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있음 트럭 보내"…기업 떨게 만든 MZ세대 '트럭시위'

이지은 2024. 5. 13. 07: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이브 사태에도 사옥 앞 트럭시위
SNS, 온라인커뮤니티 확산에 유리

지난 9일 오후 2시께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를 걷던 시민들이 별안간 발길을 멈추고 6차선 도로 건너편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시선이 연예기획사 하이브 사옥 앞에 주차된 커다란 트럭 3대로 향했다.

트럭에 부착된 150인치 LED 전광판에는 '하이브는 산하 레이블 어도어를 향해 흑색선전을 멈춰야 한다'라는 항의성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전광판을 지켜보던 행인들이 휴대전화를 들어 트럭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날 트럭은 오후 5시가 가까워져서야 자리를 떠났다.

9일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앞에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팬들이 보낸 시위 트럭이 서있다. [사진=이지은 기자]

피켓과 구호 소리로 얼룩졌던 시위 현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사람 대신 트럭을 보내는 것이 새로운 시위 트렌드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트럭 대여비는 1일 8시간 기준 100만원대 전후로, 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익명으로 모금이 이뤄진다. 수백 명이 모금에 참여할 경우 직접 현장에 가는데 드는 교통비보다도 저렴하게 시위에 참여할 수 있다.

◆직장인부터 아이돌 팬덤까지…다양한 집단에 인기

이러한 장점 덕에 트럭 시위는 최근 직장인부터 스포츠 팬, 게임 유저까지 다양한 계층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2022년에는 카카오게임즈가 국내에 서비스하는 게임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의 유저들이 사측의 과도한 과금 정책과 미흡한 소통을 지적하며 판교 일대에서 트럭 시위를 벌였다. 엔씨소프트도 '리니지2M'의 이용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항의 트럭 시위에 나서면서 곤욕을 치렀다.

2022년 2월19일 경기 성남시 엔씨소프트 사옥 앞에 리니지M 이용자들이 보낸 시위 트럭이 서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직장인들의 임금 개선 시위에도 트럭이 이용됐다. 지난 2월 LG에너지솔루션 일부 직원들은 성과급 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트럭 시위를 열었다. '성과를 공정하게 보상하라'라는 메시지가 담긴 3.5t 트럭은 여의도 일대를 순회했다.

최근에는 외국인에게까지 트럭 시위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트럭 대여 업체 관계자는 "요즘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한류 팬들이 현지 업체를 끼고 접촉해오거나 직접 번역기를 돌려서 견적을 묻는 사례가 늘었다"고 밝혔다.

트럭 시위가 인기를 끌면서 한 업체당 일평균 시위 용도로만 2~3대의 트럭을 투입하고 있다. 한 트럭 대여 업체 관계자는 "시위 별로 차이가 있지만, 특정인이 한 번에 6~7대의 트럭을 빌리는 경우도 있다"며 "국내에 대여 업체 수가 적긴 하지만 다른 업체까지 합하면 매일 5~6대 정도의 트럭이 시위용으로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군중 결집 없이도 확산 효과 커…기업도 예의주시

트럭 시위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데는 군중 결집 없이도 항의 의사를 쉽게 전달할 수 있다는 효율성이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다수의 인원이 모일 수 없었던 코로나19를 기점으로 트럭 시위는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업체 관계자는 "예전부터 소수의 아이돌 팬들이 소속사 앞에 트럭을 세워두는 시위를 해왔다"면서도 "코로나19 시기부터 시위 용도로 트럭을 대여하고 싶다는 문의가 급격히 늘었다"고 설명했다.

시각적 효과 덕에 구호와 피켓보다 항의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대형 규모의 전광판이 시민들의 이목을 모으다 보니 시위 사진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는 결과도 낳는다. 일부 언론들이 시위 사진을 기사화할 경우 시위의 효과는 배가 된다.

최근 한 아이돌 팬의 트럭 시위 모금에 참석한 최모씨(30)는 "소속사가 선정한 아이돌 그룹의 팬 미팅 장소에 불만을 가진 팬들이 십시일반으로 트럭 대여비를 모았다"며 "시위를 하자마자 인터넷 기사와 엑스(X·옛 트위터) 등으로 트럭 사진이 퍼졌고 소속사가 바로 장소를 교체했다"고 전했다.

시위 트럭 운전기사 A씨가 트럭에 부과된 범칙금 고지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이지은]

SNS로 사진이 확산하는 효과가 빠르다 보니 기업과 연예기획사들도 트럭 시위를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다. 시위용 트럭을 모는 40대 운전기사 A씨는 "연예기획사 앞에 트럭이 세워지면 직원들이 곧장 달려와 트럭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며 "일부 기획사의 경우 계속해서 주정차 위반 신고를 해서 여러 차례 차량을 뺐다가 다시 주차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오프라인 시위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기성세대와 달리 MZ세대는 더욱 전략적인 방식으로 의견을 표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MZ세대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불공정한 기업의 관행을 논의하는 등 시위가 일상화된 세대"라며 "이들은 기성세대와 달리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두를 자유자재로 동원해 전략적인 방법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데 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