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사적지 '광천동 시민아파트'에 직접 살아 봤습니다
[김동규 기자]
▲ 오른쪽부터 김순자 여사, 김환경 감독, 박동희 감독 |
ⓒ 김동규 |
그러나 님들은 갔다. 이 아파트에 거주했던 윤상원 열사와 박용준 열사는 5월 항쟁의 마지막 날 각각 전남도청과 광주YWCA에서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지켰던 광천동의 마을운동가 김영철 열사는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운명했다. 윤상원, 박용준, 김영철을 포함한 들불야학 활동가 7명은 5.18을 전후로 차례로 세상을 떴다. 이들은 현재 '들불7열사'라 불린다.
그날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들불야학에서 함께 했던 박기순과 윤상원을 기리기 위해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만들었다. 그러나 2024년 현재 '광천동 시민아파트'는 철거 위기에 놓여 있다. 3개 동 중 1개 동은 보존하기로 했으나 구체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 않아 존치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미디어 아티스트 김환경씨가 '광천동 시민아파트'에 방을 마련했다. 해당 공간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꾸민 후 약 10개월간 그곳에 거주하며 주민들을 만났다. 그는 KBC광주방송 박동희 PD와 함께 이 과정을 영상에 담았고, KBC광주방송은 김환경씨의 광천동 시민아파트 거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이 과정을 거쳐 제작된 영화 <광천동 김환경>이 최근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비경쟁 부문 초청작으로 선정돼 성황리에 상영됐다. 상영 후 진행된 GV에는 김영철 열사의 부인인 김순자 여사도 참여했다. 김 여사는 박기순, 윤상원 열사의 '영혼결혼식'을 제안한 인물이다.
9일, 영화 <광천동 김환경>의 박동희, 김환경 감독을 인터뷰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박동희 : "저는 KBC광주방송에서 PD로 활동하며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 박동희입니다. 저는 현재 광천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회사도 광천동입니다. 그래서 광천동 거리를 걷는 일이 많은데 재개발 구역을 걸으며 동네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김환경 : "저는 광주에서 미디어 아트를 하고 있는 김환경입니다. 이번에 영화 <광천동 김환경> 작업을 했습니다."
- 영화 <광천동 김환경>은 어떻게 시작된 작품인가요?
박동희 : "저는 서울에서 왔고, 김환경 감독은 제주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광주를 낯설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김 감독과 이야기를 하다가 5.18과 관련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광천동 시민아파트에서 직접 살아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같이 살기로 했는데 예술적으로 강렬한 김 감독만 살게 됐고 저는 집이 근처이기도 해서 직접 살지는 않았습니다.
▲ <광천동 김환경> |
ⓒ KBC광주방송 |
김환경 : "아파트 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저를 포함한 10가구가 아파트에 살고 있었습니다. 얼마 안 가 아래층 아주머니가 저에게 밥을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지은 밥 어차피 나 혼자 다 못 먹으니까 내려와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김치 같은 반찬을 가져다주는 분도 계셔서, 굉장히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광천동은 낮은 도시라는 느낌이 듭니다. 광주의 다른 동네에서 하늘을 보려면 고개를 들어야 하는데, 광천동에서는 거리만 걸어도 하늘이 보입니다. 가장 높은 건물이 4층짜리 광천시장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았던 시민아파트 3층에서 무등산까지의 전망은 1980년대와 같습니다. 제가 그곳에 살면서 들었던 소리를 언젠가 윤상원 열사나 들불팀도 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소리를 듣고, 같은 풍경을 본 일이 분명 있었을 것 같습니다."
박동희 : "이 동네에서는 누군가가 '어이, 누구씨'라고 외치는 소리가 아주 잘 들립니다. 그 직후 걸어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종종 눈에 들어옵니다. 과거에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너와 나의 소리가 서로에게 잘 들린다는 건, 너와 나의 거리가 가깝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음향적 구조는 분명 광천동을 따뜻한 공동체로 만드는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난 2019년에 김순자 선생님을 알게 됐습니다. 이 아파트로 이사 온 김영철 열사는 아무 조건 없이 마을운동을 하셨고 도시빈민들을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특별한 영웅의식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들불야학 식구들과 함께 평범한 일을 성실히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분이 김순자 선생님 증언에 따르면 5.18 직후 시민들이 맞는 모습을 보고 그동안 보인 적 없는 눈으로 시위에 참여하셨다고 합니다. 이런 지점에서 내 옆 사람이 고난을 겪을 때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광천동에는 여전히 김영철 열사의 이 같은 마음이 곳곳에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 전주국제영화제, 무대에 서보니 어떠셨나요?
박동희 : "우선 GV에 와주신 김순자 선생님께 감사했습니다. 시민아파트는 선생님께 트라우마의 공간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모든 꿈이 이루어질 뻔하다가 무너지고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받는 과정을 지켜보셨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작품이 선생님의 아픔을 씻어 드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좋은 기억도 있었다는 추억을 선물해 드릴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그 공간을 트라우마의 공간으로 남겨두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추억은 안 되더라도 상처에 소금을 뿌린 후의 아픔만 밀려오는 공간은 아닐 수 있도록 하는 게 예술의 역할인 거 같습니다."
김환경 :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제 할머니는 제주 해안동에 사시면서 4.3사건을 겪으셨습니다. 그 마을은 산과 밀접해 있어서 위로는 인민유격대가 내려오고, 아래서는 경찰이 탄압해서 어두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어느 경찰이 어떤 가족의 구성원들을 모두 죽인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할머니는 한동안 동굴에서 지내셨습니다. 어찌 보면 제 할머니에게 동굴은 트라우마의 공간일 겁니다.
▲ 영화 <광천동 김환경>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
ⓒ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갈무리 |
박동희 : "어버이날을 맞아 영화에 나오시는 손마리아 할머니께 다녀왔습니다. 조촐하지만 선물도 드리고 빵도 함께 먹었습니다. 평생을 광천동에서 보내신 그분에게 광천동은 인생의 전부입니다. 재개발은 누군가에게는 좋은 출발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단절이고 삶의 일부가 쓸려 나가는 일인 것 같아 걱정이 됐습니다. 할머니가 곧 첨단지구로 이사를 가시는데, 자주 찾아뵈려고 합니다."
김환경 : "저는 다음 작업도 광천동에서 할 생각입니다. 이번에 미흡했던 부분을 보완해 새로운 걸 만들고 싶습니다. 광천동에서 청춘을 바쳤던 따뜻했던 김영철 열사처럼 앞으로도 계속 따뜻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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