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우 칼럼] 바이든과 미국, 문제는 ‘이스라엘 로비’다

배병우 2024. 5. 14. 00:5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대계 미국인의 막강한 로비
미 외교정책 왜곡… 이스라엘
국익과 미 국익 혼동케 해

‘이’ 전쟁 범죄로 인권·국제법 강조
미 소프트파워 붕괴 위기
바이든 재선에도 빨간불

우크라전으로 중·러 밀착 이어
이젠 미의 가장 특별한 동맹이
미국이 만든 질서 파괴자 돼

국제정치학 이론에는 대조적인 두 흐름이 있다. 현실주의와 자유주의다. 현실주의는 국가 간 경쟁이나 갈등을, 자유주의는 협력을 강조한다. 겉으로는 국제법과 규범, 도덕적 권위가 지배적으로 보이지만 실제 국제질서는 국가 간 냉혹한 다툼이 본질인 무정부 상태라는 게 현실주의의 시각이다.

인간 본성과 세계에 대한 비관론에 서 있는 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학자가 존 미어샤이머 미 시카고대 교수다.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추진한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주장해 논란이 됐다. 러시아 세력권이자 서유럽과 러시아 간 마지막 완충지대인 우크라이나로까지 나토를 확장하려는 서방의 과욕이 러시아의 반작용을 불렀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승리로 끝나는 듯했던 전쟁은 장기 소모전으로 굳어졌다. 미어샤이머의 진단과 예측을 재평가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전쟁에서도 미어샤이머를 소환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스라엘의 무차별적 가자지구 공격에 3만5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 그중 40% 이상이 어린이다.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라는 지탄이 나오는데도 미국은 고화력 첨단무기를 이스라엘에 넘겨주고 있다. 인권과 국제법을 강조해온 미국의 위선과 이중성이 이번처럼 백일하에 드러난 적은 없었다.

이 시점에서 상기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 미어샤이머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스티븐 월트 교수가 2007년에 쓴 ‘이스라엘 로비와 미국 외교정책’이다. 책에는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을 묘사하면서 ‘무조건적’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1973년 4차 중동전쟁 이후 본격화된 미국의 경제·군사 원조는 2003년까지만 1400억 달러(약 192조원)에 이른다. 이후 매년 군사 원조 35억 달러를 비롯해 규모는 더 늘어나는 추세다. 이스라엘이 2022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 5만4000달러가 넘는 부국이자 명실상부한 중동 최고 군사 강국인데도 그렇다.

이런 특별 대우는 이스라엘이 미국에 그만큼 전략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인가. 결코 아니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미국에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오히려 부담이다. 이는 1990~91년 제1차 걸프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도 참가한 ‘반이라크 연합군’을 유지하기 위해 이스라엘 군사기지를 사용할 수 없었다. 오히려 패트리엇 방공미사일 등 군사자원을 이스라엘에 배치해 혹시 있을 이라크의 공격을 막아줘야 했다.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이스라엘이 테러리즘 의 공격 대상이라는 ‘같은 배’를 탔으니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는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것이다. 미국이 테러리즘의 과녁이 된 것은 상당 부분 이스라엘을 과도하게 지원했기 때문이다. 이는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을 과녁으로 삼은 이유를 팔레스타인을 억압하는 이스라엘을 지원했기 때문이라고 한 데서 잘 드러난다.

수많은 사례와 연구가 이스라엘에 대한 ‘묻지 마’ 지원이 미국 국익과 명백히 배치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그런데도 비정상이 계속되는 것은 유대계 미국인 로비단체와 친이스라엘 종교인 로비의 힘이다. ‘이스라엘 로비’가 미 의회, 행정부, 학계, 언론계를 장악해 이스라엘 문제에 관한 토론 자체를 금기로 만드는 과정을 저자들은 차근차근 입증한다.

미어샤이머는 책에서 ‘이스라엘 로비가 강력한 힘을 유지할지라도 그 역효과는 갈수록 숨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예언은 현실이 됐다. 역효과의 1차 희생양이 미국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라는 점도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제어하기는커녕 무기력하게 끌려다닌 바이든의 대선가도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마국은 우크라이나전으로 미 전략가들이 가장 경계해온 중국과 러시아의 결속을 이미 허용했다. 가자 전쟁으로 중동과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권위와 영향력은 더 축소될 공산이 커졌다. 무엇보다 미국적 가치의 이중성이 드러나면서 연성권력의 근원인 정당성이 훼손된 게 뼈아프다. 네타냐후가 전범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을 받을 위기에 처한 게 모든 걸 말해준다. 러시아의 푸틴과 같은 혐의다. 남 탓 할 수도 없다. 미국의 가장 특별한 동맹, 미국이 키운 동맹이 미국이 만든 질서의 파괴자가 됐기에.

배병우 수석논설위원 bwba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