운동권의 드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주로 통일·민족주의·유라시아 대륙과 관련된 것이 다른 하나는 연대·공존·생태 복지 등 주로 사민주의·유럽과 관련된 것이다. 노무현·유시민의 유러피안 드림은 운동권 모두의 비전과 전망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201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의 우열은 분명해졌다. 이 우열은 미국이 유럽보다 잘 살고 힘이 세지만 정신적 가치는 유럽이 낫다라는 생각을 넘어서는 것이다. 개인의 물질적인 이익을 중시하고 이를 숭상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사회적 혁신, 복지, 문화와 문명의 건설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미국적 접근이 옳았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물론 미국에도 문제는 많지만 본 글의 취지는 201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을 비교하는 것이 핵심이므로 넘어가기로 하자.)

이는 자유주의·자본주의의 시조쯤으로 불리는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의 통찰에서도 잘 드러난다.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를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안 드림에 비유하자면 미국의 세속적 가치 추구가 미국적 풍요와 문명의 기초를 쌓았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권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운동권 학생들은 미국에 대한 의구심을 견지했다. 그들은 미국 대신 유럽에서 대안을 찾고 여기에 유러피안 드림이라는 비원을 담았다. 그리고 그러한 비원은 노무현을 넘어 문재인-이재명에 이르러 만개하고 있다. 남북화해, 최저임금제, 소득주도성장, 기본소득 등이 그것이다. 이들 정책의 기저에는 1980년대 사회주의, 1990년대 유러피안 드림에서 대안적 이념과 비전을 구하고자 했던 운동권 청년들의 생각이 담겨 있었다.

2010년대 이후의 역사 속에서 유러피안 드림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휴머니즘·인간적·연대와 복지와 같은 그럴듯한 가치가 역설적으로 빈곤과 문명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음울한 결과이다. 1990년대 사회주의 몰락 국면에서 보여주었던 모습과 달리 이번에는 세상을 정직하게 보고 근본적인 사상혁신을 해야 할 때이다.

글/ 민경우 시민단체 길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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