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에 머물지 않고, 현장 개선으로 나아가는 위험성평가

손진우 2024. 5. 1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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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성평가가 노동자 안전으로 이어지려면 ③

정부는 산재 예방을 위한 자율안전보건체계를 강조하면서, 그 방법으로 노사가 자율로 시행하는 위험성평가를 들고 있다. 하지만 위험성평가가 전통적인 노사관계 외의 현장, 소규모사업장 등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세심한 준비가 없다면, 위험성평가를 강조한다고 바로 노동자 안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위험성평가가 정말로 노동자 안전으로 이어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짚어보았다. <기자말>

[손진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이후 위험성평가가 강조되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는 위험성평가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노동조합의 주도로 꾸준히 위험성평가를 진행해 온 금속노조 충남지부 케이비오토텍지회(이하 KB오토텍지회), 위험성평가 수행기관으로 역할하고 있는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이하 새움터), 처음으로 위험성평가에 참여한 전국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이하 톨게이트지부)의 경험을 통해 확인해봤다. 인터뷰는 2024년 4월 15일 14시 KB오토텍지회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인터뷰 참여자]
사회 :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이활기 금속노조 KB오토텍지회 부지회장,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서기원 금속노조 KB오토텍지회 노동안전보건부장
조영희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새움터 사무국장
박순향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톨게이트지부 지부장

손진우 : 어느 때보다 위험성평가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데요. 각자의 위치에서 위험성평가에 대한 달라진 인식을 체감하고 계시는지요.

이활기 : 저희는 기존부터 해왔잖아요. 그러다 보니 조합원들은 으레 하는 거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평소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관심이 없었으면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작업환경측정처럼 위험성평가도 그렇게 늘 일상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서기원 : 작년 실행위원으로 위험성평가에 참여했지만, 제가 직접 담당자로 참여한 게 아니었거든요. 다만, 지금 업무를 맡아서 그런지 몰라도 강조되는 무게감이 다른 것 같아요.

조영희 : 저희에게 위험성평가를 수행해 달라거나, 노사가 진행하는 위험성평가에 자문을 요청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졌어요. 그런 차원에서 달라진 게 체감되고요. 현장에 가서 과거 자료를 살펴보게 되면, 기존에 위험성평가를 실행하지 않았거나, 안전관리자가 서류상으로만 위험성평가를 처리했다고 느끼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그러다 보니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이후 실질적인 위험성평가라는 걸 저희랑 처음 진행하거나 제대로 평가해보려는 노력이 확인되는 것 같아요.

박순향 : 저희는 한국도로공사라는 큰 공기업이다 보니, '잘 돼 있을 거야, 회사가 알아서 잘할 거야'라고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근데 저희가 하던 수납 업무에서 직접고용 과정을 거치며 고속도로 청소 업무를 맡게 된 현재 상황에서, 이 업무가 위험한지, 아닌지를 따질만한 그런 시간조차 없었는데요. 실제 누가 봐도 고속도로에서 일하는 건 위험한 거고, 그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있었는데 해결할 방법이 없었던 거죠. 그때 누군가 위험성평가라는 게 있다고 얘기해주었고요. 위험성평가가 강조되고 있는 상황이 저희에게는 업무의 구체적인 위험을 따져보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손진우 : 그동안 위험성평가를 꾸준히 해온 KB오토텍지회와 새롭게 경험하는 곳들과는 체감의 차이가 확연히 있어 보이네요. 위험성평가에 '노동자 참여'가 강조되고 있는데 현장에서 만나는 노동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조영희 : 위험성평가를 진행하다 보면, 현장의 위험한 요소가 굉장히 많이 보여요. 그러다 보니 현장 작업자들은 위험성평가의 결과로 실제 현장이 변화될지, 어떻게 개선될지에 대한 의구심과 궁금증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아무것도 없는데요, 위험한 거 없어요'라고 회사 눈치 보느라 답변을 회피하는 분들도 있지만요. 그와는 달리 '얘기하면 고쳐지냐' 이렇게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이거는 괜찮을까요?'라면서 저희한테 오히려 되묻고, 적극적인 분들을 만나기도 해요. 위험성평가가 현장 작업자들에게 '위험'이란 것에 대해, 늘 당연하게 생각했던 작업 과정을 생각해 보는 그런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박순향 : 위험성평가 제도가 법에 있어도 이걸 회사와 실시하는 것 자체가 저희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저희는 7,500명 중 300명으로 구성된 소수노조라 힘도 작고요. 회사가 안 들어주면, 투쟁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부딪친 경우에요. 회사에 우리가 하는 업무는 우리만 하고 있으니까 꼭 해야만 한다고 요구했고, 노조가 직접 기관도 섭외하고 비용도 댈 테니 하자고 요구해서 위험성평가를 관철한 거죠.1)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진행하게 됐는데요. 우리 작업에 점수를 매겨서 체계적으로 평가를 해보니, 그동안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한 것인지 알게 된 거죠. 고속도로에 버스정류장이 있어요. 거기 가면 '도로에 내려서지 마세요'라고 크게 플래카드를 붙여놓고 이용자들에게는 경고하고 있는데, 막상 우리는 차가 쌩쌩 지나는 도로에 내려가서 청소하고 있었던 거니까요. 이 결과를 근거로 '개선 안 되면 작업하지 말자'라고 작업중지도 노조 차원에서 실시했고요. 

