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돌아온 '혹성탈출', 공존에 대한 질문 던졌다

조영준 2024. 5. 12.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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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359] 영화 <혹성탈출 : 새로운 시대>

[조영준 기자]

 영화 <혹성탈출 : 새로운 시대>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

혹성탈출 시리즈의 첫 번째 리부트 시리즈의 시작점으로 여겨지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을 두고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은 오리지널로부터 이어지는 영화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오리지널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열어젖히는 것만이 유명 IP를 다시 세상에 소개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듯이 말이다. 인류와의 공존 가능성을 모색하면서도 결국 피할 수 없는 전쟁 속에서 유인원 무리를 이끌던 시저의 모습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의 시리즈는 맷 리브스 감독에 의해 완성되었지만,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2014)에 이어 <혹성탈출: 종의 전쟁>(2017)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했던 것은 위치의 전복을 통해 인류가 가진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그려내고 지켜보는 일이었다. 가장 인간다운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저가 가진 '자유를 위한 투쟁'이라는 그림자 위에서 획득된 반영(反映)을 통해서다. 지난 오랜 역사 속에서 인류가 걸어오는 동안 일어났던 모든 갈등과 충돌이 리부트 시리즈를 통해 그려졌다.

시리즈의 두 번째와 세 번째 작품은 맷 리브스 감독에 의해 완성될 수 있었지만, 이후의 이야기 역시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이 완성한 틀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시저' 3부작은 인간의 불합리한 처사에 대한 반기와 해방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핵심 서사로 종(種)의 생존과 충돌로 인한 갈등과 번민의 지점으로 나아갔다. 과거 설정의 일부는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새로운 서사를 펼쳐낸 것이 리부트의 성과로 인정받았다.

02.
아직 정확히 공언된 것은 없지만, 웨스 볼 감독에 의해 시작된 또 다른 리부트 시리즈의 첫 작품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2024) 역시 비슷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감독 역시 새로운 3부작의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전작의 핵심 요소를 이식하면서도 지금까지 없었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는 것이 영화의 첫 장면에서부터 드러난다. 시저의 죽음을 애도하고 결속하는 유인원들의 모습이다. 이후에도 영화 속 장면들을 통해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있듯이 전작의 주인공인 '시저'와 그가 남긴 규율을 그대로 잇고자 하는 모습이다.

차이점도 분명히 있다. 지난 리부트 시리즈에서는 인간이 발명한 치료약 '큐어'가 매개가 되어 유인원은 진화하고 인류는 멸종에 가까워졌다. 이와 관련한 내용이 첫 작품이었던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전반을 통해 그려졌다. 이번 작품에서는 처음부터 유인원과 인류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 처음부터 지능과 언어, 문화를 가지고 있는 유인원과 달리 인류는 '에고', '노바' 등으로 지칭되며 과거 유인원의 위치에서 다뤄진다. 지난 시리즈로부터 몇 세대를 건너온 시점의 이야기라고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설정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설정이 가능하게 하는 것과 이를 통해 시리즈 혹은 이 작품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영화 <혹성탈출 : 새로운 시대>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03.
노아(오웬 티그 분)와 두 친구가 독수리 알을 구하기 위해 높은 암벽을 오르던 초반부의 장면은 그래서 중요하다. 마을의 중요한 의식을 앞두고 각자 하나씩의 알이 필요한 이들은 '둥지마다 최소 하나씩의 알은 남겨두어야 한다'는 규칙을 배반하지 않는 모습을 이 지점에서 보여준다. 현재 유인원 무리에게도 과거 인간의 것과 유사한 규칙과 법칙이 있으며 그것을 지키고 따르고자 한다는 것을 선언하는 지점이다. 적자생존이나 약육강식 같은 자연의 섭리와 법칙이 아닌 그들 스스로가 만든 제도를 구축하고 유지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은 보이는 것과 달리 그들이 이미 인간이 이룩했던 문명과 유사한 위치까지 이르렀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후 일어날 모든 사건의 가정이 여기에 있다.

