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연의 K컬처] 온라인 관계의 시대… ‘하이퍼 패밀리’의 탄생

2024. 5. 11.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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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강남스타일, BTS, 영화 기생충 등 일과성 이벤트들에 머물렀던 세계의 관심이 이제 한국문화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K컬처로 대변되는 국내외의 다양한 사회현상들, 그리고 그들의 명과 암을 사회과학적으로 관찰하고 반추해 봄으로써 한국문화의 본성을 재조명해본다.

게티이미지뱅크

인터넷에서 인간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 SNS가 이제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지금 이런 질문이 식상하게 들릴 수 있으나, 필자가 공부를 시작하던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이에 대한 논쟁이 격렬했다. 기술적 제약으로 당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대부분은 텍스트나 이모지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 비언어적 정보와 감정전달이 어려워 정상적인 인간관계 발달이 어렵다는 의견이 득세하고 있었다. 연구가 지속하면서 새로운 이론이 관심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에 의하면 기술적 한계 때문에 그 속도가 더뎌질 수 있는 있으나,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깊은 인간관계의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론을 처음 제기했던 조 월터(Joe Walther) 교수는 이후 한발 더 나아가, 온라인이 대면 커뮤니케이션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다소 센세이셔널한 의견을 냈는데, 이것이 이른바 하이퍼퍼스널 커뮤니케이션(hyperpersonal communication). 상대를 직접 만나 소통할 때에는 의도치 않은 말실수나 어정쩡한 표정, 손에 흐르는 땀 등 제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온라인에서는 자기 정보의 노출 수위나 메시지의 편집, 커뮤니케이션 타이밍 등 본인이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늘어나게 되고, 따라서 더 계획적이고 전략적인 자기표현이나 소통흐름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 과시나 과장, 온·오프라인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기 괴리 등 부작용도 있겠지만, ‘적절히’ 사용하기만 한다면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가져다주는 혜택이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2017년 562만 정도였던 1인가구 수는 2022년 현재 750만을 넘어, 한국 전체 2177만여 가구의 34.5%를 차지했다. 특히 정부부처가 모여있는 세종시와 학교, 기업이 밀집한 서울의 경우 30대 이하의 1인 가구 비율은 각각 50%를 초과하거나 이에 근접하고 있다. 청년의 경우 둘 중 하나는 취업이나 학업을 이유로 ‘나 혼자 산다’는 얘기다. 살을 맞대고 고락을 함께 하는 것이 진짜 가족이라는 전통적 사고방식으로 보면 한국의 1인 가구 증가세는 우려할만한 일이다. 가족의 파괴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기능 약화를 각종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보는 의견도 많다. 출산율 감소나 육아, 노인 돌봄과 같이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관계의 결핍으로 인한 우울증이나 정서불안, 지나친 개인주의 등 내적인 문제들에 대한 우려도 크다.

필자는 2020년 초 미국에서의 교수생활을 마감하고 조금 늦은 나이에 한국행을 택했다. 당시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된 첫째 아이의 학업과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들을 고려해 아내와 아이들은 그곳에 남게 되었고, 그렇게 기러기 아빠 생활은 시작되었다. 한국생활에 적응함과 동시에 불안함, 외로움, 미안함, 후회, 그리움이 반복적으로 찾아왔고 감정 기복은 심해졌다. 하루는 버스에서 유튜브 쇼츠를 넘겨 보다가 닌텐도의 ‘위 스포츠(wii sports)’ 시그널 음악이 흘러나왔는데, 덜컥 목이 메어왔다. 게임을 해 본 독자들에게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 음악이 얼마나 힘차고 경쾌한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독자들은 한 번 들어보시라. 그 활기찬 리듬은 나와 게임을 함께 하던 여섯 살 첫 딸아이의 깔깔대던 웃음소리와 거기에 맞춰 몸을 흔들던 세 살배기 둘째, 당시 처음 장만한 아담한 집과 목숨처럼 아끼던 나의 첫 미니밴, 저녁 수업을 마치는 날엔 항상 특별요리를 내주던 자상한 아내의 얼굴을 너무 쉽게, 장난처럼 떠올려 주었다. 가장 행복했던 삶의 단상들이 고단한 나날을 보내던 나의 뺨을 ‘톡’ 치고 지나갔을 뿐이지만, 그 사이의 간극만큼이나 깊고 묵직한 여운은 오랜 시간 나를 흔들었다.

