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성이 심해지는 환율…조기경보체제 운용해야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2024. 5. 13.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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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외환역사상 세 번째로 1,350원선을 넘어선 원·달러 환율이 이달 들어서는 변동성이 유난히 심해져 앞날을 예측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수준 자체는 ‘킹달러’, ‘갓달러’라는 용어가 나왔던 2022년 11월 이후 여전히 높다. 과연 원·달러 환율이 외국인 자금이탈과 악순환 고리가 예상되는 1,400원을 넘을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각종 금융변수는 해당 국가의 ‘머큐리(mercury·펀더멘털)’와 마스(mars·정책) 요인을 고려해 예측한다. 하지만 통화교환비율인 환율은 상대국의 양대 요인, 이를테면 원·달러 환율의 경우 미국의 머큐리와 마스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 두 요인이 충돌될 때는 머큐리 요인을 중시해 환율을 예측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우려되는 것은 연초 예측기관이 발표한 환율 자료를 보면 미국의 마스 요인에만 치중해 달러 가치가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 점이다. 지난해 12월 점도표와 제롬 파월 Fed 의장의 기자회견을 감안하면 올해 미국의 기준금리는 최대 여섯 차례까지 내릴 것으로 예상됐다. 일부 예측기관은 Fed의 금리 인하가 본격화되는 올해 하반기에는 달러인덱스 80, 엔·달러 환율 125엔, 원·달러 환율 1,200원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지난 3월 이후 과도한 금리 인하 기대에 따른 ‘숙취(hangover)’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Fed의 1선 목표인 물가지표에 헤드 페이크 현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3.4%로 한 달 전 3.2%보다 높게 나오자 지난 3월에서 5월로 넘어온 금리인하 시기가 여름 휴가철 이후로 넘어가고 있다.

머큐리 요인에 있어서도 과도한 금리 인하 기대는 이해되지 않는다.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은 2%대 후반으로 예상돼 달러인덱스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질적으로도 완전고용하에 물가가 통제되고 연착륙이 가능해 달러인덱스 구성국가에 비해 가장 건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마스 요인도 금리를 크게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Fed의 통화정책 잣대가 되는 근원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목표치에 비해 높은 여건에서 금리를 과도하게 내리면 ‘볼커의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볼커의 실수란 1980년대 초 당시 폴 볼커 Fed 의장이 물가가 다 잡히기 전에 금리를 내려 다시 오른 현상을 말한다.

최근 대내외 환율변수는 1년 5개월 전과 너무나 유사하다. 원·달러 환율뿐만 아니라 양대 대외환율변수인 달러인덱스와 위안화 환율은 각각 105대, 7.1위안대로 같다. 오히려 코스피 지수는 올해 초에 비해 더 올라 일부 경제 각료가 국내 금융시장은 문제가 없다는 자화자찬에 귀가 솔깃할 만큼 외형상으로는 착각을 들게 할 정도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난 1년 5개월 동안 외국인 자금은 추세적으로 들어온 반면 내국인 자금은 밖으로 나갔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대책이 나온 지난 1월 중순 이후에는 외국인 자금 유입액과 내국인 자금 이탈액이 거의 일치한다. 국내 금융시장에 손님은 들어오고 주인은 나가는 자본 공동화와 함께 윔블던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

<그림 1> 외국인 주식 순매수와 보유비중 추이

윔블던 현상이 심했던 외환위기 때와 다른 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 1990년대 후반에는 해외 부동산 투자는 국내 기업과 금융사의 해외점포 마련 등을 위한 실수요 이외에는 없었다. 개인의 해외주식 투자는 생각지도 못했던 때였다. 최근처럼 자본의 공동화가 수반되지 않고 외국인 자금이 들어오는 여부에 따라 윔블던 현상이 나타났다.

윔블던 현상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순기능으로는 △금융서비스 개선 △금융 제도 및 감독 기능 선진화 △대외신인도 제고 등을 꼽는다. 영국의 경우 1986년 금융 빅뱅을 단행한 이후 초기 단계에서 역기능이 우려됐으나 시간이 갈수록 순기능이 나타나면서 국제금융시장의 중심지로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포트폴리오의 위상이 선진국인 영국과 달리 우리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 상으로 신흥국으로 떨어진 지 10년이 됐다. 최근에 윔블던 현상이 무서운 것은 포트폴리오상 지위가 신흥국이면서 자본의 공동화까지 수반돼 역기능이 가장 심하게 나타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했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되는 역기능은 서든 스톱, 즉 잘 들어오던 외국인 자금이 갑작스럽게 중단되고 곧바로 유출되는 현상이다. 최근처럼 국제간 자금흐름이 각종 캐리 트레이드 자금에 의해 주도가 되는 여건에서는 우리 주가와 경기 향방, 그리고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설 것인가는 서든 스톱 발생 여부와 현 정부의 대응에 따라 좌우될 확률이 높다.

