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수억명이 당긴 거대 슬롯머신, 암호화폐

김남중 2024. 5. 10.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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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비이성적 암호화폐
제크 포크스 지음, 장진영 옮김
RHK, 508쪽, 3만2000원
게티이미지뱅크


2020년부터 2022년 초반까지 비트코인과 도지코인, 솔라나, 폴카도트, 스무스러브포션 등 요상한 이름의 코인 수백 개의 가격이 계속 올랐다. “암호화폐는 게임을 하는 족족 당첨되도록 조작된 거대한 슬롯머신 같았다. 전 세계의 수억 명이 유혹에 굴복하고 암호화폐라는 슬롯머신의 손잡이를 당겼다.”

2021년 11월 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최고치인 6만8000달러를 기록했고, 모든 암호화폐의 전체 가치가 3조 달러에 육박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FTX는 ‘금융계의 JP모건’으로 불렸고, 또 다른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 창립자 자오창펑은 960억 달러로 추정되는 부를 얻었다. 2021년 5월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마이애미 시장은 1만2000명이 참여한 암호화폐 콘퍼런스에서 “비트코인의 수도가 되겠다”고 연설했다.


암호화폐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금융을 민주화하고 암호화폐를 믿는 사람들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다 줄 혁명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22년 여름부터 많은 암호화폐 기업이 사기꾼으로 드러났고 파산했다. 수백만 명의 평범한 사람들이 암호화폐 투자로 돈을 잃어버렸다.

셀시어스 파산, 보이저 파산, 쓰리애로우즈 파산, 그리고 2022년 11월 가장 신뢰할만한 암호화폐 거래소라고 평가받던 FTX가 붕괴하자 코인 광풍이 사그라들었다. 모든 암호화폐 가격이 폭락했다. 암호화폐의 총 가치는 1조 달러 미만으로 떨어졌다. 2023년부로 암호화폐 억만장자들이 모여드는 곳은 바하마와 마이애미 해변에서 워싱턴DC 맨해튼 법정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전 세계 금융시장을 휩쓴 가장 뜨거운 금융 광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의 금융사기 전문 탐사보도기자인 제크 포크스는 2년에 걸친 암호화폐 추적기를 담은 자신의 책 ‘비이성적 암호화폐’를 이렇게 소개한다. 그는 ‘불가사의한 상승과 충격적인 하락’으로 요약할 수 있는 2020년 이후 암호화폐 현상을 따라가면서 핵심적인 사건과 기업, 관계자들을 추적한다.

책은 FTX를 깊게 다룬다. FTX는 뱅크런(대규모 인출 사태)이 시작된 지 불과 5일 만에 파산 신청을 했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고객의 예치금을 보유하고 고객이 요청하면 그 돈을 반환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FTX는 고객의 돈을 다른 곳에 써버렸고 인출 요구에 대응할 수 없었다. FTX 파산 소식은 뉴욕타임스 1면을 장식했다. 저자는 파산 선언을 하고 은둔한 FTX 설립자 샘 뱅크먼-프리드를 만나 11시간 넘게 인터뷰를 했다.

암호화폐의 중앙은행 역할을 한다는 테더코인도 저자의 핵심 추적 대상이다. 암호화폐 거래는 진짜 미국 달러와 중요한 관계를 맺는 수단으로 테더에 기댔다. 테더는 코인 한 개당 1달러라는 고정된 가치를 보증했다. 전문가들은 테더가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암호화폐 산업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테더의 일일 거래량은 그 어떤 암호화폐보다 많았다. 하지만 그 테더코인을 받고 고객이 지출한 돈이 어디에 보관돼 있는지 알 수 없다.

저자는 테더의 비밀을 풀기 위해 사업 아이디어를 처음 생각한 공동 창업자 브룩 피어스를 만난다. 특히 소유주인 성형외과 의사 출신 이탈리아인 지안카를로 데바시니를 1년 넘게 추적한다. 데바시니 인터뷰는 끝내 성사되지 않지만 주변 인물 취재와 과거 기록 등을 분석해 베일에 쌓인, 암호화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의 맨얼굴을 그려낸다. 그는 여러 사기 전력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암호화폐의 세계를 주도하는 인물들을 찾아다니고, 관련 행사와 파티들에 참석한다. 또 암호화폐 기업들이 모여있는 바하마, 암호화폐 법정통화를 실험하고 있는 엘살바도르, 수천 명이 감금된 상태로 스팸 메일이나 SNS를 이용해 암호화폐를 파는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차이나타운 등을 가본다.

이 책은 암호화폐의 세계에 가장 깊게 다가가서 써낸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실상은 차라리 소설이나 농담에 가깝다. 그들은 금융 혁명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암호화폐가 실물경제에 사용될 거라는 건 영원히 지연되는 약속이다. 무엇보다 암호화폐에 투자한 돈은 안전하지 않다.

저자는 암호화폐를 거대한 사기라고 본 취재 초기의 인식을 재확인한다. 하지만 암호화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테더도 여전히 살아남았다.

“비트코인의 진정한 신봉자들은 신념이 너무나 확고해서 그 무엇도 비트코인에 대한 자신들의 믿음을 꺾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눈에는 비트코인 가격이 오를 것이란 증거만 보인다. 이는 마치 어떤 컬트 집단의 구성원이 지구 종말과 자신들의 구원이 멀지 않았다고 확신하는 것과 같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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