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뜻 저버린 연금개혁 중단... 여당 주장은 국민 협박용? [소셜 코리아]

남찬섭 2024. 5. 10.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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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코리아] 한 연금특위 자문위원의 격정 토로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남찬섭]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주호영 위원장(가운데)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연금개혁안 여야 합의가 최종 불발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 유성호
우리나라 연금개혁 역사상 최초로 시도된 공론화가 종료됐다. 그 결과는 알려진 것처럼 '더 내고 더 받는' 소득보장 방안이 56.0%라는 높은 지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료를 현행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도 현행 40%에서 50%로 올리는 방안이다. 이 외에도 공론화에서 산출된 여러 결과들은 3가지 키워드로 집약할 수 있다. 즉 '소득보장 강화'를 위해 '세대간 연대'에 기초한 '사회 전체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이 막 완성된 7일 오후 5시 20분쯤 국회 연금특위 위원장인 주호영 의원은 무책임하게도 연금개혁 협상이 결렬됐다는 발표를 일방적으로 해버렸다. 이 글에서는 연금개혁 역사상 최초로 시도한 공론화의 결과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이런 의미를 갖는 공론화 결과를 이토록 간단하게 무시하는 정부·여당의 행태가 얼마나 후안무치한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번 공론화 결과의 첫째 키워드인 소득보장 강화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소득대체율 50% - 보험료 13%' 방안에 대한 지지가 56.0%에 달했다는 사실에서 증명된다. '더 내고 더 받는' 안이 제도 내에서 주요 변수를 개혁하는 모수개혁을 대표하는 의제라면 기초연금은 제도의 틀 자체를 바꾸는 구조개혁을 대표하는 의제이다.

구조개혁 의제에서도 기초연금의 수급범위를 현행대로 유지하고 급여수준 상향에 노력한다는 '현행 유지안'이 52.3%의 지지를 얻었다. 공론화의 핵심주체인 시민대표단은 결국 모수개혁과 구조개혁 모두에서 공적연금의 틀 속에서 소득보장을 강화하는 방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회차 거듭할수록 소득보장 강화 지지
 
 4월 22일 김상균 연금개혁 공론화위원장이 국회 소통관에서 숙의토론회 및 시민대표단 설문조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시민대표단은 출범 첫날인 3월 22일 연금개혁에 대해 아무런 학습과 숙의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1차 설문조사를 받았고, 자료와 동영상으로 개별학습을 진행한 후인 4월 13일에 2차 설문조사를 받았으며, TV로도 생중계된 4번에 걸친 숙의토론회를 모두 진행한 4월 21일에 3차 설문조사를 받았다. 중요한 것은 이 설문조사의 차수가 거듭될수록 소득보장론에 대한 지지가 올라갔다는 사실이다.

즉, 1차 조사에서는 재정안정론을 더 많이 지지했던 시민대표단이 학습과 숙의를 진행하면서 점차 소득보장론을 더 지지하게 됐고, 마지막 3차 조사에서는 오차범위를 넘어서는 차이로 소득보장론을 지지한 것이다. 소득보장 강화에 대한 지지가 설문조사를 거듭하면서 높아진 것인데 이는 매우 큰 의미가 있는 결과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연금 불신을 조장하는 가스라이팅이 난무했다. 공적연금을 운영하는 나라 중 우리처럼 거대한 기금을 쌓아둔 나라는 6~7개국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기금이 사실상 없다. 그런데도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기금이 소진되면 공적연금이 멈출 것이라는 '기금 소진=연금 미수령' 가스라이팅이 난무했다.

기금이 소진돼도 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면 이번에는 그렇게 하려면 미래세대는 보험료 35% 폭탄을 맞는다는 '보험료 폭탄론'과 미래세대에 엄청난 부채와 적자가 전가된다는 '부채 및 적자론' 등의 가스라이팅이 기승을 부렸다. 게다가 민간 보험회사에서나 쓰는 수지균형보험료니 필요보험료니 하는 지표들을 공적연금에 마구잡이로 적용하여 공적연금에 대한 시각을 왜곡해 왔다.

