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를 찾아 농성장에 오는 아이들... 무얼 선물하나

박은영 2024. 5. 11. 15: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종보 천막 소식 12일차] 강을 좋아하는 아이들... 세종시민들이 말하는 세종보 '흑역사'

[박은영 기자]

▲ 친구와 함께 관찰했던 원앙 강을 찾은 친구와 함께 발견했던 원앙
ⓒ 대전충남녹색연합
 
"오늘 본 새를 인스타에 올릴거예요~"

세종보 재가동을 막으려고 친 천막농성장에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는 고등학생 친구가 있다. 오늘은 자기 인스타그램에 올리겠다며 수줍은 표정으로 카메라 액정 화면 속의 물떼새 사진을 보여줬다. 그 친구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더니, 세종시 장남들과 합강습지 등에서 찍은 새 사진으로 꽉 차 있다. 새를 무척 좋아한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친구가 편의점에서 사 온 1+1 음료를 조용히 놓고 간다. 물떼새를 지켜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읽혔다.  

덩치는 산 만한데, 웃음이 많은 친구다. 그런데 천막안에서 어른들이 앉아서 세종보가 재가동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등을 나눌 때면 옆에서 걱정스럽게 혼자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럼 강변에 내려올 수도, 새를 보고 인스타에 업로드 할 수도 없는 건 아닌가."

세종보는 2021년에 준공된 뒤에도 제대로 가동된 적이 없는 '고물보'였다. 농성천막을 방문한 세종시민들은 세종보가 해마다 고장이 났고, 토사를 제거하다가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세종보 가동 6년 동안의 흑역사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다. 또 세종보가 완전 개방된 뒤인 2018년 이후에 이사 온 시민들도 "새와 모래와 자갈이 있고, 흐르는 강이 너무 좋은데 왜 막냐"고 환경부를 타박하기도 했다. 

계속 고장나던 세종보… 보 닫으면 또 다시 시작될 악몽
 
▲ 세종보 기름유출 현장 2016년 세종보 기름유출 현장사진
ⓒ 대전충남녹색연합
 
세종보는 계속되는 고장과 기름유출로 애물단지 중 하나였다. 세종보가 준공된 뒤, 보 상류의 강바닥은 펄로 가득찼다. 세종보 준공 기념식 때 요트가 정박했던 마리나 선착장(4대강 사업으로 설치)은 배가 정박할 수 없을 정도로 펄로 가득차서 사업을 포기했다. 그 펄에 뿌리를 내린 마름과 환경부 수질 4급수 지표종인 붉은 깔따구와 실지렁이가 드글거렸다. 

세종보 건설로 인한 바닥과 수질 등의 변화는 강이 호수화 되어 썩어가고 죽어가는 상황을 그대로 재현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된 '수생태계 건강성 조사 및 평가'에 따르면 세종보의 저서성 대형 무척추동물(호수나 담수 바닥에 서식하는 생물)이 4년 연속 D등급으로 조사되었다. 세종보 일대는 4대강 사업 이전에 B, C등급이었다.

2012년 준공 직후부터 지금까지 가동만하면 유압시스템 등 시설에 문제가 생겨 멈춰서거나 기름유출이 되던 '가동결함보'이기도 했다. 2012년 겨울, 완공한지 5개월 만에 유압장치에 토사가 끼면서 멈춰 섰고 유압실린더 및 배관시설이 교체되었다. 시설에 대한 평가와 검증이 제기되었지만 별다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해마다 정기적인 점검과 보수를 반복해왔으며 2018년 이후에는 가동이 정지된 '죽은 보'였다.

세종보를 활용? 강의 생명을 잊은 물정책은 지속불가능
 
▲ 세종보 해체를 요구하는 퍼포먼스  활동가들이 세종보 해체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지난 10일, 대전의 한 방송국에서 금강 보 재가동과 관련한 토론회를 방송했다. 중도적 입장의 패널들은 세종보 재가동이나 철거에 대해 '신중하고 합리적 결정', '더 많은 데이터', '시민들의 요구'와 같은 말들로 보 활용을 주장했다. 하지만  4대강 사업 이후 온국민이 처음 듣게 된 '큰빗이끼벌레', 간 독성 물질 마이크로시스틴을 품고 있는 '녹조라떼', 심지어 보 인근에서 수상레저를 즐기다가 발생한 사망사고까지 보 수문을 닫으면서 일어난 폐해에는 애써 침묵했다.  

이 방송의 마지막 질문은 '기후위기 시대에 인간과 자연을 위한 지속가능한 정책'에 대한 것이었다. 오늘날의 기후위기, 기후재난을 목도하면서도 아직도 인간이 무한하게 진보할 수 있을까. 지금은 지구가 더 이상 뜨겁게 달궈지지 않도록 멈춰야 할 마지막 기회 구간에 도달해 있다. 아니, 이미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구간을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세종보를 잘 활용하면 된다? 고정 보로 강의 절반 이상을 4m 높이의 콘크리트 벽으로 가로막은 세종보가 기후위기 시대에 빈번해지는 홍수 피해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또 세종보를 담수하면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체들은 어찌할 것인가? 이에 대한 대책도 없이 '합리적 가동'이라는 모호한 말로 넘어가면서 지속가능을 말할 수 있을까. 보를 무조건 신봉하는 이런 태도는 과학적 근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주술사의 주문과도 같은 것이다.
     


"지구를 지키고 싶어요."

10일, 농성장을 찾아온 최연소 방문자 신우가 한 말이다. 도요필름프로덕션에서 제작한 세종보 천막농성 영상(세종시내 강변에 녹색텐트가 세워진 이유)을 보고 신우네 가족이 방문했다. 최연소 방문자인 신우는 쌍안경을 들고 새를 보고 싶다며 농성장 주변을 엄마와 거닐었다. 신우는 엄마가 쓴 방명록에 손톱만한 물떼새를 그려 넣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내 미안했다. 기후 위기를 초래해서 고장난 지구, 고장난 자연을 물려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금강마저 망치게 내버려둔다면? 또 항상 웃고 있는 고등학생 친구가 인스타에 올릴 새 사진이 사라진다면? 녹색 천막을 세차게 뒤흔드는 강바람 속에 앉아 있으니, 금강이 위태롭게 흐르고 있었다.
 
▲ 신우가 그린 손톱만한 물떼새 신우가족과 천막농성장을 찾은 고등학생 친구들이 쓴 방명록
ⓒ 대전충남녹색연합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