이걸 시범적으로 실시한 곳 외에도 더 확대해서 진행하자, 조합원들이 일하는 모든 곳에서 우리가 참여해서 위험성평가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에요.
 
 위험성평가를 실제 하고 있는 당사자들은, 실효성 있는 노동자 참여와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이활기, 조영희, 서기원, 박순향.
ⓒ 손진우
 
손진우 :  위험성평가를 진행하면서 어려움도 느끼셨을 텐데요.

조영희 : 위험성평가를 진행하면서 제일 고민되는 건 개선 대책이에요. 이걸 매년 진행해도 현장이 개선되지 않으면 항상 똑같은 결과니까, 그냥 넘어가잖아요. 결과도 게시하는 데 그치고요. 노동자들은 답답하고 문제를 느끼니까 평가 과정에 참여해 말씀하시지만, 대책이 선뜻 나오지 않을 때 답답한 거죠. 개선책이 안 나올 때가 많아요.

저희가 봐도 진짜 소음이 너무 심한데 해결 방법이 없고, 방청유나 윤활유 냄새가 너무 심해서 이걸 막고 뭘 했는데도 해결이 안 되거나, 추락 위험이 있어서 울타리 설치를 해야 하는데, 그게 작업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이럴 때는 설치를 안 할 수도 없고, 설치하면 작업자는 환장할 노릇인 상황이 생길 때도 있고요.

이활기 : 저도 공감해요. 노동안전보건부장일 때, 위험성평가 자료를 근거로 개선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더라고요. 비용도 문제고. 그건 둘째치더라도 아예 구조적으로 개선할 수 없는 작업환경이 있더라고요. 소음 관련해서는 보호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 말고 답이 없으니까. 그걸 강제하기도 어렵고. 작업자는 답답하니까 보호구를 벗고, 그럼 계속 소음에 노출되니 문제가 심해지고, 이런 게 제일 답답한 부분이죠. 특히 소음과 CMR물질2). 어떻게 안 되잖아요. 개선해야 하는데 대체물질을 찾기도 쉽지 않고, 저희 수준에서는 한계가 느껴지더라고요.

서기원 : 저도 똑같아요. 특히 개선 때문에 현장에서 설득하는 게 힘들어요. 반장님들한테 가서, 이쪽에 센서를 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러면 내가 작업하는 게 더 느려지잖아', '물량이 더 안 나오잖아'라면서 오히려 작업자가 개선을 거부할 때 난감하거든요. 작업자가 자기 작업에 대해 어느 정도 자율성을 가지고 업무를 빠르게도 느리게도 하다가, 센서가 설치되면서 작업 공정에 대한 개입이 생기다 보니 기본적인 거부감이 드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이걸 안전문제라고 지속해서 설득하는 게 만만치 않더라고요.

손진우 : 위험성평가의 취지를 살리려면 제도나 정책이 뒷받침 되거나, 그 외에도 노동자 참여가 쉽게 시트를 개선하거나 하는 등 여러 차원의 필요가 있을텐데 중요한 것 하나씩 꼽아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조영희 : 위험성평가 시트를 노동자 참여가 쉽도록 개선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은데요. 그것에 앞서 가장 중요한 건 '누가, 어떤 관점으로 위험성평가를 진행할 것이냐'인 것 같아요. 현장 개선의 목표가 없다면, 어떤 좋은 위험성평가 시트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노동자의 의견을 배제하고, 아무 문제 없다고 평가를 마칠 수 있는 거니까요. 더불어 위험성평가를 몇 년 반복해도 현장 개선이 되지 않은 채로 그대로면, 작업자들은 실효성 없다고 생각할 가능성도 있잖아요. 그런 한계 지점이나 중장기적 개선 대책에 대해서 위험성평가 결과 공유가 잘 이뤄지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박순향 : 노동자 참여가 보장돼도, 형식적으로 참여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해당 공정의 위험성을 제기하고, 말할 수 있는 노동자가 참여하지 않으면 회사는 '노동자가 참여해서 위험성평가를 했다'라는 명분만 챙기게 되거든요. 해당 작업자의 참여만이 아니라, 노동조합 차원의 참여를 제도가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처럼 소수노조라도 참여시키도록 말이죠.

이활기 : 앞서 의견들에 덧붙여서 저는 위험성평가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나 뒷받침이 필요한 것 같아요. 특히 개선은 해당 사업장에만 맡겨놓을 문제가 아닌 것 같고요. 그러려면 노동부가 위험성평가 자료를 보고받고, 부족하면 보완할 수 있도록 위험성평가 수준에 관한 관리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노동부 차원에서 위험성평가 결과에 따라 개선이 되는지, 안되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손진우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5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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