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도시락에 그림 그리는 여자입니다

임경화 2024. 5. 1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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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좋은 도시락이 맛도 좋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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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화 기자]

 동네 작은 도시락전문점을 운영중이다.
ⓒ 임경화
 
나는 자영업 17년 차, 동네에서 작은 도시락전문점을 운영 중이다. 나의 오늘 하루는 어제부터 시작된다. 

내일 날씨는 어떨지 , 메인 요리는 무엇으로 할지, 식재료와 양념은 무엇이 필요할지 미리 계획을 세워둔다. 오전 6시, 알람이 울리면 피곤 가운데에서 열심히 휴식하고 재생된 몸을 일으키며 쭈욱 기지개를 켠다. 

5월은 어느새 새벽이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오전 6시에 이미 온 세상이 환하다. 차에 시동을 켜고 잠깐 다시 눈을 붙이고 기도를 한다. 오늘도 행복이 묻어나는 하루이길. 팍팍한 일상이라도 맛있는 밥을 먹으며 새 힘을 얻을 수 있기를~ 

새벽시장은 부지런한 사람들이 가득한 딴 세상이다. 오늘의 주요리는 순대볶음과 근대된장국이다. 먼저 순대를 구입하고 순대와 어우러질 양배와 대파 그리고 매콤을 담당할 청양고추 그리고 산뜻한 향과 고기비린내를 잡아줄 깻순을 고른다. 그리고 매콤한 순대볶음과 어울리는 된장국에 넣을 싱싱한 근대를 박스로 구입한다. 이제 밑반찬을 구입할 차례다. 

잘 익은 배추김치는 필수다. 빨간색 옆에 미역줄기볶음, 그리고 초록옆에는 노란 어묵볶음, 그리고 오늘은 숙주나물. 숙주에 선홍색이 들어간 맛살을 뜯어서 섞어봐야지. 여기에 더해, 단백질을 보충해 줄 계란 추가.

특란으로 세일하는 가게를 찾아서 구입했다. 야채는 요즘 너무 비싸져서 양배추며 대파며 새벽시장에 와야 그나마 싱싱하고 싸게 살 수 있어 좋다. 돌아올 때는 라디오 볼륨을 높이고 뉴스를 듣거나 아침클래식을 즐긴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바뀌고 있는 가로수 이파리가 아침햇살에 눈이 부시다. 일찍부터 움직였더니 슬슬 허기가 느껴진다. 

가게로 돌아오니 남편의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창문들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고 뜨거운 물을 끓여, 식기며 도마를 소독해 놓았다. 쌀도 미리 씻어 불려 놓았고 가게 가득 좋은 음악으로 채워놓았다. 오늘은 뜨거운 커피에 샌드위치가 아침이다.

남편과 오늘의 메뉴와 요리순서를 공유하고 잠깐의 휴식 후 일을 시작한다. 

미리 익혀놓은 배추김치를 가지런히 썰고, 미역줄기의 짠기를 빼기 위해 살짝 삶는다. 평소엔 백미에 흑미를 조금 섞어서 구수함과 영양을 생각했다면 오늘은 메인이 짙은 색이다 보니 노란색 차조가 더 어울리겠다 싶어 미리 씻어 불린다. 숙주부터 삶아 건져서 소금 솔솔 뿌려 물 빠지게 받쳐놓고, 맛살을 길쭉하게 썰어서 함께 조물조물 무친다.

그동안 삶아진 미역줄기는 큼직한 볶음솥에 볶아야 제맛이 난다. 채 썬 양파와 마늘을 향이 나도록 먼저 볶은 다음 미역줄기를 섞어 볶아내고 후추와 참기름 깨소금으로 마무리한다. 그리고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국민반찬 어묵볶음은 노란 계열 숙주나물과 겹치지 않게 고춧가루를 뿌려서 붉은 기를 더해서 만들었다. 

오전 10시쯤이면 주문전화가 울리기 시작한다. 어떨 때는 9시 조금 넘어 전화가 오기도 하는데, 직장생활에 있어 점심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 같다.

밥 먹을 생각에 힘을 얻어 아침근무를 하는 이를 위해 밥솥에 가스를 켜고 된장국 준비를 한다. 국물맛이 좋아지도록 거름망에 다시 멸치와 다시마를 넣어 담가놓고 된장을 푼다. 고춧가루와 청양고추로 알싸함을 더하고 근대를 먹기 좋게 잘라서 씻은 다음 팔팔 끓어오르면 솥에 넣고 익혀준다. 

이제부터는 나의 주특기인 도시락에 그림 그리는 시간이다. 빨간색 김치 옆에 미역줄기볶음 그리고 맛살로 포인트를 준 숙주나물 옆에 어묵볶음을 차례로 담아 놓는다. 한 번에 4개씩 부쳐지는 계란전용 프라이팬을 올리면 밥 냄새가 구수하게 나면서 뜸이 든다. 그리고 재빠르게 메인요리를 만들 차례다.

순대는 찜솥에서 미리 찌고 남편이 먹기 좋게 썰어놓을 동안 나는 야채를 다듬고 씻는다. 먼저 파기름을 내고 양념으로 야채를 살짝 볶은 다음 순대를 넣어 고루 섞고 깻순은 숨이 너무 죽지 않게 재빠르게 볶은 후 참기름과 들깨가루를 듬뿍 넣어 맛을 낸다. 그리고 색깔이 너무 어둡지 않도록 빨강노랑 파프리카를 채 썰어 모양을 내고 초록색 대파를 올리 다음 깨소금을 뿌려 놓는다.

밥이 가장 맛있어 보인다는 붉은 계열의 칠기도시락에 반찬들과 메인요리를 담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담은 다음 도시락 뚜껑을 닫는다. 이제 감칠맛이 우러나온 근대 된장국을 국용기에 담고 배달통에 넣으면 배달준비 끝이다.

도시락을 만들기 위해 새벽부터 분주히 움직여 도시락이 완성되면 힘들고 피곤하기도 하지만 꽤 성취감도 누린다. 밥을 먹인다는 의미는 누군가를 살게 하는 것이라고 내 직업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이다. 

오늘 이 도시락을 먹는 이들이 눈으로 먼저 만족하고 배부르기를, 한 끼 도시락으로 행복한 순간에 다다르기를 바라며 바란다. 오늘도 나는 도시락에 맘껏 그림을 그렸다. 덕분에 나도 행복해졌다. 누군가 내가 만든 도시락을 먹으며 맘껏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우리집 가게 이름은 '행복한 만찬'이다.
 
 오늘은 순대볶음 도시락과 된장국
ⓒ 임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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