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국가중요정책결정을 사법기관에 맡겼을 때

2024. 5. 12. 18:58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충청권에 새로운 행정수도를 건설하고 청와대와 국회, 중앙행정기관을 이전한다.'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내세운 공약이다.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국가 안위에 대한 중요 사안임에도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아서 헌법 제72조를 위반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충청권에 새로운 행정수도를 건설하고 청와대와 국회, 중앙행정기관을 이전한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내세운 공약이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출범한 참여정부는 이 공약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2003년 12월 29일, 국회에서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통과시킨다. 이후, 이 법에 따라 ‘신행정수도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충남 연기⸱공주 지역을 행정수도 입지로 선정하는 등 행정수도 이전에 박차를 가한다.

그러나 반대세력은 이 문제를 사법기관으로 어김없이 끌고 갔다.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국가 안위에 대한 중요 사안임에도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아서 헌법 제72조를 위반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다. 그런데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어서, 국민투표 부의 여부는 대통령 재량사항으로 정하고 있다. 즉, 성문헌법 위반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사법기관이 전무후무하고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논리를 내세워 중차대한 국가정책의 발목을 잡을 줄. 헌법재판소는 먼저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신행정수도를 ‘국가의 정치⸱행정의 중추기능을 가지는 수도로 새로 건설되는 지역’이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행정수도 이전은 우리나라의 ‘수도 이전’을 의미한다고 봤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해괴한 논리는 그 다음부터다.

헌법에 ‘수도는 서울’이라는 명문화된 조항은 없지만, 조선시대 한양을 도읍으로 결정한 이후 건국 이후에도 모든 국민이 수도라고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신해 온 것으로 ‘관습헌법’으로 볼 수 있단다. 이에 따라 ‘수도가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헌법개정이 이뤄져야만 하는데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은 수도의 이전을 헌법개정의 절차를 밟지 아니하고 단순 법률의 형태로 시행한 것이기 때문에 헌법개정 절차를 밟지 않아서 위헌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사실상 헌법에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다.’라는 규정이 들어가게 되었으며,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헌법재판관 9명이 관습헌법을 이유로 위와 같이 헌법을 개정한 셈이 되었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헌법개정을 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3분의 2 또는 대통령이 제안하고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지만, 이제 민주적 정당성이 미약한 헌법재판관 6명의 동의만 있으면 헌법개정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얼토당토않은 위헌 결정으로 행정수도 추진 계획은 전면 중단됐다. 이후 규모가 대폭 축소된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세종시가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국토의 균형발전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다. 올해 10월 21일이면 행정수도 이전이 좌절된 지 20년이 된다. 그 사이 관습헌법상 수도인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모든 면에서 더욱 비대해졌고, 지방은 소멸을 면치 못할 상황이 됐다. 이처럼 국가 중대사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은 어쩌면 사법기관이 국가의 중요정책을 결정하도록 정치권과 국민이 방치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여권은 물론 야권을 포함한 국민 대다수도 의사 수 확대를 바라고 있는 상황에서 의대 정원 증원 문제의 공이 다시 사법기관으로 넘어갔다. 향후 국민의 건강권과 직결된 이 문제에 대하여 사법기관이 부디 20년 전과 같은 퇴행적인 결정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