하지만 보험료 폭탄론과 부채·적자론은 그 논리가 국민연금 보험료를 근로연령인구가 만들어내는 근로소득에만 부과해야 한다고 전제한 것이라는 점은 말하지 않는다. 이 논리를 말하는 자들은 늘 미래에 고령화로 근로연령인구가 줄어든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근로연령인구가 만들어내는 근로소득도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 줄어드는 근로소득에만 보험료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마치 조선 후기에 신분질서 문란으로 양반이 늘어나는데 그 늘어나는 양반에게 세금을 걷는 방식으로 제도를 바꿀 생각은 않고 농민들에게만 세금을 계속 부과해야 한다고 우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나아가 당장 세금을 더 내지 않으면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고 부채와 적자를 늘리는 것이라고 농민들을 겁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며, 약간 형편이 나은 농민과 그렇지 못한 농민을 갈라치기 하여 마치 약간 형편이 나은 농민이 그렇지 못한 농민을 착취하는 것처럼 말하여 잘못된 신분질서가 근본문제임을 못 보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시민대표단에 참여한 사람들도 아마 연금개혁과 관련하여 기금소진=연금미수령론과 보험료 폭탄론, 부채·적자론을 주로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론화에 참여하면서 재정안정론과는 다른 이야기, 즉 소득보장론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렇게 하여 정보 비대칭성이 극복되자 공적연금의 본질에 부합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정보의 균형이 회복될 때 시민들의 선택이 어떻게 바뀌어가는가를 이처럼 생생하게 보여준 사례는 그간 없었다.

'세대 갈등'은 왜곡... 오히려 세대 연대 드러나
     
 4월 23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공론화 결과, 연금개혁에 대한 연금행동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국민연금 국가지급 명문화와 소득대체율 50%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공론화 결과가 발표되자 일부 언론은 시민대표단에 청년이 적게 포함된 탓이라는 둥, 기성세대가 자기들의 연금을 위해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한 것이라는 둥 세대갈등을 부추기는 보도를 쏟아냈다.

하지만 이들 언론의 기대(?)와 달리 20대가 소득보장론을 53.2%로 더 많이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고, 60대 이상은 소득보장론 48.4% 대 재정안정론 49.4%로 소득보장론 지지가 미세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오차범위를 고려하면 사실상 양자가 같다고 봐야 한다). 일부 언론이 부추기는 세대갈등은 실체가 없고 오히려 세대연대의 가능성을 더 많이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시민대표단은 세대 간 연대를 위한 다양한 방안에 높은 찬성을 보였다. 국민연금기금을 청년주택·공공보육시설·노인시설에 투자하는 연기금 사회투자에 57.5%가 찬성했으며, 미래 연금지급의 안정성을 위한 국민연금 지급보증의무 명시에 92.1%가 찬성하여 설문문항에 대한 답변 중 가장 높은 찬성률을 보였다. 또한 사전 국고투입을 통한 미래세대 부담 완화에 80.5%, 기금운용 수익률 제고를 위한 기금거버넌스의 전문성과 독립성 강화에도 91.6%라는 매우 높은 비율로 찬성했다.

연기금 사회투자에 이처럼 높은 지지율을 보인 것은 공론화를 거쳤기 때문이라 생각되며, 이 역시 정보균형이 보장될 경우 시민들의 선택이 어떨지를 보여준 중요한 사례다. 이번 공론화에서 우리는 세대갈등보다는 세대연대의 근거를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이번 공론화에서 시민대표단은 사회 전체적인 대응의 필요성을 지지했고 또 그런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시민대표단의 응답을 보면 몇몇 작은 예외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세대, 성별, 지역, 종사상 지위 및 고용형태, 소득수준, 주관적 계층인식 등 거의 대부분의 지표에서 소득보장론 지지가 우세하거나 소득보장론과 재정안정론 지지가 거의 대등하다. 연금개혁과 관련하여 사회 전체적인 노력을 모아낼 근거는 충분한 것이다. 

실제로 시민대표단은 모든 사람이 국민연금의 테두리 내에 들어와야 한다는 데 매우 높은 공감과 연대의식을 보여줬다. 즉, 출산 크레디트 확대에 82.6%, 군복무 크레디트 확대에 57.8%가 찬성했다. 크레디트 재원을 전액 국고로 전환하고 발생시점에 크레디트를 인정하는 방안도 88.0%라는 높은 지지를 보냈다. 나아가 플랫폼・원청기업 등에 대한 사용자 책임 강화를 통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가입 지원에 91.7%, 저소득 지역가입자 보험료 부담 완화에 80.4%가 찬성했다.

