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코리아] 사회가 자립준비청년의 든든한 버팀목 돼야

2024. 5. 13.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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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비교할 때 독립적 생존을 위해 매우 긴 양육과 돌봄의 시간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포유류가 짧은 시간 내에 독립할 수 있지만, 인간은 성인이 될 때까지 장기간 보살핌을 받는다. 이는 인간의 두뇌가 고도로 정교하고 복잡하여 지적 발달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의 복잡한 구조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어, 사회성, 문제 해결 능력 등 고차원적인 기술을 습득해야 하므로 성인기 이후까지도 지속적인 교육과 돌봄이 요구된다. 인간의 삶은 평생 생애 주기에 따라 누군가의 돌봄을 받거나 누군가를 돌보는 상호 의존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어떻게 돌봄과 보호가 삶의 어느 시점에서 종료될 수 있겠는가.

「 가정 돌봄 없이 사회 진입 청년들
냉혹한 경쟁서 생존하기 힘들어
사회 함께 책임진다는 인식 필요

김지윤 기자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매년 약 2400명의 자립준비 청년이 가정의 돌봄이 부재한 상태로 ‘보호 종료 연령’이 되어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18세까지 아동보호시설이나 위탁가정의 보호를 받고 난 뒤 자립 지원 기간이 불과 5년에 그치고, 현행 지원 제도의 한계로 인해 이들은 심리적·사회적·경제적 어려움을 홀로 감당하며 냉혹한 경쟁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부모들의 관심이 자녀의 교육과 취업에만 집중되고, ‘부모 찬스’가 당연시되며, 부와 권력·인맥이 대물림되는 이 현실 속으로 말이다.

자립준비 청년들이 진정한 자립을 이룰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첫째, 안정적 주거 마련이 최우선 과제다.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와 주거급여 제도 개선을 통해 주거비 부담 없이 자립을 준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야 한다. 현행 전세임대주택이나 자립지원시설 등의 지원프로그램이 수요에 비해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스스로 원하는 곳에서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주거급여 제도를 정비하고, 단순한 거주지가 아닌 ‘가정’으로 느낄 수 있는 주거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둘째, 사회 초년생인 이들에게 정보와 조언을 제공할 멘토가 절실하다. 자립준비 청년들이 사회 적응 과정에서 겪는 정보 부족과 부적응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체계적인 멘토링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다. 진로 상담, 취업 정보 제공, 생활 기술 교육 등 실질적 도움을 제공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예산과 인력 확충이 요구된다.

셋째, 가정의 보호가 부재한 상황에서 심리적 트라우마와 스트레스에 노출되기 쉬운 이들을 위한 정신건강 지원 체계가 시급하다. 상담 서비스와 심리 치료 프로그램 등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며, 지역별 자립준비 청년 전담센터 설치와 전문 상담사 배치를 통해 지속적이고 접근성 높은 심리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도움이 필요할 때 요청할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상황을 뜻하는 사회적 지지 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인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더욱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자립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근로소득 증가 시 수급 자격이 박탈되도록 설계되어 있어 자립준비 청년의 경제 활동 의욕을 떨어뜨린다. 일정 기간 수급 자격 유지, 소득 기준 상향 조정, 재수급 요건 완화 등 전향적이고 정교한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나아가 청년 기본소득제 도입 등을 통해 안정적인 사회 진출을 뒷받침할 보편적 경제 지원 체계 구축도 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단순한 취업이 아닌 가능한 한 자신이 원하는 양질의 일을 찾아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은 인간 발달에 가족뿐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 전체의 역할이 중요함을 일깨운다. 가족이라는 일차적 보호망 없이 견뎌온 자립준비 청년들에게 우리 사회가 든든한 ‘마을’의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개별 가정이 각자 감당하던 돌봄을 사회가 모두 함께 책임진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공동체의 모든 아이를 함께 양육한다는 태도로 사회의 돌봄 제도를 만들어 갈 때 우리의 아이들은 ‘마을’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 돌봄마저 각자도생으로 치열한 사회는 결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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