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이렇게 돈에 관심 많을 줄은... 염혜란 섭외한 이유?"
[오수미 기자]
▲ EBS <다큐프라임-돈의 얼굴> 스틸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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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가 2012년 <자본주의> 이후 12년 만에 야심 차게 내놓은 경제 대기획 다큐멘터리가 최근 시청자들 사이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4월 15일부터 6부작으로 방송된 <다큐프라임-돈의 얼굴>(아래 <돈의 얼굴>)은 돈의 다양한 얼굴들을 만나 본, 삶의 최전선에 선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돈의 속성에 대해 알려주며 화제를 모았다.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돈의 얼굴> 클립 영상에는 '수신료의 가치가 이런 것',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 영상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봤다' 등의 댓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교육 다큐멘터리 영상으로는 흔치 않게 조회수 100만을 훌쩍 넘긴 것 또한 이번 기획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짐작케 한다. 지난 1일 <돈의 얼굴>을 공동 연출한 이혜진 PD, 박재영 PD를 전화로 인터뷰하며, 제작 과정과 취재 뒷이야기들을 들었다.
이혜진 PD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만큼 뜨거운 반응을 예상치 못했다며 "오랜만에 경제 교육 프로그램이라 재미있게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었지만 이렇게 다들 경제에 관심이 많으신 줄은 몰랐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과거엔 '돈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세속적으로 느껴지던 시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시대가 지났다. 현재 2040 세대는 돈에 대해 솔직하게 욕망하는 세대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는 일타 강사처럼 요점만 콕콕 짚어서 잘 알려준 프로그램이었다면, 저희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경제에 흥미를 느끼게 해주는 선생님의 역할을 하고 싶었고 그런 방향으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 EBS <다큐프라임-돈의 얼굴> 박재영, 이혜진 PD 인터뷰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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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투자의 쓴 맛을 본 적이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박재영 PD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돈이 대체 무엇이길래 우리의 삶을 흔드는지 알고 싶었고 시청자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유튜브에 이미 너무 많은 경제 콘텐츠가 있다. 그리고 콘텐츠마다, 사람마다 말이 다 달랐다. '죽을 때까지 빚은 갚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빚은 정말 무서운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빚이 대체 뭘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미국 금리 0.1% 변동에 사람들이 일희일비 하고, 내 주식은 왜 흔들리는 걸까. 경제라는 주제가 너무 거대해서 한 부분만 보여줄 수는 없지만, 최대한 실생활과 밀접한 것 위주로 차츰차츰 공부해 나가는 형식으로 준비하려고 했다." (박재영 PD)
지난 2022년 가을부터 시작된 <돈의 얼굴> 기획은 올해 4월 30일 마지막 방송을 마치기까지 꼬박 1년 6개월여의 시간이 걸렸다. 6부작, 총 300여 분의 방송을 만들기 위해 모인 제작진은 이혜진, 박재영 PD 두 사람과 김미란 작가 세 사람이 전부였다.
이화여대 주소현 소비자학과 교수, 연세대 최상엽 경제학 교수 등 전문가들의 자문을 얻어 유동성, 금리, 인플레이션, 빚, 암호화폐, 투자 등 6가지 주제를 결정하고 두 명의 PD가 세 편씩 나누어 연출을 담당했다. 국내 촬영부터 해외 촬영, 편집과 후반작업까지 PD 두 사람이 모두 해냈다고.
▲ EBS <다큐프라임-돈의 얼굴> 스틸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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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얼굴> 1부 '돈을 믿습니까' 편은 2022년 장난감 총을 들고 은행에 난입한 레바논의 한 여성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레바논은 코로나 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었고, 뱅크런(은행의 지급 불능을 우려한 고객들의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을 막기 위해 예금 인출을 제한했다. 이 때문에 현금을 찾지 못한 시민들이 은행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은행을 습격하는 등의 일이 벌어졌다.
