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살았지...' 울음 터뜨린 관객들
[박수림 기자]
▲ 지난 3월 16일 오후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연극 <사난 살주>. 배우들과 세월호 참사 유가족 문종택(고 문지성 학생 아버지)씨, 이태원 참사 유가족 이기자(고 문효균씨 어머니)씨가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
ⓒ 사난살주 팀 |
- 다큐멘터리 연극 <사난 살주> 기획·연출 방은미씨
5·18 민주화운동(아래 5·18) 44주년을 앞두고 제주 4·3 사건(아래 4·3), 5·18,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를 한데 엮은 다큐멘터리 연극 <사난 살주>가 광주를 찾아간다. 기획 및 연출로 참여한 방은미씨는 10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통화에서 "아직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국가 참사로부터 2차, 3차 가해를 받고 계신 모든 분과 연대하기 위해 기획한 연극"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극에는 지난 30여 년간 4·3과 5·18을 주제로 제주와 광주에서 연극을 해온 현애란, 김호준, 김은숙 배우와 세월호 참사 유가족 문종택(고 문지성 학생 아버지)씨, 이태원 참사 유가족 이기자(고 문효균씨 어머니)씨가 무대에 오른다. 오는 12일엔 광주 북구 광주예술의전당에서 관객을 만난다.
그보다 앞선 지난 3월 16일엔 4·3 76주년을 기억하며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연극을 선보이기도 했다. 당초 70석 정원이었으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180여 명의 관객이 함께했다. 방씨는 "참사의 이야기를 당사자의 언어로 직접 들을 때의 체감 온도는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뜨겁다"며 "이번 연극은 그 뜨거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아래는 방씨와의 일문일답.
▲ 제주4·3과 광주5·18,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연극 <사난 살주>의 연출을 맡은 방은미씨 |
ⓒ 본인 제공 |
- 어쩌다 다큐멘터리 연극 <사난 살주>의 연출을 맡았나.
"서울 토박이였던 저는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연극계에 몸담아왔다. 그러던 중 지난 2011년에 제주 강정마을로 2박 3일간 연대 방문을 갔는데, 서울에서 지낼 때 언론을 통해서는 알지 못했던 강정마을 주민들의 상황을 알게 됐다. 경찰이 더 투입되면서 공권력에 짓밟히는 와중에도 주민들은 고향을 뺏기지 않으려고 삼보일배, 오체투지, 전국 도보 행진을 이어가더라. 2박 3일로 연대 방문을 간 건데 어쩌다 보니 강정마을에 13년째 살게 됐다.
그러면서 4·3과 더불어 제주도 난개발을 막기 위해 분신한 고 양용찬 열사 등의 이야기를 주제로 연극을 만들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루기도 하고, 안중근 의사의 삶을 다루기도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가 있도록 지켜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하는 고민을 담아 작품을 만들어 온 거다.
지난해에는 서울에 잠시 올라와 있으면서 이태원을 방문했는데 참사가 벌어진 골목에서 가슴이 미어지는 통증을 느꼈다. 4·3부터 이태원 참사까지 모두 국가 폭력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런 국가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좀 더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사난 살주>는 이런 고민을 담아 마련한 연극이다."
- 연극의 제목인 <사난 살주>는 어떤 뜻인가.
"제주도 말로 '죽지 못해서 할 수 없이 살아가지요'라는 뜻이다. 제주에서 살면서 4·3을 겪은 어르신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하시는 말씀이 '죽지 못해 살았지', '살아있으니 그냥 살았지'였다. 이번 연극을 준비하며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자료와 영상을 보는데 '두 참사의 유족들도 4·3 유족과 비슷하게 죽지 못해 살아가고 계시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이 아파서, 불치병을 겪어서 치료라도 열심히 하다가 떠난 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국가에 의해 자식을 잃은 것 아닌가. 그렇게 자식 잃은 분들의 마음을 '사난 살주'라는 공통어로 표현했다."
- 참사를 알리는 방법은 영화, 언론 인터뷰, 기자회견, 집회·시위 등 다양하다. 굳이 연극의 형태로 참사를 알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는 연극의 특수성 때문이다. 화면이나 지면을 통해서 생겨나는 공감대는 거리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극은 기자회견이나 영상보다 더 뜨거운 장르다. 일단 공연장 안에 들어오면 무대 위 당사자들이 뿜어내는 가슴 깊은 절규가 관객들에게 닿는다. 관객은 공연을 통해 눈물과 땀, 떨림을 느낄 수 있고, 더 직접적으로 당사자와 처지를 바꿔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제가 헌신할 방법이 연극이었기 때문이다. 저는 연극쟁이다. 제가 희생자와 유가족, 그 주변 분들을 위해 드릴 수 있는 기도가 연극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 지난 3월 16일 오후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연극 <사난 살주>. 제주 배우 현애란씨가 제주 4·3의 새로운 사연을 관객에게 증언하고 있다. |
ⓒ 사난살주 팀 |
"제가 제주 강정마을에 내려가 살기까지 거의 해마다 5·18이면 광주 북구 망월동 묘소를 찾았다. 그 뒤로는 한참을 못 갔다. 그래서 올해는 꼭 5·18 44주년을 앞두고 광주에 가서 영령들에게 이 연극을 바치고 싶었다. 그 후에는 전국을 찾아 연극을 선보이는 게 목표다. 사람들이 참사 연극이라는 장르로 접하고 서로 느낀 점을 대화로 나누면 효과가 훨씬 더 크다고 믿어서다. 그런데 유가족분들의 경우 무대에 올라 혼신의 힘을 다해 말하시기 때문에 현재는 고통스럽고 힘들어하신다. 광주 공연이 끝나면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가진 뒤, 오는 10월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던 서울을 찾아 공연할 예정이다."
- 제주에서 열린 첫 공연 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사난 살주>는 1부와 2부로 구성된다. 1부 '억장'에서는 드라마 구조 속에서 배우들과 유가족이 증언을 한다. 2부 '감천'에서는 배우들과 유가족이 원탁에 둘러앉는데, 아직도 참사 안에 살고 있는 유가족과 오늘을 살아가는 관객이 직접 대담을 나눈다. 제주 공연 때 한 관객이 말씀하시겠다고 손을 들어 마이크를 드렸는데 '스스로 (참사에) 관심이 많았다고 생각했는데 (연극을 보고 나니) 정말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들과 유가족의 말씀을 직접 들으니 드릴 말씀이 없다'며 펑펑 울었다. 또 어떤 분은 '끝까지 가자'며 직접 시를 낭송해 주시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기억에 남는다."
-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선, 참사를 바라보며 아파하고 여러 방법으로 연대를 보내시는 시민분들께 감사드린다. 우리는 지금 정보의 홍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정보를 통해 참사를 접하는 것보다 연극을 통해 당사자의 말씀을 들어주셨으면 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면 우리가 정상적인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실 거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시대를 정상적인,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들어야 우리 아이들이 더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연극이다.
▲ 지난 3월 16일 오후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연극 <사난 살주>. 광주 배우 김호준씨가 광주 5·18의 가슴 아픈 희생자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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