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PC방·풋살장이 교회에 다… “얘들아, 놀아도 교회서 놀자”

양민경 2024. 5. 14.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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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사회 홀리 브리지] <7> 용인제일교회
지역주민 8000여명이 참석한 어린이날 행사에서 어린이들이 물놀이하는 모습. 용인제일교회 제공


경기도 용인제일교회(임병선 목사)의 건물 ‘글로리채플’은 ‘교회답지 않은 교회’다. 적색 벽돌로 꾸며진 내부로 들어서면 전면에 계단식 열람석과 서가가 펼쳐진다. 한쪽엔 편의점과 카페, 키즈카페가 연달아 있어 흡사 상업시설 같다. 공간마다 입구에 공간 명칭과 용도를 같이 표기해 교회 성도가 아니더라도 직관적으로 쓰임새를 알 수 있게 배려했다. 어린이뿐 아니라 청소년·청년이 즐겨 찾는 공간도 여럿이다. PC방과 풋살장, 댄싱 스튜디오 및 취·창업준비공간 ‘청춘 개러지’가 대표적이다.

“저희는 다음세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놀아도 교회에서 놀자’고요.” 지난 10일 교회에서 만난 임병선(52) 용인제일교회 목사의 말이다. 다음세대와 지역사회를 염두에 두고 시공한 이 교회 예배당은 2019년 입당 후 지금껏 24시간 개방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임 목사는 이를 다음세대와 지역사회를 위한 ‘몸부림’이라고 불렀다. “아이들이 교회서 게임을 하는 걸 보며 혹자는 ‘교회가 이래도 되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오히려 되묻고 싶습니다. ‘교회가 건물이 아닌 성도 자체라면 건물은 다음세대와 불신자를 위해 파격적 도전을 시도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요.”

3040이 감동한 다음세대 섬김
임병선 용인제일교회 목사가 지난 10일 교회 사역을 소개하고 있다.

다음세대를 위한 교회의 남다른 섬김은 영아기부터 시작된다. 걷지 못하는 12개월 미만 영아를 대상으로 한 ‘글로리베베’다. 육아로 예배에 집중하기 어려운 부모가 이용하는 일종의 ‘아이 돌봄 서비스’다. 보호자가 신청서를 제출한 뒤 예배당 지정 좌석에서 예배하면 봉사자들이 이들의 자녀를 돌보고 긴급 상황 시 보호자에게 연락한다.

글로리베베는 임 목사가 미국 유학 시절 방문한 댈러스주 펠로우십교회의 영아 돌봄 서비스에서 착안했다. 그는 “펠로우십교회에서 처음 아이를 맡기고 드린 예배에서 우리 부부는 펑펑 울었다”고 했다. “오랜만에 예배의 감격을 맛봤고 사역과 육아에 지친 마음이 회복됐기 때문”이다. 임 목사가 “한국으로 돌아오면, 특히 어린 자녀를 둔 3040세대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목회를 해야겠다”고 다짐한 것도 이때쯤이다. 그는 “이들 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건 결국 사회에 기댈 품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이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교회를 만들어가려 지금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다음세대에게 너른 품이 되자는 교회의 노력에 누구보다 먼저 관심을 보인 것도 이들 세대다. 현재 교회 성도 3000여명 중 70% 정도가 3040세대다. 매해 어린이날 전후로 교회를 ‘무료 놀이동산’으로 개조하는 ‘글로리에서 놀자’도 이들과 다음세대를 위한 섬김에서 출발했다. 코로나19 종식 직후 시작한 이 행사는 현재 주민 1만여명이 즐기는 마을 축제가 됐다. 교회 성도 400여명이 봉사자로 나선 지난 4일 행사에는 8000여명이 교회를 찾았다.

기득권 내려놓으니 기적이 보였다
교회 내 ‘이음 계단’에서 열린 버스킹 공연에 청소년과 청장년 성도가 환호하는 모습. 용인제일교회 제공

교회는 현재 영아·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소년부 예배를 2부로 나눠 개설했다. 건물뿐 아니라 교회학교를 찾는 어린이가 늘면서 예배와 부서를 세분화한 것이다. 중등부와 고등부는 청소년부로 통합하고 소극장으로 예배 공간을 옮겼다. 아이돌 가수의 공연과 문화에 익숙한 이들이 양질의 시설에서 맘껏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는 “지금 장년이 쓰는 예배공간과 시간대를 청소년부가 가져가 어른처럼 1~3부 예배를 드렸으면 한다. 장로님들도 흔쾌히 찬성했다”며 웃었다. 이어 “다음세대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면 성경이 죄라고 말하지 않는 한에서 다 하고 싶고, 앞으로도 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임 목사는 자신의 목회 여정과 교회 건축 및 사역 이야기를 담은 책 ‘실행자’(두란노)를 최근 펴냈다. 그가 이 책에서 수차례 강조하는 건 ‘교회의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교회 공간을 전부 다음세대와 지역사회에 환원한 것도 교회 구성원이 자기 기득권을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임 목사의 주장이다. 이례적으로 예배당 본당에 초대형 발광다이오드(LED) 화면을 설치한 것도, 교회를 24시간 개방하고 교회 반경 10리(4㎞)의 사회 약자를 돕는 ‘십리프로젝트’를 3년 전부터 꾸준히 진행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어 가능했다.

교회는 콜센터도 운영 중이다. 우울증으로 자살 충동을 겪는 이웃의 애환을 들어주는 사역으로 이를 위해 부교역자가 매일 전화 당직을 선다. 전화가 오면 봉사자나 사역자, 상담자가 발신자를 찾아가 이들의 사연을 들어준다. ‘우울증을 겪는 부모의 곁에 있어 달라’는 한 청소년 성도의 요청을 받아 출동한 사연을 전하던 그는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임 목사는 “꾸준히 섬기다 보면 하나님이 누군가를 도울 기회를 반드시 주신다”며 “하나님의 기적에 동참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다음세대 사역을 준비하는 교회를 향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임 목사는 “기득권도 은혜를 받아야 내려놓을 수 있다”며 “다음세대와 이웃 사랑에 대한 사명을 예배로 일깨우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정답은 아니다. 그저 한국교회와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몸부림칠 뿐”이라며 “우리의 시도를 딛고 새 길을 만들어가는 교회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용인=글·사진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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