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는 비법, 공부·일 계속하라”
“윤석열 대통령이 리더이기 때문에 어떤 주장을 하면 장관들은 모두 그 주장을 따라갑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은 장관이 아닌 다방면의 학자들을 만나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티타임을 하면서요.”
국내 최고령 철학자 김형석(104)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가 윤 대통령에게 이렇게 제언했다. 9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김형석, 백 년의 지혜』(북이십일)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다. 그는 윤 대통령이 “사상적 뒷받침, 역사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했다”고 했다.
김 명예교수는 1920년생으로 올해 104세지만 한 시간 넘게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지친 기색 없이 말을 쏟아냈다. 취재진의 질문을 잘 듣지 못해 출판사 관계자의 도움을 받았지만 답변에는 막힘이 없었다.
정치권을 향한 노학자의 일침은 좌우를 가리지 않았다.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해서도 “특정 기업인들 때문에 우리 경제가 희망을 잃은 것처럼 (호도)했는데 사실이 아니다”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등의 시도는 오히려 고용시장을 무너뜨렸다”고 했다. “지도자의 무지는 나라의 불행”이라면서다.
김 명예교수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지도층 대다수가 국제 감각이 부족한 법조계 인사인 점”을 꼽았다.
“법조계 출신의 약점은 국제 감각이 없다는 겁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고시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사람들이라 여행도 못 했고 외국에서 공부해 본 적도 없어요. 이제는 세계를 봐야 합니다. 세계 속에서 한국이 어떤 위치인지 알아야 합니다. 여야 갈라서 밤낮 싸울 게 아니라 세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보라는 말입니다.”
교육자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는 “다양성과 창의성이 부족한 점”을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로 봤다. 김 명예교수는 “내가 교육부 장관이라면 우선 대입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없애겠다”며 “고등학생들이 하고 싶은 공부는 미루고 수능 준비하느라 고통받고 아까운 인생을 버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같은 문제를 풀어 일렬로 줄 세우는 교육 제도 아래에서는 학생들의 다양성과 창의성, 국제 감각을 키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젊은이들에게는 “공부하는 대학생 말고 학문하는 대학생, 문제 의식을 가진 학생이 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자신의 청년 시절을 회고하면서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강의를 듣고 책을 읽으면서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생각하고, 이것을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김 명예교수는 1920년 평북 운산에서 태어나 1947년 탈북 후 7년간 서울 중앙중·고등학교에서 교사와 교감으로 근무했다. 이후 연세대 철학과 교수와 미국 하버드대 연구 교수 등을 거쳤다. 주요 저서로는 『고독이라는 병』 『백 년을 살아보니』, 『백 년의 독서』 등이 있다.
그는 1985년 연세대에서 정년퇴임했지만 30년 넘게 책을 쓰고 강연을 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신간에서도 “늙었다는 생각에 빠지지 말고 끝까지 공부하고 성장할 것”을 당부했다.
“돌아보면 인생에서 제일 좋은 나이가 65~75세였습니다. 은퇴 후 10년간 가장 많이 공부하고 책도 썼습니다. 철학 분야에서 네 권의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이 중 세 권을 은퇴 후 10년 동안 썼으니까요. 대학에 있을 때까지 강 속에 살았는데 대학을 나오니 바다가 있었습니다. 가장 행복한 인생은 늙지 않고 일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책은 100년 넘게 살아오며 그가 깨달은 삶의 지혜와 경험을 담은 에세이다. 정치·교육 분야 등 사회 곳곳을 노련하고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해부했다. 사랑·자유·평화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해답, 교육자로서 미래 세대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 이념적 갈등으로 위태로운 한국인에게 건네는 당부 등이 담겼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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