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중 정상회의 자체가 긍정신호…대중무역 적자 계속될 듯" [리샹양 중국 글로벌전략연구원장]

신경진 2024. 5. 1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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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리샹양(李向陽·62) 중국사회과학원 아·태 및 글로벌전략연구원 원장은 ″한국은 물론이고 심지어 일본에 대해서도 비자 면제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중 관계 회복을 막는 각종 오해를 푸는 데에는 인적 교류 회복이 가장 좋은 지름길이라는 이유에서다. 신경진 특파원


리샹양(李向陽ㆍ62) 중국 사회과학원 직속 아ㆍ태 및 글로벌전략연구원(NIIS) 원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달 말 개최가 예상되는 한·중·일 정상회의에 대해 “3국 지도자들에게 이번 회의의 최종 성과는 매우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안정과 발전을 회담의 기본 방향으로 삼야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대표적인 경제 전략가로 불리는 리 원장은 “물론 한 차례 회담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회담 메커니즘이 복원되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신호”라고 덧붙였다.

그는 2009년부터 중국 정부 최대의 싱크탱크인 중국사회과학원의 NIIS 원장을 맡아 당과 정부에 중국의 세계전략을 제공해왔다. 지난 2008년 중국 지도부의 집단학습에서 “중국 경제발전 방식의 전환”을 강연하기도 했다.

리 원장은 지난 9일 베이징 둥청구 NIIS 회의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양국 수교 30년만에 지난해 처음 나타난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 적자가 향후 반전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올해 들어 유럽ㆍ동남아에 대한 무비자 정책을 시행한 중국이 교류 확대 차원에서 한국과 일본에 비자 면제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조태열 외교장관이 13일 베이징을 방문한다.
"양국 관계에 매우 긍정적인 신호다. 한국은 곧 개최될 3국 정상회의의 의장국으로 '셔틀 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삼국 지도자들에게 이번 정상 회의의 최종 성과는 매우 중요하다. 기본 입장에 대한 사전 소통을 통해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차이가 있는 문제는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 2015년 11월 1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일중 정상회의에 앞서 손을 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5년 이후 서울에서 한일중 3국 정상회의가 이달말 9년만에 처음으로 열릴 예정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중국은 이번 정상 회의에서 무엇을 기대하나.
"지난 5년간 동북아 정치·경제·안보 구도는 크게 변화했다. 한·미·일 동맹관계, 인도·태평양 전략, 일본의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3국 안보동맹) 가입이 이뤄졌고, 아시아의 공급 체인이 재편됐다. 한·중, 중·일 양자 관계는 침체에 빠졌다. 수교 이래 최악의 국면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5년 전과 직면한 상황이 다르다. 긍정적 신호도 있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발효됐다. 중국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 희망 의사를 밝혔다. 3국 간 협력의 의지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의미다.
새로운 지역 구도라는 배경 아래에서 안정과 발전을 회담의 기본 방향으로 삼아야 한다. 물론 한 차례 회담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회담 메커니즘이 복원되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신호다."

지난 9일 베이징 둥청구의 아태 및 글로벌전략연구원(NIIS) 회의실에서 리샹양(李向陽·62) 원장이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경진 베이징특파원


-중국은 한국의 총선 결과를 어떻게 보나. 향후 한·중 관계에 끼칠 영향은.
"한국 야당의 승리는 유권자가 집권 여당 정책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민생이다. 최근 서울 출장을 다녀온 동료 학자들은 생필품 가격의 급등을 지적했다. 코로나19 기간 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 정책의 부정적인 결과로 보인다. 선거는 한국 내부의 문제다. 외교에서 한국이 한쪽에 치우쳐 다른 쪽을 견제하기보다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좀 더 균형 잡힌 정책이나 전략을 유지해 나가기를 바라는 게 중국의 기본적인 판단이다."

