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누드 찍으라는 엄마…KBS 드라마에 TV 끕니다

어환희 2024. 5. 1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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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만 해도 시청률 30%를 곧잘 넘기던 KBS 주말드라마는 요즘 시청률 10%대를 전전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부터 방영 중인 KBS 2TV 주말드라마 ‘미녀와 순정남’. 패륜적 부모·선정적 소재·기억 상실 등 자극적인 ‘막장’ 설정으로 비판받고 있다. [사진 KBS]

도박에 빠진 어머니의 빚을 떠안게 된 여성 톱배우가 한순간에 전 재산을 잃고 빚쟁이들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런데 정작 그의 어머니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딸에게 누드 촬영을 권유하고, 돈 많은 남자와 약혼하라고 종용한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딸은 스스로 바다에 뛰어드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이후 기억을 모두 잃은 채 어촌 마을에서 살아간다.

KBS 2TV 주말드라마 ‘미녀와 순정남’의 최근 전개다. 패륜적 부모, 낯 뜨거운 선정적 장면, 기억상실 등 자극적인 ‘막장’ 설정들로 점철돼 있다. 여기에 시대착오적 대사들까지 더해지며,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지난 3월 15.3%(닐슨, 전국)로 시작한 ‘미녀와 순정남’ 시청률은 10%대에서 오르락내리락 중이다. 지금까지 최고 시청률은 18.3%.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여주인공이 기억을 잃은 채 등장한 16회 방송분(12일 방영)의 기록이다.

중장년층을 붙박이 시청자로 보유한 KBS 주말드라마는 2021년 ‘신사와 아가씨’까지 줄곧 최고시청률 30%를 넘겼다. 최고시청률 기준으로 ‘한 번 다녀왔습니다’(2020)는 37.0%, ‘하나뿐인 내편’(2018)은 49.4%, ‘황금빛 내 인생’(2017)은 45.1%를 기록했다. ‘신사와 아가씨’는 ‘미녀와 순정남’과 동일한 작가(김사경)와 주연 배우(지현우)가 참여해 38.2%를 찍은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시청률은 꾸준히 하락해 10%대를 전전하고 있다. ‘미녀와 순정남’의 전작 ‘효심이네 각자도생’도 평균시청률 17.7%, 최고시청률 22.1%에 그쳤다. 최고시청률 24.9%를 기록하며 지난달 종영한 tvN 주말 드라마 ‘눈물의 여왕’ 등 비슷한 시간대의 타 채널 드라마와의 경쟁에서도 밀리는 모양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유튜브, 넷플릭스 등의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더 이상 젊은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충성도 높았던 중장년층에게 볼거리들은 늘어나는데, 주말 드라마는 자기혁신 없이 퇴행하는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KBS 주말드라마가 중장년 시청자를 만만한 ‘집토끼’로 보고, 이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킬 만한 혁신을 게을리했다는 것이다.

‘콘크리트 시청층’이 무너진 데는 안일한 기획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윤 교수는 “고령화·저출산, 1인 가족 등 사회가 변하면서 가족 형태가 다양해졌지만, KBS 주말드라마는 옛날 대가족이라는 틀 안에서만 사유한다”고 지적했다. “시대정신에 맞는 가족 담론과 삶의 소소한 부분을 발굴해 드라마 안에서 이를 제안하고 답을 찾아가는 기획을 해야 하는데, 이런 노력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누구나 공감할 만한 현실적 고민, 새로운 가족 형태 등 시대 흐름을 반영한 작품들이 호평받았다. 고부 갈등을 새로운 시각에서 풀어낸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 최고시청률 45.3%), 아버지와 딸의 복잡미묘한 갈등이 바탕이 된 ‘내 딸 서영이’(2012, 최고시청률 47.6%) 등이다. 이후 시대는 빠르게 바뀌어가고 있지만, KBS 주말드라마는 오히려 퇴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미녀와 순정남’에서는 자신이 집착하는 여주인공을 감금하는 남성이 나오고, 어릴 때부터 딸을 가스라이팅하며 사실상 학대하는 어머니도 등장한다. “나, 네 아버지 첩이고 세컨드야” “난 네가 못 낳은 아들을 낳은 여자야” 등 시대 착오적인 대사들이 반복해서 전파를 탄다.

이에 대해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무난한 소재로는 반응을 끌어내지 못한다는 불안감, 그리고 자극적인 드라마 유행을 따라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 결과로 보인다”면서 “문제는 이러한 과격한 설정이 젊은 층을 끌어당기지 못하는 것은 물론 기존 주말 드라마 시청층에겐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OTT 콘텐트 등으로 인해 눈이 높아진 시청자를 잡기 위해선 세트장·오디오 등 형식적 요소에도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몇개의 제한된 세트장에서만 촬영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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