현시점에서 우리 외환당국이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을 돌려놓는 역행적 시장개입을 하지 않는 한 외국인 자금의 ‘서든 스톱’이 발생한 확률은 낮다. 하지만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면 될수록 주가 저평가 정도와 환차익 소지가 감소돼 이미 고수익을 얻는 스마트성 외국인 자금이 차익을 실현해 선도적으로 이탈될 소지도 만만치 않다.

국내 금융시장을 유일하게 받쳐주고 있는 외국인 자금이 이탈세로 돌아서면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면서 갑자기 대혼란에 빠지는 ‘싱크홀형 푹꺼짐 위기’가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정책당국자는 손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조기경보체제(EWS)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부터 검토하고 선제적 위기방지책을 강구해 놓아야 할 때다.

과거 위기 발생국의 공통적인 경로를 토대로 EWS 운용을 권유해 본다면 크레딧 디폴트 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올라가기 시작하면 그것이 ‘거짓신호’ 여부와 관계없이 ‘경고Ⅰ(파란불)’, 그 후 조건 1) CDS 프리미엄이 장기평균치에서 표준편차의 2배로 급등하고 조건 2) 외국인 자금 순유입이 줄어들면서 조건 3) 환율 변동이 심하거나 상승세를 보이면 ‘경고Ⅱ(파란불->노란불)’ 단계로 외화보유 여부 등을 점검해 놓아야 한다.

상황이 더 악화돼 조건 1) CDS 프리미엄이 장기평균치에서 표준편차의 4배로 급등하고 조건 2) 외국인 순유입 규모가 장기평균치에서 2배 이상 감소하거나 곧바로 순유출세로 바뀌고 조건 3) 환율이 급등세로 돌아서면 ‘경고Ⅲ(노란불->주황불)’, 그 후 조건 1) 통화 절하폭이 직전년도에 비해 10% 포인트 이상 확대되고 조건 2) 외환보유액이 감소하면서 조건 3)실물경기 침체가 본격화되면 ‘경고Ⅳ(주황불->빨간불)’로 EWS를 운영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경고 Ⅲ’ 단계에 가면 그때서야 국민들이 ‘경제가 잘못되고 있구나’ 하는 위기감을 느낀다. 그런 만큼 늦어도 ‘경고 Ⅱ’ 정도에서만 이를 알아낼 수 있다면 사회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EWS는 예비적인 성격이 강하고 위기가 발생하면 엄청난 비용과 고통, 위기를 극복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낙인효과가 따르는 점을 감안하면 이를 운영하더라도 신속하게 운용해야 한다.

그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계묘년(癸卯年)이 저물고 청룡의 해인 갑자년(甲辰年)이 시작된 지도 4개월이 지났다. 엔데믹 시대의 실질적인 첫해를 맞아 지난 4개월 동안 세계 경제 움직임을 보면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기보다 또다른 디스토피아 문제와 숨막히게 치러지고 있는 76개국 선거에 따른 포퓰리즘 만연으로 어려움이 닥치고 있다.

슈퍼 엘리뇨 발생 2년 차를 맞아 연초부터 이상기후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고 있다. 지구 기온의 최후 보루인 남극의 온도가 38도를 넘어 전 세계를 바짝 긴장시켰다. 지난해 대(大?great)라는 접두어를 한 단계 격상시켜 ‘초(超?hyper)’자를 붙여도 부족할 정도다. 기후목표 1.5도가 뚫리는 첫해가 될 수 있다는 예상이 적중할 확률이 높아졌다.