지난 9일 중국 최고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 산하 리샹양 아태 글로벌전략연구원 원장이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경진 특파원


-올해 1분기 중국 성장률 5.3%는 기대치를 상회했다.
"1분기 성장률 숫자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한 분기 데이터만으로 중국이 변곡점에 도달했다고 판단할 수 없다. 중국 경제의 중장기적 변화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중국 경제는 현재 과거 40여년 간의 구모델과 신모델 사이의 전환기에 서 있다. 전통적인 발전 모델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노동력과 자본을 투입한 성장이다. 그런데 중국은 인구 증가율이 절벽처럼 감소하는 상황이다. 둘째가 수출 주도형 모델인데, 내·외부 압력을 받고 있다. 중국의 경제 규모가 세계 2위로 커지면서 수출 중심 모델은 더는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할 수 없게 됐다. 최근 중국 정부가 수입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유다. 셋째가 부동산 투자를 통한 성장인데, 역시 위기를 맞았다. 주택 구매자의 부채와 지방정부의 부채에 의존한 성장이 문제의 근원이다. 주택 가격의 하락은 국민의 소비 능력을 제한한다. 동시에 토지 판매로 재정 수입의 상당 부분을 조달하던 지방정부의 발전도 제한받고 있다. 많은 이들은 중국이 1980년대 후반 일본형 불황에 직면했다고 말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다. 당시 일본은 전통적인 성장모델의 대안을 찾지 못했다. 중국은 다르다. 국내 소비의 확대, 해외 수입 확대, 혁신을 대표로 하는 새로운 품질의 생산력(신질생산력)이 경제 구조 전환의 엔진이 될 것이다."

지난 9일 중국 최고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 산하 리샹양 아태 글로벌전략연구원 원장이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경제 성장률 5.2%는 위안화 기준이며, 달러 기준으로는 -0.5%라는 지적이 있다. 한·중·일 3국 모두 자국 화폐 절하 폭이 확대되는 등 환율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미국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중국과 미국의 경제 총량을 비교하면 한때 최고치인 70%에 이르렀으나 현재 약 60%에 불과하다. 환율 영향은 객관적 사실이다. 여기에 두 가지 문제점이 놓여있다. 하나는 중국과 미국, 미국과 동아시아 사이에 존재하는 경제 사이클의 비동기성(非同步性)이다.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면서 중·일·한 등 동아시아 경제 모두가 직면하게 된 압력이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부터 지금까지 30여년 발전 과정에서 아시아 경제는 경제 사이클의 비동기성으로 인한 환율 변동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하나는 아시아 경제가 여전히 최종 소비 시장을 갖지 못한 데서 발생한 문제이다. 수출 지향 모델을 없애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시아 경제가 자체 성장 동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중국이 경제발전 모델을 전환한다면 향후 역내에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여건을 마련할 수 있다. 다만 현재 미국과 이자율 차이가 존재하는 한 환율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가 지난해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양국 경제 구조가 상호 보완에서 경쟁 구도로 바뀐 것 아닌가.
"통계를 보면 이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한·중 수교 이후 양국 무역은 일반적으로 한국이 흑자를 보는 패턴이었다. 무역구조 면에서 중국이 한국에서 대량의 장비와 고부가가치의 중간재를 수입하는 게 특징이었다. 기술발전 수준의 차이 때문이었다. 지난 10~15년간 양국 기술과 경쟁력 격차가 줄면서 한국에서 수입하던 중간재가 줄고 있다. 이게 무역수지 역전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중국 내 한국 기업의 동남아 이전이다. 글로벌 산업 체인의 노동 분업 모델이 붕괴하고 있다. 이 추세는 단기적으로 바뀌기 어렵다. 중국 자체 산업 경쟁력이 향상되고 동시에 한국의 산업 이전 추세도 계속되고 있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 150여명이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 명동본점을 방문한 모습. 사진 롯데면세점


-대중국 무역 적자가 고착된다는 이야기인가.
"중국과 한국 사이에 이러한 무역 구조가 원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은 작다. 따라서 중국과 한국은 새로운 협력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 지난 2~3년, 특히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 이후 중국은 새로운 대외개방을 추진해왔다. 한국은 제조업 외에도 여러 면에서 매우 강하다. 전통적인 협력에만 의존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면 관광에서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여행 수요가 매우 크기 때문에, 향후 관광산업 발전이 촉진된다면 한·중 무역의 불균형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양국 싱크탱크가 공동 연구를 통해 두 나라가 협력할 새로운 분야를 찾아야 한다."

