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댕이는 벌금형, 길냥이 실형…동물학대 '들쑥날쑥' 판결, 왜
지난해 5월 11일 수원지법 여주지원은 개와 고양이 1256마리를 고의로 굶겨 죽인 혐의(동물보호법 위반)를 받는 이모(68)씨에게 법정최고형인 징역 3년을 선고했다. 2심과 3심 재판부가 이씨의 항소와 상소를 기각하면서 징역 3년형은 확정됐다.
동물 학대범에게 법정최고형이 최초로 선고되자 동물권 단체들은 “동물학대 엄벌의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동물보호법이 2021년부터 동물을 학대해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 기존 2년 이하 징역형을→3년 이하 징역형으로 처벌을 강화한 뒤 처음으로 최고형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1년이 지났지만 동물을 살해한 경우에도 징역형은 3건밖에 선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년 동안(지난해 5월 12일~지난 9일) 동물 학대 1심 판결문 80건(동물보호법 위반 단일 기소 기준)을 조사한 결과, 징역형 5건, 집행유예형 16건, 벌금형 56건, 무죄 3건으로 나타났다. 동물 학대 유형별로는 동물 살해 32건, 동물 폭행‧유기 48건이었다. 전년인 2022년 동물보호법 위반 1심 82건의 선고형이 징역형 5건, 집행유예형 21건, 벌금형 46건 등인 것과 비교해 오히려 벌금형이 더 늘어난 셈이다.
비슷한 유형의 동물 학대여도 형량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컸다. 동물 살해 1심 32건 중 징역형은 3건에 그쳤지만, 벌금형과 집행유예는 각각 20건과 9건이었다. 대구지법 상주지원은 지난해 7월 경북 상주의 한 마당 철 기둥에 개의 목을 매달아 살해한 혐의로 A씨에게 지난 1월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반면 길고양이를 놀아주다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목을 졸라 살해한 B씨는 1심(부산지법)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범행 동기가 비슷한 경우에도 처벌은 달랐다. C씨는 2021년 자신이 키우던 강아지 3마리의 머리 등을 수차례 때려 죽게 했다. “대소변을 못 본다”는 이유였다. 서울중앙지법은 C씨에게 지난 1월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반면에 D씨(49)도 같은 이유로 강아지 2마리를 베란다 창밖으로 던져 죽게 했지만, 춘천지법 영월지원은 B씨에게 지난 1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동물 학대 양형기준 없다…“검경 수사·기소도 문제”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내년 4월까지 동물 학대에 대한 양형기준을 신설하기로 했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양형기준은 판례를 바탕으로 결정되는데, 그동안 동물 학대에 대한 처벌이 약했기 때문이다. 한주현 법무법인 정진 변호사는 “성범죄 양형기준을 개정할 때도, 과거 솜방망이 처벌한 것이 반영돼 논란이 됐다. 동물 학대자는 동물 학대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엄벌 기조의 양형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며 “동물을 물건으로 보는 민법도 개정해야 동물 학대에 대한 양형기준을 제대로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검경 수사‧기소 단계의 한계점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검찰에서 약식기소를 했다가 정식 재판으로 청구된 ‘고정’ 사건이 전체 1심 판결의 37.5%(30개)를 차지했다. 이 경우 유죄로 인정되더라도 정식기소보다 낮은 형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형사과장은 “동물이 말을 할 수 없고, 동물 학대가 주로 CC(폐쇄회로)TV 사각지대에서 이뤄지다 보니 증거 확보가 어렵다”며 “모든 혐의를 밝히지 못하고 송치하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동물 학대의 심각성을 고려해 과거보다 약식기소 대신 정식 기소를 하고, 구형도 더 높게 내린다”면서도 “몇몇은 ‘동물 학대 사건을 꼭 기소해야 하냐’며 약식기소로 해야 한다고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찬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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