'20대 여성이 장난감 총으로 은행 강도 행세를 했다'는 기사 한 줄에서부터 취재를 시작했다는 이혜진 PD는 "'돈'에는 신용이 가장 중요하다더라. (레바논 사태도) 신용이 무너졌기 때문에 생긴 일이지 않나. 그 모든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직접 레바논 취재를 다녀왔다는 박재영 PD는 "거시경제 원리가 우리네 삶에 잘못 침투되었을 때, 직격탄을 맞았을 때 어떻게 삶이 흔들리는지 그 육성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열흘 동안 예금자단체 사람들과 라포를 쌓았다. 한때는 교사였고, 의사였던 사람들의 평생 모아 온 재산이 은행에 묶인 것이다. '지금 우리의 선택지는 강도짓 밖에 없다'고 하시더라. 그러면서 언제 어디서 강도 행위를 할 것인지 (친해진) 제작진에게 알려주셔서 그 현장을 담을 수 있었다. 돈을 집으로 가져와서 막 헐떡대면서도, 실제 계좌에 있는 돈보다 더 많이 가져왔으니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기 때문에 돌려줄 거야'라며 자수를 하러 가셨다. 정말 멀쩡한 사람들이었고, 없는 살림에도 어떻게든 손님 대접을 해야 한다며 과일을 준비해 주시는 분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은행 앞에서 강도짓을 벌이는 현장을 보고, '돈이 대체 뭐길래 인간의 삶을 이렇게 뒤엎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재영 PD)
한편 암호화폐의 탄생과 현재, 미래를 다룬 5부 '코인, 타셨습니까' 편에서는 암호화폐에 투자했다가 빚을 얻거나,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고 등장한다. 한때 2030 세대들 사이에서 투자 열풍을 일으켰던 비트코인은 특유의 극심한 변동성으로 인해 많은 청년들을 빚더미에 앉게 만들었다. 또한 서울회생법원이 가상화폐, 주식 투자로 인한 손실금을 변제액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면서 공정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 EBS <다큐프라임-돈의 얼굴> 박재영 PD 인터뷰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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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빠져 사는 것은 속물적이라거나, 빚지는 사람들은 무지하거나 한탕주의일 것이라고들 생각하지 않나. 하지만 청년들이 FOMO증후군(소외 불안 증후군, 다른 사람들이 돈을 버는 것을 보고 자신은 기회를 놓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채무자들이 빚을 져보니 어떻더라는 얘기를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빚 편도 그렇지만, 코인 편 역시 사례자 섭외가 정말 어려웠다. 그들이 용기를 내서 이 자리에 설 수 있게끔 만드는 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이들을 보호하는 장치에도 고민이 필요했다. 빚진 사람을 탓하거나, 그 사람들에게 새로운 구제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니다. 빚진 다양한 얼굴의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부 시사를 할 때도 어떤 사람은 '암호화폐를 사야겠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코인은 절대 안 해야지'라고 말하더라. (같은 영상을 보고도)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박재영 PD)
방영 전 공개된 <돈의 얼굴> 예고편에서 가장 화제를 모았던 건 다름 아닌 배우 염혜란이었다. 내레이터 겸 '머니맨'을 맡은 그는 실감 나는 연기를 통해 시청자들이 꼭 알아야 할 경제원리를 쉽고 재미있게 설명했다. 때로는 비트코인 채굴업자로, 때로는 은행원으로, 또 대출자로 1인 9역을 소화하며 '돈의 얼굴'을 보여줬다.
이혜진 PD는 "돈이 가진 다양한 이미지를 다 표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에 대해 되게 오랜 시간 고민했다. 제작진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섭외하고 싶어했던 유일한 인물이 염혜란씨였다. 섭외에 실패하면 '그냥 이 역할 없애자'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모시고 싶었다. 혼자 1인 9역을 모두 해야 해서 쉽지 않았을 텐데 너무 자연스럽게 연기해 주셨다. 워낙 연기를 잘해주셔서 시청자 분들도 좋아해 주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EBS <다큐프라임-돈의 얼굴> 이혜진 PD 인터뷰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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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혜진 PD는 <돈의 얼굴>을 통해 우리가 사실은 경제를 이미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저도 경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연출하면서) 겁이 많이 났다. 다양한 분들을 만나서 인터뷰하면서 (경제가)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방열복 기사님들의 인터뷰 중에 프롤로그에 나오는 장면이 있다. '월급은 예전보다 올랐는데 살기가 팍팍해진 것 같아요'라는 말이었는데, 그 말에 3부(인플레이션) 내용 전체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하는 말이지 않나. 그게 다 경제원리에 입각한 말이다. 우리가 경제를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체득하고 있다는 걸 느꼈고 그런 걸 담으려고 했다. 경제가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잘 알 수 있다고 알려드리고 싶었다." (이혜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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