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목의 시선] 가황 나훈아의 진정한 라스트 콘서트

정현목 2024. 5. 14.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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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목 문화부장

나훈아 공연 때면 기자들도 예외가 없다. 피켓팅(피가 튈 정도로 치열한 티켓팅)을 해야 한다. 기자석을 제공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가수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인천 송도 공연 때는 경쟁이 더 치열했다. 올 초 은퇴 선언 이후 발표한 마지막 콘서트 투어의 첫 무대였기 때문이다. 나훈아가 기자석을 제공하지 않는 건, 언론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탓도 있다는 생각이다.

「 마지막 콘서트 투어 완판 행렬 중
한편의 영화 같던 가수인생 마감
4년 전 방송공연 감동 재연됐으면

2008년 1월 나훈아 기자회견은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기자회견보다 더 ‘대박’ 사건이었다. 일본 폭력조직에 의한 신체훼손설이 확산되자, 그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700여 명의 취재진 앞에서 그는 “보여줘야 믿겠냐”는 말과 함께 단상에 올라 바지 벨트를 풀면서 “(루머를) 받아쓰는 여러분 기자들 책임도 크다”고 일갈했다. 당시 모든 기자들이 고개를 숙인 채 애꿎은 노트북 자판만 두들기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나훈아를 독대했을 때 “호랑이와 마주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는 후배 기자의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이후 그는 언론과의 접촉을 일절 하지 않았다.

‘독고다이 호랑이’. 나훈아의 삶이 그랬다. 1972년 무대에서 괴한들에게 습격당해 얼굴에 중상을 입고도 굴하지 않았다. ‘울긴 왜 울어’ ‘잡초’ ‘무시로’ ‘영영’ ‘홍시’ ‘테스형!’ 등 수많은 자작곡으로 고향과 마음의 안식처를 잃은 사람들을 위로해줬다. 그의 노래는 어머니가 지어주는 따뜻한 밥상 같았다.

왕성한 창작열은 견줄 만한 사람이 없다. 200여 장의 앨범을 발매하고 2600여 곡을 녹음했는데, 자작곡이 800여 곡에 달한다. 후배 가수 강진에게 ‘땡벌’같은 메가히트곡을 주고도 생색 한번 내지 않았다.

1982년 배우 김지미와 헤어지며 “남자는 돈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여자는 돈 없으면 살 수 없다”며 전 재산을 위자료로 건넸다. 후에 김지미가 “나훈아만큼 남자다운 사람 없다”고 평할 만큼 상남자다운 배포였다.

재벌 회장의 초청에는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티켓을 사서 공연장으로 오라”는 ‘관객 평등주의’를 내세워 거절했다. 신념을 토로할 땐 거침 없었다. 1996년 일본 공연 때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말해 일본 우익의 협박을 받았지만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서슬 퍼런 5공 시절, 광주민주화운동의 아픔을 담은 노래 ‘엄니’를 발표해 고초를 겪기도 했다.

정치계 입문 권유도,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초청도 거절했던 그는 이번 공연에선 “정치인들 짓거리가 성질 나서 뉴스도 안 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수칠 때 떠난다”는 은퇴의 변도 군더더기 없었다. “흐를 류(流)에 행할 행(行), 노래 가(歌), 유행가 가수가 뭐로 남는다는 거 자체가 웃기는 얘기다”라는 평소 지론에 걸맞은 퇴장이다.

이처럼 그의 가수 인생은 한 편의 영화 같다. 한 유명 감독은 필자에게 “가장 만들고 싶은 영화는 나훈아와 남진 영화”라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1970년대 가요계를 양분했던 두 라이벌 스토리에는 영호남 갈등, 나훈아 피습 음모론, 세기의 결혼 등 드라마 같은 요소들이 녹아있다.

그에게 “나훈아를 어렵게 만난다 해도 영화화를 설득하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지금 왜 그 시절을 소환해야 하는지 ‘명분’을 제시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흥미 위주의 라이벌 구도가 아닌, 정치가 또다시 국민을 분열시켜선 안 된다는 메시지가 담겨야 그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열리지 않겠냐는 뜻이었다.

코로나 시기인 2020년 KBS가 추석 특집으로 나훈아 공연을 방영한 적이 있다. 좀처럼 보기 힘든 나훈아 공연을 ‘보편적’으로 즐길 수 있었던 선물 같은 공연이었다. 팬데믹에 지친 국민의 마음을 위로해준 의미 또한 컸다.

그 공연을 보며 나름 뿌듯했던 건, 공연 1년 전에 나훈아 공연을 영상으로나마 접할 수 있게 해달라는 편지 형식의 기사를 썼기 때문이었다. 죽기 전에 나훈아 공연 보는 게 소원이라는 어르신들, 피켓팅에 실패하는 수많은 불효자를 위해 ‘결단’을 내려 달라는 취지였다. 공연관계자로부터 “나훈아가 그 기사를 봤을 것”이란 말을 듣긴 했지만, 그 기사가 KBS 공연에 영향을 줬는지 알 도리가 없을뿐더러, 아니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나훈아 또한 자신의 공연이 전파를 통해 전국 방방곡곡에 전달된다는 것의 의미와 명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년 한가위에 ‘가황 나훈아’를 보편적으로 누릴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지면 좋겠다. 아직은 그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지 못한 수많은 팬, 세상살이에 지친 국민을 위한 ‘테스형’의 진정한 라스트 콘서트가 되지 않을까.

정현목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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