지경학적 위험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최근처럼 안보와 경제 간 분리가 어려울 때는 지정학적 위험보다 지경학적 위험이 더 중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이스라엘과 이란 전쟁, 그리고 한국이 속한 동북아 지역, 인도의 부상으로 중국과 국경 분쟁이 재현되고 있는 남부 아시아에서 지경학적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그림 2> 세계 경제 성장률과 세계교역 증가율 추이

각종 선거가 많이 잡혀있는 올해는 정치적 거버넌스 문제가 세계와 각국 경제에 의외로 큰 복병이 되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체제와 관계없이 최고통수권자의 장기집권 야망까지 겹치면서 갈수록 이 문제가 국수주의로 흐르고 있어 4.10 총선에서 ‘여소야대’의 구도가 더 강화된 우리에게는 체감적으로 와닿는 지적이다.

미국과 중국 간 관계에도 변화 조짐이 일고 있다. 지난해 5월 비슷한 시기에 열렸던 선진 7개국(G7) 정상회담과 중국?중앙아시아 간 정상회담을 계기로 세계경제질서가 두 회담을 주도했던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되던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축소)‘ 기대가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으로 퇴보할 기류가 조성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통상환경도 국가 간 관세와 비관세 장벽 철폐를 통해 시장개방을 추구하는 WTO(세계무역기구)와 FTA(자유무역협정)보다 유사 입장국(like minded country) 간에 협력과 연대에 맞추는 TIPF(무역 투자 촉진 프레임워크)나 EPA(경제동반자협정)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되고 있어 앞으로 더 빠른 속도로 진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WTO나 FTA는 협상 과정이 수년이 걸리고 입법기관의 비준을 거쳐야 한다. 정치적 거버넌스 문제가 심한 국가는 영원히 안될 수 있다. 반면에 TIPF나 EPA는 이상기후, 공급망 확보, 디지털 전환, 난민, 마약 등과 같은 다양한 이슈를 다를 수 있고 입법기관의 비준과 관계없이 행정부 차원에서 손쉽게 맺을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인구절벽과 각국의 출산장려 운동도 주목해야 한다. “세계 인구는 20세기 이후 120년 동안 지속돼온 팽창시대가 마무리되고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인구통계학적 변화가 앞으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커다란 변화(big change)를 몰고 올 것”이라는 보고서가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 세계 인구절벽 논쟁에 중심에 서 있는 국가가 중국과 한국이다. 3년 전 중국의 인구센서스 통계 발표를 앞두고 영국의 경제 전문지인 파이낸셜 타임스(FT)가 “중국 인구가 감소됐다”는 보도에 중국 정부는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해오고 있지만 지난 3월에 열렸던 양회 대회에서 중국 정부가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우려할 정도로 사실로 드러났다.

한국의 저출산에 대한 뉴욕 타임스(NYT)의 경고는 충격적이었다. 한마디로 ‘한국의 출산율은 14세기 흑사병 때를 연상시킨다”는 것이 요지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의 출산율은 0.78명으로 세계 모든 국가 중에서 홍콩을 제외하고 가장 낮다. 그런 만큼 빠른 시일 안에 개선되지 않으면 한국 경제가 사라질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여져 있다.

세계 산업계, 인공지능(AI) 시대가 전개됐다.

매년 1월에는 그해 세계 경제와 경제정책이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를 알 수 있는 3대 국제행사가 열린다. 경제정책에 초점을 맞춘 전미경제학회, 세계 산업 추세를 읽을 수 있는 국제전자제품 박람회(CES), 그리고 경제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변화를 조망할 수 있는 세계경제포럼(일명 다보스 포럼)이다.

올해는 3대 행사 모두 인공지능(AI)을 다뤘다는 것이 종전과 다른 점이다. 2차 대전 이후 논의되기 시작했던 AI가 1년 전 챗GPT로 우리에게 다가오기까지 의외로 잠잠했다. 산업발전단계 상 엄동설한에 푸른 싹이 돋기 시작한 단계(green shoot)인 AI가 윤리적 문제에 봉착해 시든 잡초(yellow weed)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1년 만에 모든 산업 중 가장 빨리 화려하게 꽃(golden goal)을 피우고 있다.

최근처럼 세계 경제가 어려울 때는 신기술이 출회하면서 위기 극복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1990년대 들어 일본발 위기론이 확산됐을 당시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기술(IT)이 꽃을 피면서 세계 경제를 구해냈다.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IT가 주도산업으로 자리잡으면서 종전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고성장?저물가의 신경제 신화를 낳았다.

디지털에 이어 AI가 주도산업으로 부각되면서 1990년대 후반과 같은 신경제 시대가 올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높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1990년대 신경제 이상의 신화가 닥칠 것이라는 시각이 만만치 않다. AI가 가장 빨리 진전되고 있는 미국에서는 월가를 중심으로 골디락스를 넘어 고성장과 고물가가 공존하는 ‘붐 플레이션(boom flation)’ 기대도 강하다.