1인 가구의 증가로 생겨나는 여러 현상이 충분히 심각한 문제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핵가족의 삶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기 때문이다.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막상 기억을 떠올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에게 최고의 안식과 위안을 주는, 인생 유일한 내 편이 가족이라지만, 당신에게 가장 큰 상처나 짐이 될 수 있는 것 역시 가족이다. 한 번의 말다툼이 한 달간의 침묵으로 확전 되기도 하고, 아이의 성적이나 진로는 물론 주말에 유튜브를 얼마나 보게 할 것인지, 만날 때마다 남의 험담을 해대는 친구를 어찌해야 할지를 두고도 언쟁은 이어진다. 다툼이 반복되는 이슈들은 점차 대화에서 제외되며, 자연히 그 수는 늘어간다. 서로를 ‘배려’하려던 부부 사이는 그렇게 소원해진다. 여기에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이 합쳐지면 필자와 비슷한 연배의 독자들이 하루하루 견뎌내고 있을 삶의 진풍경이 완성된다. 행복했던 짧은 기억은 가족이 곁에 없을 때만 짓궂게 찾아온다.

필자는 가족과 떨어진 그 거리만큼 행복한 찰나의 순간들을 더 자주 떠올리게 된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설렘의 감정이나 간절함도 느낄 수 있다. 이별과 해후(邂逅)를 반복할수록 짧은 만남의 시간은 매번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산책이나 마트에 갈 때는 항상 아내의 손을 잡는다. 아이들을 학교에 바래다줄 때는 눈맞춤하며 일부러 크게 미소 짓는다. 언제부터인지 아이들도 헤어지며 인사할 때는 꼭 내 표정을 확인하는 것 같다. 나 자신에게는 무척 생소한 모습이다. 무미건조한 나의 정서상 함께 살고 있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물론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원래의 내 모습이 비치긴 하지만 그대로 둘 수는 없다. 아이들과 아내를 다시 만나려면 수없이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는데, 거기에 후회가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다. 아내도, 아이들도 같은 마음으로 나를 맞아주었을 것이다.

소셜미디어의 덕도 톡톡히 보고 있다. 매일 아침 기상과 함께 아내와 페이스톡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괜히 우울하거나 마음이 상한 날은 적당히 텍스트로 대체할 수 있다. 그저 다른 사람들 다 사용하는 이모지나 애교 섞인 어투만 조금 섞어도 평소의 내 퉁명스러움은 조금 감출 수 있다. 아내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모습 역시 적당히 필터링이 가능하다. 어제저녁 과음으로 아직 술냄새가 심하게 나는 아침, 필자는 태연히 화상 통화를 하며 아직 후각정보를 전달하지 못하는 기술의 한계에 감사한다. 앞서 말한 ‘하이퍼퍼스널 커뮤니케이션’의 혜택을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다. 인간의 오감을 모두 전달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오기야 하겠지만, 그날이 거리의 제약에서 인간이 완벽히 해방된 역사적인 사건으로만 기억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걱정하는 것처럼 1인 가구의 지속적 증가는 다양한 사회문제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또 필자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택한 데에는 그보다 더 절박한 사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을 되돌린 데도 같은 선택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이를 문제가 아닌 기회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기후 온난화로 많은 이들이 홍수와 해수면 상승을 걱정하고 있지만, 극지방에서는 목초지 증가와 추위로 인한 사망자 감소 등 기후변화가 가져다주는 ‘불편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가족의 기능이 약해지고 있다고 우려하지만, 물리적 거리로 인해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의 크기와 강도, 또 가족과의 행복한 순간들이 우리를 찾는 횟수는 오히려 늘었을 것 같다. ‘아름다운 거리(距離)’가 주는 애틋함과 적절한 긴장감은 인간관계에 탄력을 준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아직 완벽하지 못한 탓에 더 매력적인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한국을 ‘하이퍼 패밀리(hyper-family)’의 사회로 인도하고 있다.

김상연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겸 한국문화데이터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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