이 외에도 영화의 초반부에서 제시되는 유인원의 모습은 지난 인류의 모습과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각자의 환경에 맞게 특색 있는 부족으로 나뉘어 무리 지어 살아가는 것은 물론, 필요에 따라 농경과 목축을 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노아의 마을에서는 결속 의식이라는 행사를 통해 각자의 독수리를 기른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 먹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준비하는 태도는 인간의 것이라는 점에서 이전에는 유인원 무리가 가지지 못했던 양식이다. 다른 부족과의 전쟁을 통해 자원을 빼앗고 인적 자원을 노예로 삼는 폭력성은 물론, 더 많은 지식을 얻고 발전에 대한 욕구를 느끼는 탐욕적인 모습 또한 인류와 닮아 있다. 이처럼 영화는 인간의 양가적 측면 모두가 이미 유인원에게 이식되어 있음을 노아와 프록시무스 시저(케빈 듀렌드 분)를 통해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인간과 유인원의 위치 변화, 인류가 전락하고 유인원이 진화하는 설정으로 인한 전복의 플롯은 앞으로의 시리즈에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언어를 구사하고 인류를 위협하는 유인원 무리의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여전히 불편한 감정을 유발할 수 있다. 다만 영화가 본격적인 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이미 두 집단의 위상차를 인정한 상황에서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유인원과 인간의 동행, 노아와 메이(프레야 앨런 분)의 여정이 그려질 수 있는 이유도, 애초에 인간과 대립하는 유인원의 내러티브가 아니라 유인원 집단 사이의 대립을 이번 작품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까닭도 모두 여기에 있다.
 
 영화 <혹성탈출 : 새로운 시대>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04.
"부끄러운 일이다. 가면들이 그의 이름을 가져가다니…"

이 작품이 노아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희곡의 전형적 영웅 서사를 따르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프록시무스 시저 무리의 침입을 받아 마을이 와해되는 플롯을 시작으로 조력자인 라카(피터 메이컨 분)의 도움을 받고,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뒤에 과거의 유산을 이어받아 새로운 지도자의 모습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 모두가 그에 속한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지난 트릴로지의 중심이었던 '시저'를 대신할 영웅적 인물을 부각하기 위한 의도가 존재한다. 마을의 상징이자 아버지의 유지와도 같았던 독수리 '태양'으로부터 인정받는 영화 말미의 장면과 그를 통해 무리의 결속을 이끌어내는 모습에는 어떤 정통성마저도 함축되어 있다.

한편, 서사가 진행되는 동안 발생하는 프록시무스 시저 무리와의 충돌 과정 속에는 인류가 성장하고 발전해 온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농경과 목축 중심의 문화를 가진 집단이 신식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집단에 의해 정복당했던 과정이나, 기술과 권력이 주는 힘을 경험한 계층이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모습, 그리고 사회를 선동하기 위해 거짓으로 과거의 유산을 잇고자 하는 행태 등이 해당된다. 물론 지금 나열한 부정적인 측면만 그려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 등장하게 되는 지도자로서의 노아와 이들 유인원 무리의 서사는 이들을 인류의 모습에 더욱 가깝게 묘사될 수 있도록 만든다.

결정적으로, 이제 흩어져있던 이들을 하나의 군집으로 결집시켜 대항해야 하는 것은 인류가 된다. 그런 이유로 메이는 노아의 서사 곁에 서서 자신의 집단(인류)이 다시 뭉칠 수 있도록 기회를 엿본다. 협력과 배반이라는 양극의 관계를 오가면서, 이전의 리부트 시리즈에서와는 달리 일단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이유로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영화 <혹성탈출 : 새로운 시대>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05.
"유인원들을 위한 건 뭔데? 우리는 우리의 집을 지을 거야. 더 강하게."

내일로 나아가기 위해 인류와 유인원 양측 모두에게 필요한 모습이 영화의 종반에서 이어진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부족을 이끌게 된 노아 역시 그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러닝타임 내내 영화가 도모해 왔던 개인의 성장에 대한 결과물은 확인했지만, 그가 이끌어야 할 집단 전체에 대한 그림은 아직이다.

다시 마주한 노아와 메이가 서로가 가진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당장은 그저 돌아서고 마는 것은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인류와 유인원이 함께 살았다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 속의 그 언젠가의 모습, 공존과 평화, 안녕의 장면에 대한 기대와 가능성을 저버릴 수는 없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번에는 정말 이종(異種) 간의 격차가 없는 평등한 세상을 펼쳐낼 수도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영화가 던지는 공존에 대한 또 한 번의 물음이 여기에 있다. '시저'에 이은 '노아'의 트릴로지 시리즈가 계속된다면 이번에는 어떤 모양의 대답을 전해 듣게 될까? 각자의 진영에서 어떤 방법과 전략이 효율적일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일과 영화 속의 장면들을 통해 현실과 역사 속의 인류를 다시 반추하는 일 역시 관객들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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