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세계 교회 역사] 모든 순간, 하나님을 추구하십니까

신상목 2024. 5. 13.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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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더미션입니다.
풍성한 5월을 만끽하고 계시는지요, 가족과 함께 나들이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의 영혼을 풍성하게 하는 말씀 묵상과 예배, 찬송, 기도도 가족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5월 셋째 주에는 우리 시대 예언자로 일컬어지는 미국의 복음주의 목회자 A. W. 토저 목사가 별세했습니다. 한국에도 그분의 책이 여럿 번역돼 있지요. 대표작 ‘하나님을 추구하라’는 우리에게 진정 무엇이 중요한가를 묻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매 순간, 우리가 하나님을 추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복은 없을 것입니다.

‘신곡’의 저자 단테가 태어난 주이기도 합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신곡에 대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낸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했을 정도이지요. 신곡에서 가장 유명한 지옥 편에는 지은 죄에 따라 벌 받는 영혼들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습니다. 지옥문에는 모든 희망을 버리라는 무시무시한 말이 적혀 있지요. 희망이 없는 곳이 곧 지옥이라는 얘기인데 우리가 예수 안에 있다면 분명 지옥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추구할 때 지옥과는 더 멀어지겠지요.

우리 시대의 예언자, 에이든 토저 별세
1963년 5월 13일 미국의 대표적 목사이자 경건한 저술가인 ‘하나님을 추구하라’의 저자 A. W. 토저가 별세했습니다. 그는 영적으로 타락해가는 신앙인의 현실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타협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강력하게 선포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성령과 말씀의 토대 위에 전해졌고 사람들의 심령에 부흥의 불을 던졌습니다. 교회의 부패한 현실을 비판하고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 ‘이 시대의 예언자’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장로교 복음주의 교단인 C&MA에 소속돼 33년간은 많은 교회에서 목사로 섬겼습니다. 첫 사역지는 웨스트 버지니아의 작은 상가 교회였으며 토저는 30년간(1928~1959) 시카고 위치한 사우스사이드 얼라이언스 교회에서 목사로 섬겼으며, 마지막은 캐나다 토론토 에비뉴로드교회에서 봉직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살고자 일생 성령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대표작 ‘하나님을 추구하라’에서는 ‘우리가 창조된 이유’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예배’라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예배자로 살아갈 때 가장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토저는 오늘날의 교회를 향해 간절한 심정으로 바랍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이곳에 계신다라고 증언할 수 있는 교회들로 다시 서게 되기를!” 평생 교회와 크리스천 삶의 개혁에 관한 70여 권의 명저들을 저술했습니다.

‘신곡’의 저자 단테 알리기에리 출생
1265년 5월 15일 ‘신곡’의 저자이자 시인, 정치가인 단테 알리기에리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예언자 또는 신앙인으로 박해를 가한 조국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 인류에게 영원불멸의 거작 ‘신곡(Divina Commedia)’(1308∼1321)을 남겼고, 이것으로 중세의 정신을 종합해 문예부흥의 선구자가 되어 인류문화가 지향할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그가 9살 때에 마치 천사처럼 청순한 베아트리체를 연모했는데 그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그의 시 형성 과정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단테는 문체의 탐구 과정에서 고대 로마의 베르길리우스, F.호라티우스, N. 오비디우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키케로와 세네카에게서는 윤리학을 배웠습니다. 또 수도원에 드나들면서 성직자들과 의견을 나누며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 및 신학 사상을 배웠습니다.

당시 피렌체는 흑백 양당으로 갈라져 단테는 백당에 소속해 흑당의 힘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흑당은 로마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의 야심을 이용했고 단테는 흑당에 의해 추방됐습니다. 1302년 1월에는 독직죄로 고소당하여 무거운 벌금과 2년간의 유형을 선고받았으며 다시 2개월 후에는 영구 유형을 선고받고 시 정부에 체포될 경우 화형에 처한다는 통고를 받았습니다.


‘신곡’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어두운 숲을 헤맨다”는 표현은 단테가 35세 때인 1300년 유랑의 길을 떠나기 직전 그의 양심과 예지, 신앙이 심각하게 흔들리는 위기에 처해 있었음을 알려주는 표현입니다. 부당한 단죄에 대한 반항은 백당의 잔당에 가담해 피렌체를 다시 탈환하는 일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백당은 1303년과 그 이듬해 패배했고 그러는 사이에 단테만이 일인일당으로 남았으며, 유랑의 나그넷길은 고난과 실의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낙담은 오래 계속되지는 않았고, 인류 구제의 길을 가르치려는 사람은 먼저 지옥에 가서 인간이 범한 죄의 실체와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아야 한다고 스스로 결심했습니다.

걸작 ‘신곡’은 단테의 문학적 종교적 사상의 결정으로, <지옥편>은 1304∼1308년, <연옥편>은 1308∼1313년, <천국편>은 그의 생애의 마지막 7년 동안에 완성했습니다.

토마스 뮌처 체포
1525년 5월 15일 급진적 개혁가 토마스 뮌처가 체포되고 그의 추종자 다수가 비참한 프랑켄하우젠 전투에서 사망합니다. 뮌처는 12일 후 뮐하우젠에서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을 당한 후 처형당했습니다. 그의 신념 중 많은 부분이 후대의 비폭력 재세례파에 의해 거부되었지만 고난받는 제자도에 대한 강조, 유아 세례 거부, 교회에 대한 심판 요구는 재세례파 운동의 핵심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적 교리보다 중요한 것은 성령의 현재적 계시라고 주장했습니다. 일종의 ‘성령파적 교리’를 주장한 것인데 이는 정치적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그는 성령에 의해 중생한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실현하기 위해 신정 정치적 공동체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폭력 투쟁을 통해 봉건영주의 통치권에 대항, 교회와 하층민이 중심이 되는 이상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당시 영주와 타협하던 부패한 교회와 수도원을 해체해 그 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분배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1886년 5월 15일 죽음 영원 신 내세에 관한 많은 시를 쓴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이 세상을 떠납니다. 당시 그녀의 1775편 시 중 단 7편만이 출판되었습니다.

1971년 5월 17일 마태복음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갓스펠’이 뉴욕의 체리 레인 극장에서 개막합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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