-중국은 올해 들어 유럽 5개국, 동남아 등에 무비자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에 적용 가능성도 있나.
"지난해 중국이 일부 국가에 비자 면제를 시행한 뒤로 주중 한국상회를 비롯한 한국과 일본에서 비슷한 문제를 제기해왔다. 주중 한국상회는 중국의 무비자 정책이 한국과 일본에도 적용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물론 이는 중국 외교부, 정부의 결정 사항이다. 학자 입장에서 본다면 앞으로 중국과 한국의 정부·기업·학계·관광 교류가 정상궤도에 오르고, 특히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열린다면, 한국은 물론 일본에 대해서도 비자 면제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과 한국, 중국과 일본 간의 인적 왕래 규모가 무척 크기 때문이다. 3국 간 비즈니스 및 학술 교류, 관광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서 비자 면제는 하나의 추세가 될 것이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는 미·중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과거 일정한 시기 이후 민주당이건 공화당이건 모두 중국을 적대시하고 억제하는 정책을 취했다. 트럼프 정부의 전면적인 디커플링(탈동조화), 바이든 정부의 '선택적 디커플'링 및 '디리스킹(위험제거)'까지 이런 추세를 반영한다. 중·미 관계의 개선은 한 지도자의 당선으로 기대할 수 없다. 변화를 위해서는 사회 각층, 특히 대중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트럼프 당선이 중·미 관계에 미칠 영향을 주목하겠지만, 중국은 중장기적으로 양국 관계 개선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북핵은 한·중 관계의 부정적 요소다. 중국은 한·중 관계와 북·중 관계를 어떻게 양립시킬 것인가.
"북핵 문제를 해결·완화하려면 먼저 남·북 화해가 필요하다. 남북은 문제의 당사자이고 직접 관련 당사국이다. 한반도 양측의 화해가 없다면, 다른 나라의 개입이나 촉진은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없다.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지역 내 강대국 사이의 적극적인 움직임이다. 중국·일본·러시아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한 외적 조건을 제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 바깥의 대국(미국)이 문제에서 빠질 수 없는 역할, 즉 정전 협의에 나서야 한다.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남북 양측과 협력을 강화해 평화를 촉진할 방법을 찾고 있다. 한국과의 협력, 북한과의 협력이 이분법적 관계는 아니다."

☞아태 및 글로벌전략연구원(NIIS)=중국 정부의 최대 싱크탱크인 중국사회과학원(CASS)이 지난 2011년 12월 세계 전략을 지역·부문별로 연구·분석하기 위해 기존 아시아·태평양연구소를 승격해 발족한 학술기구다. 세계경제, 글로벌 거버넌스 및 중국의 국제전략에 관련된 최신 동향과 세계 전략을 당과 국무원에 제공한다. 격월로 학술지 ‘당대아태(當代亞太)’를 발행하며, 해마다 청서(靑書) 형식으로 ‘아시아·태평양 지구 발전 보고서’를 펴내고 있다.

☞리샹양(李向陽·62)=국제 경제와 중국 정치, 금융 분야의 중국 내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중국아태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중앙재경대학에서 학사, 중국사회과학원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 17기 중앙정치국 5차 집단학습에서 중국 경제발전 방식의 전환을 주제로 강연했다. 중국공산당 이론지 '추스(求是)' 기고문 11편을 포함해 100여 편 이상의 저·편서와 논문 등이 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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