AI발 변화를 가장 빨리 체감할 수 있는 곳이 고용시장이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중국을 비롯한 저임의 저개발국 노동력 공급이 더이상 안되는 루이스 전환점이 앞당겨져 주요국 자체 노동시장에서 저소득층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코로나 지원금에 따른 자발적 실업인 코브라 효과까지 겹쳐 저소득층의 임금은 빠르게 상승했다.

올해는 디지털 고도화까지 이루어지면서 구조조정 대상이 바뀌고 있다. 코로나 사태 직전까지 디지털화는 블루칼라를 대신할 수 있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AI 등이 진전되면서 화이트칼라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필요없는 시대가 오면서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저소득층(혹은 블루칼라)의 역습 시대가 온다’고 내다봤다.

<그림 3> 미국 노동시장 현황

저소득층의 역습은 성장과 고용 간의 정형화된 사실도 깨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저소득층이 내몰리면서 ‘고용 창출 없는 경기회복(jobless recovery)’을 낳았지만 최근에는 저성장 시대가 정착되는 속에서도 실업률이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 ‘고용 풍부한 경기둔화(job full downturn)’라는 새로운 수수께끼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 강화돼 추세로 자리 잡을 확률이 높다. 중국, 한국 등 주요국은 인구절벽으로 생산가능인구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AI, 로봇, 양자 컴퓨터 등으로 이어지는 디지털의 고도화는 이들의 노출도가 심한 화이트칼라와 고소득층을 더 빨리 대체해 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때문이다.

경제학이 추구하는 두 가지 대원칙이 있다. 하나는 ‘효율성(성장)’이고 다른 하나는 공정성(분배)이다. 두 원칙이 선순환 관계일 때는 희소한 자원 배분을 시장경제에 맡기는 것이 최선책이지만 악순환 관계일 때는 정부가 개입해 두 원칙 간의 최적점(일명 코즈의 정리)를 찾아야 한다.

연초부터 두 원칙이 새삼 화제가 되는 것은 10년 전 거셌던 토마스 피케티와 앵거스 디턴 간의 논쟁이 AI 시대 도래와 함께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자본론>의 저자로 잘 알려진 피케티는 성장할수록 분배가 악화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위대한 탈출>의 저자인 디턴은 피케티와 성장과 분배가 같이 갈 수 있는 문제라고 봤다.

두 학자 간이 논쟁이 한동안 수면 아래로 잠복됐던 것은 금융이 실물을 주도(leading)하고 디지털화의 진전으로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에서 성장과 관계없이 소득 불균형이 ‘K’자형이란 신조어가 낳을 만큼 악화됐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 해인 2019년까지 그랬다.

힘이 실린 피케티의 주장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경제와 ‘1인=1표’를 지향하는 민주주의 체제 간의 불일치까지 겹치면서 포퓰리즘 정책을 낳았다. 대기업과 고소득층에게는 구글세, 로봇세, AI세, 초부유세 도입 등의 이론적 근거가 되고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에게는 지원의 참고 잣대가 됐다. 심지어는 횡재세 도입과 ‘빚내서 더 쓰자’는 현대통화론자까지 나왔다.

하지만 올해 전미경제학회를 앞두고 디턴의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는 통계가 나왔다. 미국경제연구소(NBER)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 직전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의 계층별 소득증가율을 보면 하위 10%는 9%가 증가한 반면 상위 10%는 4.9% 증가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도 지니 계수가 2022년에 0.396으로 2016년 이후 처음으로 0.4 밑으로 떨어졌다. 지니 계수가 하락한다는 것은 소득 불균형이 개선된다는 의미다. 다른 국가들도 소득 불균형이 개선되고 있다는 통계가 잇달아 발표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경우 세전소득을 기준으로 해 소득 불균형 개선이 정책당국과 정치권의 노력 때문이라는 반박을 사전에 차단했다.

성장과 분배 간 역순환 관계라는 피케티의 주장을 전제로 했던 재정정책이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지난해 이후 주요국의 세제 정책이 ‘증세에’서 ‘감세’로 바뀌고 있는 가운데 법인세는 최저수준까지 낮추고 있다. 심지어는 영국은 상속세, 일본은 소비세 등 상징성이 높은 세제까지 폐지할 움직임이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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