시민대표단의 이러한 응답은 가입자들에게만 부과하는 보험료 수입으로만 연금재정을 충당하려 하지 말고 국고지원 등 더 다양한 재원확충방안을 마련하여 다같이 국민연금의 테두리에서 노후를 준비하게 해야 한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이들 역시 정보균형을 보장할 경우 우리 시민들이 보일 연대의식을 명백히 보여준 좋은 증거라 하겠다.

국민연금으로 노후보장할 생각 없는 이들
       
 정의당 김준우 대표, 강은미 의원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관계자들이 8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연금개혁 결렬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공론화에서는 시민대표단에게 숙의과정에서 어떤 것이 도움이 되었는가도 질문했다. 분임토의가 도움이 됐다는 응답이 96.0%로 가장 높았고, 이어 자료집 94.1%, 전문가 발표 92.9%, 전문가 질의응답 88.7%로 나왔다. 또 지인과의 대화 및 의견교환이 도움이 됐다는 응답이 73.1%였는데 언론보도가 도움 됐다는 응답은 55.0%로 최하위였다.

지인과 의견을 나누는 것이 언론보도보다 더 낫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인과의 대화가 도움이 안 됐다는 응답이 11.4%인데 비해 언론보도가 도움이 안 됐다는 응답은 무려 27.1%로 최고를 기록했다. 연금불신 가스라이팅을 일삼는, 언론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언론'은 맹성(猛省)해야 한다.

그런데 국회 특위 위원장은 일방적으로 연금개혁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그동안 정부·여당은 연금개혁을 공언해왔고 국회특위를 구성하고 시민 공론화까지 진행했다. 또 5월 8일에 유럽 출장을 가서 연금개혁 합의사례도 견학하고 막판 조율도 하겠다고 밝혔는데 출장도 취소했다. 국내에서 해도 될 것을 굳이 유럽까지 가서 협상한다고 한 것은 이상하지만 그렇게 했더라도 14일에 귀국하는 일정이라 시간이 부족하지 않은데 이토록 서둘러 협상결렬을 선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국회 특위 협상 과정에서 야당은 소득대체율을 50%로 하는 대신 보험료를 15%로 올리는 안도 제시했다고 한다. 정부와 여당 그리고 재정안정론자들은 공론화 과정 내내 보험료 15% 안을 의제에 포함하지 않은 것에 대해 크게 불만족해 왔다. 그래서 야당은 보험료 15%를 추진해 보자고 제안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여당은 자기들이 그렇게도 주장하던 15% 안이 막상 제안되자 이번에는 기업 부담을 내세워 거부했다고 한다. 그들이 보험료 15%를 주장한 것은 정말로 실현할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보험료를 15%로 올리지 않으면 부채와 적자가 는다느니 미래세대 부담이라느니 하는 등으로 국민들을 협박하기 위해서였음이 드러났다.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다. 저들은 국민연금으로 노후보장을 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올라가면 사람들은 민간보험에 가입할 이유가 없다. 국민연금 보험료가 올라가면 민간보험에 가입할 돈이 없다. 저들은 실제로는 국민연금이 소득대체율이든 보험료든 강화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은 사적 수단에 의존해야 한다. 그 귀결은 노후 빈곤이요 사적 부담이며 노후 불안이다. 노후 불안은 민간보험의 좋은 숙주이다. 저들은 인구고령화가 마치 국민연금에만 큰일일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진짜 큰일은 민간보험에 일어날 것이다.

저들은 국민을 속이고 국민연금의 약화를 꿈꾸는 국민연금 파괴론자들이다. 저들의 실체를 똑바로 깨닫고 시민의 힘으로 연금개혁을 이뤄야 한다. 단결과 투쟁밖에 없다.
 
 남찬섭 /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연금행동 정책위원장)
ⓒ 남찬섭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남찬섭은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책임연구원과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참여정부 시절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및 양극화민생대책본부의 전문계약직 공무원을 거쳤습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 및 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의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제5차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고, 현재 국회연금개혁특위 민간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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