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 행복한 관계를 원하는 부모가 놓치고 있는 것들

선릉숲정신건강의학과 한승민 대표원장 2024. 5. 10.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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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민의 인간관계 설명서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잘 키울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부모가 마음먹은 대로 잘 되는가? 그렇지 않다. 아이와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는 것만큼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또 있을까? 이번 글에서는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우리 아이와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부모가 아이에게 바라는 것, 1위는 무엇일까?
한 언론사에서 초등학생 학부모 200명을 대상으로 ‘아이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의 설문 조사를 시행했다. 3위는 ‘집안일을 잘 도왔으면 좋겠다’ 2위는 ‘정리 정돈을 더 잘했으면 좋겠다’였다. 그러면 1위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공부를 지금보다 더 책임감 있게 했으면 좋겠다’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참 씁쓸한 결과다. 대한민국만큼 교육열이 높은 나라도 참 드물다. 아이가 커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업을 가져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사회적 현상의 결과라고 보인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부모에게 바라는 점, 1위는?
한 초등교육 교육 프로그램 회사에서 초등학생 3000명을 대상으로 ‘부모님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의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3위는 ‘공부하라는 말을 줄이고 나를 믿어줬으면 좋겠다’였고, 2위는 ‘부모님이 건강했으면 좋겠다’였다. 그렇다면 1위는 무엇이었을까? ‘엄마·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였다.
52.8%의 아이가 이 답변을 했다. 부모님이 잔소리를 그만하라는 것도 아니고, 용돈을 더 줬으면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절반 이상의 아이들은 우리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었다. 부모님의 입장에서 참 생각할 것이 많은 설문 결과다.

◇불안한 모범생들이 참 많다. 우리 아이는 어떠한가?
진료를 보다 보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성적도 좋은데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중고등학생들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이들을 나는 ‘불안한 모범생’이라고 부른다. 이 친구들의 불안은 대개 다음과 같다. ‘내가 공부를 잘 못하면 어떡하지?’ ‘내가 좋은 대학에 못 가면 어떡하지?’ ‘부모님을 실망시키면 어떡하지?’ 중고등학생 중 병원에 오는 친구들은 일반 인구집단보다 훨씬 낮기에, 아마 실제로 힘든 아이들은 훨씬 많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이 친구들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바로 ‘완벽’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고 있다.

◇완벽해지려는 문화가 학부모와 학생을 만든다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지양해야 할 문화는 단연코 ‘완벽’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굉장히 성공 지향적이고 실패에 조금도 관대하지 않기에 무엇인가 잘못되면 잘잘못을 따지기에 급급하다. 누가 잘못한 사람이고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더 잘하고 실패하지 않는지 이 ‘완벽’에 경쟁적으로 집착을 한다. 부모님과 자녀 관계에서도 이 완벽이라는 문화를 피해 가지는 못한다. 좋은 대학에 가면 행복이 따라온다는 불문율을 믿고서 참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완벽한 부모가 되려는 노력과 완벽한 아이가 되려는 노력이, 부모를 학부모로 만들어버리고 자녀가 학생이 되어버리는 참 속상한 일이 일어난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따스한 행복이, 학부모와 학생의 관계에서는 희미해지고 식어버린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혼자 넘어진 아이는 울지 않는다
‘학생’의 본문은 공부가 맞다. 하지만 ‘자녀’의 본분은 행복한 삶이다. 자녀가 공부를 포함하여 삶에서 노력하는 법을 익히고, 실패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시행착오를 거쳐 가는 것, 이를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중요한 역할이다. 자녀가 성공이 삶의 목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노력의 소중함을 익혀가게끔 도와준다면, 그 시간이 모여 책임감 있고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어른이 되어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컷(Donald Woods Winnicott)은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으로 ‘good enough parents’가 되기를 강조했다. 자녀와의 관계에서 완벽한 부모가 되지 않아도 되며, 괜찮은 부모가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를 완벽하게 대하거나 모든 것을 올바르게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에, 부모는 자신의 한계를 이해하고, 자녀에게 안정적인 환경과 사랑, 이해, 관심, 그리고 지원을 제공하면 충분히 괜찮은 부모다.

자녀가 살아가면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들은 학력이나 직업에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설문 결과처럼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에서 느꼈던 기분 좋은 감정들이 쌓여갈 때, 비로소 아이들의 마음에 행복이 자라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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